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주가인 남편이 일 년 중 술과 거리를 둘 때가 있다. 거리를 두는 정도가 아니라 그냥 술을 저만치 두고 돌아 앉는다. 전례력(교회달력)으로 사순시기에 해당하는 40일간이다.
절제와 단식, 회개로 부활을 준비하는 사순시기에 가톨릭 신자들은 가장 좋아하는 것을 절제하는 것으로 신앙을 드러낸다. 남편도 금주로 자신의 신앙 정체성을 알리곤 했다. 평생을 반려주酒에게 백전백패했던 나로서는 남편의 금주가 마냥 반갑지만은 않았다. 삶의 대 원칙인 ‘총량의 법칙’이 여기에도 여지없이 들어맞았기 때문이다.
40일간 입에 대지 않는 술은 금주 전과 금주 후에 자연스럽게 재배치되었다. 남편의 금주를 몇 해 지켜보던 직원들은 금주에 돌입하게 될 상사의 단주를 소홀히 대하지 않았다. 금주를 잘 준비하라고 여기저기서 술 인사를 했다. 관심 잔치 술잔치가 매일 벌어졌다.
남편도 곧 있을 상실에 대비하듯 알코올을 씨실 날실로 하여 몸 구석구석을 직조하듯 했다.
‘아이고, 정말 너무 하네’ 싶을 때가 되면 사순시기가 시작됐다. 나에게는 평화의 시기였다.
남편은 40일간 술자리에서 물만 마셨다. 눈앞에 있는 술을 봐도 전혀 술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술로부터의 해방’을 선포했으니 남편이 밤 시간에 술을 대체할 수 있는 선택지는 많았다. 운동은 그중 가장 강력한 선택지였다. 새벽에는 러닝머신이, 저녁에는 근처 산책로가 남편의 놀이터가 되었다.
술잔을 잡으면 가슴이 뛴다는 남편이 그 상실의 시간을 견디는 또 다른 힘이 있었다. 병원의 검사결과였다. 남편은 부활절을 하루 앞두고는 목욕재계를 하고 병원에 갔다. 상을 받기 위한 준비였다. 병원에선 구석구석 쌓여있을 알코올의 기운을 샅샅이 뒤지기라도 하듯 여러 번 의 피검사를 했다. 40일간 생수만 마시고 운동을 더한 남편의 몸은 청정지역으로 복구가 되어 있었다. 웬만한 피검사에서 모두 OK를 받았다. 그때쯤이면 흐드러지게 만개하는 벚꽃도 남편의 검사 결과에 축포를 쏘는 것 같았다.
1년 365일 중 40일 만의 단주로도 몸은 태초의 건강을 되찾고 있었다. OK검사결과지가 남편에겐 최고의 부활 선물이었다. 그리고 부활절이 되면 청정지역이 된 온몸을 활짝 열고 알코올의 복음을 쏙쏙 빨아들였다. 그때의 맥주 한잔은 어떤 보약에도 비할 바가 못 되었으리라.
술을 마시고 내뿜는 술 향기(?)가 진동하던 우리 집에도 일 년에 40일 만은 신앙의 향기가 발산했다.
남편이 술에 취한 채 폐부에 남아있는 알코올을 푸하 푸하 호흡으로 내뱉으며 숙면을 취한 그 많은 시간, 나와 아이들은 한 방에서 남편이 내뱉는 공기를 함께 마셨다. 신앙의 향기든 술 향기든 가장이 주는 것은 뭐든 군 말 없이 받던 때였다. 그때를 돌아보면 ‘같은 냄새를 맡고 같은 공기로 호흡하며 지낸 시간이 있는 가족이야말로 진정한 가족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시절을 보내고 남편의 40일 단주를 지켜보니 인생은 아직도 기다릴 것이 많아 보인다.
영화 ‘기생충’에서의 냄새 이야기를 떠 올려보며 나는 엉뚱하게도 그 시절 우리 가족들에게서도 ‘남편의 고유한 그 냄새가 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런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서 우리는 가족이 되어 갔을것이다.
그런데 마음 안에선 또 다른 소리도 들려온다.
‘당신이 밤새 푸하 푸하 하며 온몸을 정화할 때, 나는 당신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습니다.당신은 온 몸을 정화하고 나는 화나는 마음을 정화했습니다'라는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