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가 손을 들었다.

신문 읽는 남자

by 안나

한 남자가 손을 들었다.


맞선을 보러 간 명동성당 앞 작은 커피숍에서였다. 내가 찾는 사람의 이름이 적힌 작은 칠판을 든 안내원이 번쩍 손을 든 남자를 향해 걸어갔다. 그 뒤를 따라가는 내 눈에 테이블 위에 놓인 신문이 들어왔다.


"신문 읽는 사람이네"

내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신문 읽는 남자'

이것이 그의 첫인상이었다.

그 첫인상이 일생일대의 결정까지 이어졌으니 신문을 지식인과 동의어로 생각하는 착각에서였다. 신문 읽는 남자의 벗어진 이마의 반질반질함마저 지적인 카리스마가 물씬 풍기는 후광으로 느껴졌으니 지나고 나서야 생각하니 눈을 반쯤만 뜬 격이었다.


번의 만남 끝에 ‘작은 키’라는 남자의 단점은 ‘신문 읽는 남자’라는 첫인상에 꼬리를 내렸다. 그렇게 그 남자는 ‘신문’이라는 당당한 꼬리표를 달고 나에게로 왔다.



20년 전, 몸담고 있는 종교단체에서 봉사 제의를 받았다. 각 성당의 미담과 행사를 취재하여 기사로 작성하는 일이었다. 글 쓰는 일이 처음이니 덜컥 겁이 났다. 특별한 재능을 요한다는 생각에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그러나 마음속 깊이 글쓰기에 대한 동경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글쓰기 동경은 신문을 보던 남편과의 맞선 자리에서 시작되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취미를 묻는 자리에서 망설임 없이 ‘신문 읽기’라고 밝히던 나에게 남편은‘이제는 읽기에서 쓰기로 나가보라’고 권유했다.


첫 기사를 쓰던 날, 한 문장을 쓰기 위해 진땀을 흘렸다. 육하(六何)라는 기사 작성의 원칙에 따라 정보를 구분하고 압축하는 일에 바짝바짝 입이 말랐다. 욕심껏 모아놓은 정보들을 끌어안고 기사의 옥·석을 가리지 못하는 우를 수없이 저질렀다. 그래도 그렇게 진땀을 흘렸던 한 문장에 다른 문장이 더해지며 기사가 쓰였다.


내 이름을 달고 나온 기사를 보며 부끄럽기도 했지만 남편의 올라간 입 꼬리가 용기가 됐다. 적절한 표현의 문장 하나를 완성할 때는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지만 점차로 글로 말을 건네는 일의 무게가 느껴졌다. 무게가 더해질수록 문장 하나를 다듬기 위해 씨름하는 날들도 많아졌다. 씨름은 글쓰기의 시작일 뿐 아니라 오늘도 현재 진행 중인 글쓰기의 평생 친구가 되었다.


33년 전, 신문을 펴고 맞선 상대가 되었던 남자는 지금은 내 카메라 가방을 들고 다닌다. 취재 길에 동행하는 로드 매니저가 되었다. 다양한 취재현장을 찾아가고 정보 취합을 도와주는 등 동료가 되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 하나, 맞선 당시 남편이 보던 신문은 스포츠 신문이었다.

"스포츠 신문이라니!"

신문과 지식인을 동의어로 삼던 나는 짧은 비명을 질렀다.

스포츠와 지식의 반비례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스포츠광’이었다는 남편의 해명을 들으며 비로소 삶의 진리 하나를 만난 기분이 든다. 맞선 당시 신문이 ‘눈에 콩깍지가 씌어야 결혼이 이루어진다’는 항간의 진리를 체험하게 한 훌륭한 삶의 도구였다는 것을.

맞선 당시 신문 읽던 남자는 오래전, 아내의 기사를 읽는 첫 번째 독자가 되었다. 스포츠 기사에 열광하던 그 눈빛은 아니어도 한 여자의 마음을 한 남자에게 따뜻하게 연결시켜주었던 신문의 긍정성을 나는 믿는다. 그것은 모든 글에 대한 긍정이며 글 쓰는 이들에 대한 애정이기도 하다. 그 긍정과 애정으로 브런치라는 글쓰기 역에도 도착했다.


오늘도 남편과 나는 교구의 취재 길에 나선다.

취재 길이 곧 소풍길이며, 맞선 후 3개월도 되어 결혼한 우리 부부의 데이트 시간이기도 하다. 데이트 장비는 취재수첩과 카메라,

그리고 남편의 전폭적인 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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