남편은 내가 지킨다

남편의 호위무사

by 안나


요즘 반려 견, 반려 묘가 대세다.

승강기 안에서든 산책길에서든 반려 견을 만나지 않는 것이 드문 일이 되어 버렸다. 육아 이야기하듯 반려동물 이야기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반려 견을 만나면 꼭 나이를 묻는다. 나에겐 손주 이야기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사람으로 치면 어르신에 가까운 반려 견들이 사람 품에 꼭 안겨있다. 내가 이런 질문을 할 때 남편은 멀찍이 반대편을 보고 서 있다. 그러나 가끔 산책길에서 입막음을 하지 않은 큰 개를 만나면 아연실색을 하며 견주의 예의 없음에 꼭 한 마디씩을 한다.


모두가 예쁘다 하는 강아지를 봐도 외면하는 남편에겐 어린 시절 개와의 악연이 있다. 한 번 물린 경험이 있는 것이다. 이후론 개를 비롯한 동물 앞에 서면 자연스레 긴장하는 남편을 보며 나는 동물 앞에선 무조건 용감해져야 한다는 자기 암시가 커지곤 했다.


동물 앞에서 내가 남편의 보호자로 자처하고 나선 첫 번째 기억은 성묫길이었다. 시할머니 성묘를 하러 가는 산 중턱엔 옆에 도랑을 끼고 긴 줄에 묶인 사나운 개가 늘 맹렬하게 짖어댔다. 금세 줄이라도 끓어질 듯 최선을 다해 짖어대는 그 모습에 잘못하면 도랑에 빠질 것 같은 두려움이 일곤 했다. 남편보다 용감해져야 했던 나는 긴 나무 작대기를 들고 맹견의 눈을 똑바로 노려보며 남편이 먼저 지나가도록 호위무사를 자처하곤 했다.


아이들 어린 시절에 자주 갔던 에버랜드에서 ‘아기 백호 안고 사진 찍기’ 이벤트가 있었다. 새끼라도 제법 맹수다운 카리스마가 있는 호랑이를 아빠들이 안고 그 옆으로 가족들이 빙 둘러 사진을 찍었다. 남편은 당연 그 이벤트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아이들은 백호랑 사진 찍는 게 정답이었으니 차선책을 고려해야 했다. 백호는 결국 내 가슴에 안겼다. 혹시라도 물리지 않을까 마음속으로는 벌벌 떨었지만 표정만큼은 남편과 아이들을 지키는 잔다르크였다.



1995년 여름, 수술을 마친 나는 영 기운이 없었다. 시들시들한 나를 보고 누군가가 ‘보신탕’을 권했다. 진심이 느껴지는 그 소리에 한 번 두 번 사다 먹었고 여름이 가기 전에 기운이 좀 돌아왔다. 30여 년 전 당시 대표적 보양음식을 남편은 좋아하지 않았다.


아들이 고3이던 시절 기숙사 선생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수험생 아들이 기운이 없어 보이니 보신탕을 먹여보라는 거였다. 철인 3종 경기 선수이기도 한 선생님이 보약으로 권하는 것이니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이때 보신탕도 끓여봤으니 개를 보면 용감해져야 한다는 자기 암시가 효과를 본 것인지도 모르겠다. 엄마라는 자리는 자식 앞에서 없던 기운도 펄펄 나게 하는 법이니 그때는 남편과 더불어 아들의 호위무사라도 된 듯 어려운 요리를 기꺼이 해냈다.


제주도 걷기 여행에 빠져있던 10여 년 전엔 방목하는 동물들을 많이 만났다. 특히 오름길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동물들을 보면 야생성이 느껴져 마음이 쫄깃쫄깃 해지기도 했다. 이런 때가 되면 역시나 용감해지는 나는 마음 안에 큰 작대기라도 품은 듯 남편을 위하는 마음이 일취월장 커지곤 했다. 여행 중 내가 보호자로 뒤바뀌는 유일한 순간이기도 했다.


이제는 언제 어디서든 반려 견을 만나는 시대이다. 경계심이 전혀 없는 손주는 반려 견을 만나면 스스럼없이 다가가 만지기까지 한다. 이 때도 보호자 할아버지는 저 멀찍이 서 있을 뿐이다.

동물 앞에서 작아지는 남편 덕에 동물 앞에서 용감해지는 아내로 살아왔다. 혼자 사셨던 시어머니에게 반려견을 권하기도 했고, 우리 부부 중 누군가 혼자가 되면 반려견을 두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남편 처지를 생각하면 역시 둘이서 해로하며 반려자의 역할에 충실하는 게 최선이라는 생각이 든다.


반려견을 좋아하는 손주 덕에 이제는 나도 반려견을 만나면 눈을 떼지 못하는 애견인이 되었다.


이젠 내 마음에도 양손에도 작대기는 없다.


사진출처- 드라마 호텔 델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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