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에 한 번 서울에서 동창모임이 열린다. 고속버스로 2시간 30분 거리이니 아침 차를 타고 가면 막차 타기까지 하루 시간이라도 넉넉하다. 올라간 김에 날짜를 맞춰 동창모임 2개를 하고 오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시간을 딱 맞춰 쓰다 보니 간혹 사고가 생긴다.
서울행 버스는 정안 휴게소에서 한 번 쉰다. 보통은 허리를 좀 펴려고 휴게소에 나와 어슬렁거리곤 하는데 한 번은 휴게소 내 작은 서점에서 책을 들춰보게 되었다. 관심 있는 내용도 아니었는데 활자가 인쇄된 종이를 보면 그냥 넘어가지 못하는 습관이 있어 몇 장을 후루룩 넘기고 와 보니 어라! 내가 타고 온 버스가 보이지 않았다. ‘설마! 그럴 리가..’
유난히 방향치, 길치이기에 늘 정차된 버스 위치를 확인해놓곤 하는데 14번 버스 자리를 눈이 빠져라 봐도 틀. 림. 없. 이. 없었다.
신학원 교수 신부님이 비행기 탑승시간까지 독서 삼매경에 빠져있느라 “Mr kim, Mr kim”이라고 애타게 부르는 안내 방송을 듣지 못했다는 이야기는 그렇게 멋지게 들렸는데 나의 경우는 황당 그 자체였다.
해결사인 남편과의 동행도 아니었고 가방도 핸드폰도 차 안에 두었기에 순간 아득해지는 기분이었다. 다행히 정안이 환승역이어서 서울행 버스는 줄을 서고 있었고 어렵지 않게 다른 버스를 안내받을 수 있었다.
‘아니, 가방도 자리에 있었는데 통로 옆에 있던 아가씨는 왜 내가 자리에 없다는 걸 얘기 안 했을까?’
‘승객이 10명도 채 안 됐는데.. 기사 아저씨는 왜 인원수를 확인 안 했을까?’
올라오는 차 안에서 세심하지 못한 이웃을 원망하며 내 탓 아닌 네 탓을 했다.
서울에 도착해 내 가방을 공손히 들고 미안한 표정을 한 기사 아저씨를 보니 원망이 쏙 들어가 버렸다. 아이를 둘 동행한 아기 엄마가 표를 끊지 않은 아기 숫자까지 세다 보니 그리 되었다는 이야기에 오히려 시간에 촉박하게 돌아온 내가 미안해졌다.
그런데 실수는 보통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상경길에서의 실수는 그날 한 번으로 수업료를 치렀지만 나에게는 수많은 하경길이 남아 있었다. “신에게는 아직도 12척의 배가 남아 있습니다”라고 결사항전을 각오한 이순신 장군의 고백 같으면 좋으련만 나에겐 실수할 또 한 번의 기회가 남아 있는 것이었다.
대체로 동창 모임이 끝나면 터미널 근처에 사는 친구가 버스 시간까지 함께 있어 주었다. 패션 감각이 뛰어난 그 친구는 오랜만에 상경한 친구를 위해 시간을 따로 내어 쇼핑을 도와주었다. 쇼핑이 끝나면 이 보따리 저 보따리 함께 챙겨 앉아 쇼핑 후일담을 늘어놓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남편이 있었으면 당연 10분 전 탑승을 원칙으로 했겠지만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수다에 열중하다 딱 시간에 맞추어 가보니 역시나 내가 탈 버스가 보이지 않았다.
보통 밤 10시 버스를 타고 가는데 밤이 깊어가고 누군가는 잠자리에 들 시간이니 이때의 심정은 사뭇 달랐다. 시간이 채 안 돼 출발한 버스에 대해 항의하니 잠시 후 상황설명이 들려왔다. 1시간 뒤의 버스인 같은 좌석번호 승객이 술에 취해 내 자리에 앉았고 미처 그것까지는 확인이 안 된 채 버스는 떠나 버린 것이었다.
할 수 없이 1시간 뒤의 버스로 귀가하면서 역시나 한 시간 뒤에 마중 나온 남편에게 쓴소리를 들어야 했다. 상경 때 정안 휴게소에서의 전과도 있었지만 나는 남편에게 한마디의 변명도 할 수가 없었다. 남편의 시간 감각이 나와는 차원이 달랐기 때문이다.
나는 하루에 누구에게나 24시간이 주어진다는 것이 세상이 공평한 보편적인 증거라고 생각한다. 누구보다시간을 귀하게 여기기에밥 먹듯시간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도 있다. 그러기에 시간에 대해 낭비하지 않으려는 생각이 강한데 이것이 때로‘내로남불’이 되어 정작 다른 사람의 시간을 찔끔찔끔 빼앗는 결과로 나타나기도 한다.
내가 시간을 1분 단위로 생각한다면 남편의 시간 단위는 10분이다. 특히 사람과의 약속시간에 관해선 더 철저하다. 그러니까 약속시간 정각은 늘 10분 전이다. 10분 전에 도착하는 것이 당연한 남편이 간혹 정각 1~2분 이쪽저쪽에 도착하게 된다면 그 건 순전히 내 탓이다.
약속시간에 닥쳐서야 준비하는 나를 잘 아는 남편은 함께 외출할 일이 생기면 일찌감치 나가 차에서 대기한다. 시간에 맞춰 허겁지겁 나오는 아내 때문에 혹 늦어질 수 있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자는 생각일 것이다. 이때만큼은 남편이 스승으로 느껴진다. 시간에 대한 태도는 사람에 대한 태도와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10분, 20분 일찍 가서 기다리는 것이 상식인 남편은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당연 후덕하다. 반면 정확한 시간을 찾는 나의 정확 속에는 인색이란 태도가 숨어 있다는 것을 안다. 코리아 타임이란 말로 약속시간을 지키지 않는 것을 퉁치고 넘어갔던 시절도 있었지만 그래도 먼저 도착해 나를 기다리는 사람을 보면 역시나 모든 것에서 후덕한 사람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가 없다.
사람은 실수에서 배워야 한다는데, 2번이나 버스를 놓치고 나니 인색한 시간 개념이 다소 수정되긴 했다. 그래도 수정된 시간 개념을 행동으로 옮기기는 나에겐 만만치가 않다.
오늘도 남편은 차 안에서 대기하고 있다. 누구에게나 시간을 넉넉하게 내어주는 남편이 오늘따라 든든하다.
그 든든함이 ‘나에게는 아직 당신에게 내어줄 시간이 얼마든지 남아 있다’라는 귀한 소리로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