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상추를 더 받아오는 이유

남편 찬스 덕분입니다

by 안나


오늘도 까만 비닐봉지가 터질 듯 빵빵하다. 상추 1000원 값 치고는 공정하지 못한 모양새다. 남편에게 유난히 후덕한 야채 집 아주머니가 오늘도 봉지에 꽉 차도록 야채를 담아 줬다.

운동센터를 오갈 때 지나다니는 동네 시장에서 남편은 가끔 야채 심부름을 해줬다. 요즘엔 장보는 남자들도 많아졌지만 그래도 아저씨라고 시들한 야채라도 담아주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웬걸! 남편은 봉지 가득 야무지게 야채를 담아왔다. 상추도, 풋고추도, 마늘도 다 넉넉했다. 야채 집 아주머니의 후한 인심은 오늘도 여전하다.


딸의 산후조리를 돕느라 동네가 바뀌다 보니 그동안 단골 야채 집에 다니지 못했다. 오랜만에 들른 야채 집에서 그간의 경위를 이야기하니 “그럼 사장님(아주머니는 모든 아저씨를 사장님이라 부른다) 밥은 어떻게 하느냐”라고 대뜸 남편 밥걱정을 했다. 남편 챙기는 마음이 고마워 이야기를 전하자 남편은 야채 집을 드나들며 나눈 인사 이야기를 꺼냈다.


평상시엔 “안녕하세요”, 명절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지나다니는 길에 인사를 드렸는데 아주머니가 깜짝 놀란 얼굴로 바라보시더라는 거였다. ‘용건만 간단히’를 삶의 모토로 삼고 전화보다 카톡 메시지로 소통하는 나에 비해 남편은 아날로그식 삶의 자세를 고집한다. 특히 만나는 사람에게 먼저 건네는 인사가 그렇다. 당연 관계의 온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동네 입구 야채 집의 시작은 노상이었다. 조그만 비닐을 깔고 올망졸망 야채들을 올려놨고 건물과 건물 사이의 빈 공간에 야채들을 저장했다가 내놓았다. 싱싱하고 경제적인 가격과 인심 좋은 아주머니의 야채 집은 몇 년 만에 몫 좋은 곳에 점포를 얻기에 이르렀다. 덤은 늘 상식인 아주머니의 인간미에 성실이 버무려졌으니 단골들은 야채를 사기 위해 줄을 서는 불편함을 기꺼이 지불했다. 남편 또한 친절과 후덕함이라는 예를 갖춘 야채 집 아주머니에게 자연스레 인사로 예를 갖췄을 것이다.



남편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예의를 중요시한다. 통상 당연한 삶의 원칙이겠지만 보이지 않는 대상에게까지 예의를 갖출 때는 나는 오지랖 운운하며 툴툴거렸다. 특히 숙박시설에서 퇴실할 때 이부자리 정리며 쓰레기 정리에 치중하는 남편을 보며 ‘집에서는 늘 정리 OFF이지 않았느냐’며 ‘공평하지 않다’고 불만을 내비쳤다. ‘이불 홑청은 다시 벗겨내야 하니 이렇게까지 할 필요 없다’고 잔소리를 해도 남편은 중단하지 않았다.


언젠가 살림 도우미 일을 하시는 분에게서 함부로 어질러진(상식적인 수준을 벗어난) 집을 치우러 가면 자신의 인격을 함부로 대하는 기분이 든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심하게 생각하면 돈을 지불하니 인격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관계에 대한 불성실이 여실히 드러나는 것이리라. 그 이야기 이후로는 남편의 지나치다 싶은 행동을 오히려 지지하게 되었다.


남편은 고 김우중 씨를 존경한다. 남편이 대우자동차에 재직하던 시절 당시 그룹 회장인 김우중 씨가 이곳 자동차 공장에 내려오면 남편은 최 일선에서 김우중 씨를 모셨다. 입고 있던 셔츠와 속옷, 양말은 손수 빨아 널고 이부자리는 들어왔던 그대로 정리하며 아침식사는 보통 세네 번씩 하며 조찬회의를 했던 김 회장의 성실함을 직접 목격했다. 같이 왔던 몇몇 임원들의 정리 안 된 침실과 극명하게 대조된다고 했다. 보이던, 보이지 않던 누구에게나 예를 갖추고 존중하는 것, 이것이 인격의 대표선수라는 것을 그때 목도한 것이리라.

오늘 새로 간 식당은 음식 맛도 좋고 주인도 친절했다. "맛있게 잘 먹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남편은 식당 주인에게 깍듯하게 인사했다. 야채 집에서 싱싱한 수박도 한 통 사 왔다.


남편 이부자리는 내가 정리해도 집 밖에 나서면 모든 것에서 남편 덕을 본다. 이것이 진정한 남편 찬스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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