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福이 굴러 들어오는 이름

by 안나


“몇째 딸이여?”


‘안나’라는 세례명을 밝히면 간혹 이런 질문을 하는 어르신이 있다.

남아선호 사상이 치솟던 시절에 전해져 오던 세례명에 관한 에피소드 영향일 것이다. 딸을 연이어 낳아 다음엔 꼭 아들을 낳을 거라는 결심을 담은 ‘딸 안나!’의 그 ‘안나’로 세례명을 이해한 것일 테다.

‘안나’와 비슷한 세례명으로 ‘마리안나, 율리안나, 다시안나’가 있다. 모두가 존경받는 가톨릭 성인의 이름이지만 이 안나 시리즈 이름들이 모이면 다른 뜻이 생겨난다. 첫딸을 낳으면 둘째는 딸을 안 낳겠는다는 의미로 ‘안나’로 짓고, 둘째 딸을 낳으면 또 다시 안 낳겠다는 결심으로 ‘다시안나’로, 셋째 딸까지 낳으면 말이 안 된다는 의미로 ‘마리안나’로 지었다는 말이 전해져 온다. ‘율리안나’는 그 이름들 사이 어디엔가 자리할 것이다.


나는 둘째 딸이다. 내 세례명 ‘안나’가 남아선호 사상 영향으로 지어진 것인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남동생을 본 것을 보면 아버지가 장남인 집안에 이름값(세례명 값)을 한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아버지는 세례명을 먼저 짓고 그 세례명으로 세속명을 지으셨다. 신앙을 우선순위로 한 작명이었지만 이름이 다소 놀림감이 되는데 연결된(일조한) 부분이 있다.


아녜스란 세례명으로 정해진 언니 이름은 세례명을 한자로 옮겨 ‘안례’가 됐다. 부모님은 순하게 ‘안예’라고 불렀지만 친구들 사이에서는 ‘알례! 알례!’라고 불리기도 했다. ‘안나’로 세례명이 지어진 둘째 딸 내 이름 역시 한자 이름 ‘안라’가 됐다. 생일에 가까운 성인 이름이기에 언니이름과 초성을 맞추려는 작명 의지가 더해진 세례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냥 식구들처럼 ‘안나’라고 부르는 게 당연하다 싶은 이름을 친구들은 ‘알라’라고 불렀다.

진도가 더 나가면 ‘알라신’이라고까지 불렀다. 게다가 성이 오 씨이니 감탄사처럼 오! 를 선창하고 알라신을 부르며 놀렸다. 나는 하느님 믿는 사람인데 졸지에 타종교 신의 경지로까지 이름이 뻥튀기된 셈이다.


작명의 결정타는 막내 동생 이름이었다. ‘도미니카’란 세례명의 동생은 초성을 맞추어 ‘안복’이란 이름으로 지어졌다. 복福이란 이름이 들어가니 얼마나 복스런 이름일까 싶지만은 내 경험상 복이 들어간 자신의 이름을 좋아하는 친구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안복이란 이름은 ‘만복’이라고 불리는 흑 역사를 갖게 되었다. 온갖 복을 다 받으라는 뜻의 ‘만복萬福’이로 확대된 이름을 너그럽게 받아들일 신앙이 우리에게는 없었다. 그래도 막내동생은 영국 남자와 결혼하면서 자연스레 도미니카란 세례명을 쓰게 됐으니 우리 딸 삼 형제는 모두 세례명으로 불리게 된 셈이다.


친정아버지의 신앙적인 작명 의지는 내게로 유전되었다. 결혼 전 세례를 받게 된 사위가 세례명을 가브리엘로 짓는 것을 보고 내 작명 희망이 발동했다. 첫 손주의 성별이 밝혀지던 태중 7개월 무렵 손주의 세례명을 ‘미카엘’로 하면 어떻겠냐고 딸 부부의 의사를 물었다. 다음번 손주를 보게 되면 라파엘이란 세례명을 지어 가톨릭의 3대 천사인 미카엘, 라파엘, 가브리엘을 한 집에 모셔야겠다는 어마어마(?)한 욕심을 낸 것이다.

18개월 차이의 둘째 손주 세례명이 자연스레 ‘라파엘’로 지어지면서 딸의 집엔 3대 천사가 한집에 살게 되었다. 그냥 보기만 해도 천사인 두 손주의 세례명을 대천사 이름으로 짓고 나니 천군만마를 얻은 듯 든든하기만 하다. 내 작명 희망이 헛되지 않게 됐다.


그래도 3대 천사의 세례명은 단 하나의 세례명의 의미를 넘어서지 못한다.

테오필로’라는 세례명, 남편의 세례명이다.

군에서 세례를 받은 남편의 세례명은 본인 생일과 가까운 축일의 가톨릭 성인 이름으로 정해진 것이다. 그런데 남편의 세례명은 성경(루카복음, 사도행전)에 무려 2번이나 나온다. 세례명을 풀이하면 ‘테오’는 하느님이란 뜻이고 ‘필로’는 사랑하는 사람이란 의미이다. ‘하느님께서 사랑하는 사람’, 또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란 뜻의 대단히 보편적이면서도 신앙인의 정체성을 한 마디로 압축한 말이 된다.


하느님이 사랑하니, 하느님을 사랑하니 신앙인에게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늘 유쾌하고 긍정적인 남편의 삶의 태도가 세례명 ‘테오필로’에서 나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3대천사와 하느님과의 사랑의 관계를 성경에서 공식적으로 밝히는 사람인 오필로와 사는 나는 엄청난 복, 만복萬福을 누리는 사람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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