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산, 둘이 합치면 역대급

by 안나

고등학교 시설 가족 기도시간은 지루할 때가 많았다. 기도서의 거의 모든 기도문을 합송 하고 성가를 끝 절까지 부른 후 아버지의 안수로 끝나는 가족 기도는 족히 20분은 걸렸다. 기도시간에 방영되는 TV 드라마에 대한 유혹이 제일 컸다. 6명의 가족이 다 모여야 저녁기도가 시작됐다. 시험기간이라 조금 늦게까지 공부라도 하려면 “그만하고 자라”며 딸의 건강을 걱정하시던 아버지셨지만, 신앙에 대해서만은 예외를 두지 않으셨다.


가족 기도는 내가 받은 유산, 곧 신앙유산이었다.

순교자는 없지만 5대째 내려오는 천주교 집안에서 자란 나는 배우자는 천주교 신자이되 너무 열심한 신자는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생각만 했을 뿐인데 무의식의 기도가 된 듯 무늬만 신자인 남편을 만났다.


남편은 입대하기 전 할머니와 성당 교리반에 다니다가 세례를 앞두고 ‘꿈에 부처님이 보인다’는 시어머니의 만류로 세례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이후 군대에서 세례를 받은 남편은 할머니의 장례 때 자신의 세례 사실을 밝히고 천주교식으로 장례 예절을 치렀다. 장남의 세례와 장례미사에서의 거룩함에 마음이 움직인 시어머니는 즉시 천주교로 개종을 했지만 매월 초하루에 촛불을 밝히는 신앙 형식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도 천주교 신자인 큰 며느리를 맞아 시아버지와 시동생, 동서까지 세례를 받게 했으니 무늬라도 예쁜 꽃무늬 신자인 것이 분명했다.


신앙은 족보가 아니라 행동이 말해준다는 것과 시어머니가 틀림없이 천국에 들어가셨을 거라고 확신을 가진 계기가 있었다. 어머니가 업둥이로 들어온 시누이를 정성을 다해 키웠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였다. 남편도 친누나가 아니라는 사실을 성인이 되고서야 알 정도로 차별 없이 키우셨다 하니 그 하나만으로도 나는 어머님 발뒤꿈치도 못 따라가는 신앙인이었던 셈이다.


내가 신앙을 유산으로 받았다 하면 남편은 세세한 사랑 표현을 유산으로 받았다. 늦게 본 아들이 귀했던 시아버님은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아들 얼굴에 턱받이를 하고 직접 얼굴을 씻기셨다 한다. 중학교 교복 바지는 매일 칼 주름을 잡아 다려 주셨다는데 그것이 창피했던 남편은 주름을 잡아 뜯어 헝크러뜨리는 게 일이었다고 한다. 결혼하고 시댁에서 잠을 잔 다음날 아침, 한옥 댓돌 위에 반짝반짝 윤나게 닦여 놓여 있는 우리 부부의 구두는 시아버님의 자식사랑을 설명하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낚시하는 법을 가르쳐 주는 게 아니라 낚시해서 곧바로 입안에 넣어주는 사랑을 시아버님은 남편에게 전해 주었다. ‘낚시하는 법을 가르치라’는 자식 교육 불문율이 시아버님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이 세세한 사랑 표현은 잘 걸러진 생과일주스 한 잔을 받아 마시 듯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입안의 눈깔사탕처럼 달콤하기만 했다. 함께 상경하면 지하철 표까지 넣어주는 남편의 서비스가 당연하다 싶었는데 다 큰 아이들 지하철 표를 넣어주는 것을 볼 때는 약간의 위험수위를 느꼈다.

아이들이 자라고 큰 아이가 가정을 이룬 두 아들의 엄마가 되고 보니 이제는 받은 유산을 잘 전해 주어야 할 책무를 느낀다. 내가 받은 신앙과 남편이 전해받은 세세한 돌봄은 모양은 달라 보여도 그 둘을 관통하는 것은 사랑이라는 절대적 가치였다.


아기를 정성껏 키우며 ‘이웃사랑’을 보여준 시어머니, 자식을 있는 그대로 사랑한 시아버지, ‘기도’라는 신앙의 소통을 보여준 친정 부모님. 이 모두를 합쳐보니 이미 그것만으로도 역대급 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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