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키 작은 영수, 그 영수니?”
남편의 초등학교 동창 카톡에 들어와 이런 질문을 던진 여인이 있었다. 그 질문을 시작으로 초등학교 시절 한 때, 같은 반이었던 그 동창이 지금은 캐나다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카톡 사진으로 보게 된 동창 김애경(가명)의 모습은 ‘지성과 미모를 갖춘다는 게 이런 모습이겠구나’를 능히 짐작하게 했다. 그래도 남편을 작은 키로만 설명하는 기억력은 그녀의 지성에 살짝 금이 가게 하기에 충분했다.
남편은 캐나다 여행 가면 만나야 할 사람이 한 사람 늘었다며 은근히 설레는 목소리를 했다. 퇴직하면 당장이라도 캐나다로 떠날 듯이 했다. 이민 간 친구와 회사 후배가 사는 캐나다는 남편의 여행 목록 상위권에 올라가 있었다.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벌써 다녀오고도 남았을 열정에 브레이크가 걸린 셈이다.
나는 처음부터 김애경을 눈곱만큼도 신경 쓰지 않았다. 비행기로도 12시간을 달려야(심하게 비행해야)하는 거리가 비집고 들어올 여타의 그 무엇이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몇 년 전부터 남편의 여자 친구가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12시간 비행거리가 아닌 20여분 도보거리에 있는 여친들이다. 수시로 카톡과 전화에 때론 집 방문까지 이루어진다. 얼마 전엔 여친이 줬다는 찰 쑥떡 한 박스를 가져오기도 했다. 남편의 여친들은 지성과 미모라는 추상적 차원이 아닌 음식 솜씨와 말씨라는 구체적 차원에서 모두가 메달급이다. 12시간 비행 거리에 있는 여친 김애경 하고는 차원이 다르다.
남편의 여친들은 남편을 ‘회장님’이라고 부른다. 성당 사목회장인 남편을 신자 차원에서 예우하는 것이다. 남편은 주일이면 아침 7시부터 집을 나선다. 성당에는 일찌감치 집을 나선 신자들이 벌써 도착해 있다. 이때가 남편과 여친들이 정담을 나누는 때이다.
“지난주에는 왜 안 보이셨어요?”
“응, 딸네 다녀오느라 못 왔어”
“반가우셨겠네요”
“손주가 유치원을 못 가게 돼서 손주 봐주러 갔다 왔지”
“무릎이 아파서 못 나왔어”
“장마철이니 더 힘드시지요”
그렇다. 남편의 여친들은 손주를 봐야 하고, 무릎 통증이 나이를 말해주는 시기를 지나고 있다. 평균 나이 70을 가볍게 뛰어넘는 여친 어르신들이다. 올해 환갑을 맞은 남편이 여친 어르신들과 수다 삼매경에 빠진 것을 보노라면 여성호르몬이 남성호르몬을 앞지르는 시기에 들어섰구나 싶다. ‘나이 들수록 입은 다물고 지갑을 열라’는 말처럼 ‘말을 줄여야 하지 않겠냐’고 충고를 하고도 싶어 진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남편이 있는 자리에 늘 웃음소리가 함께 한다는 거다. 낙엽만 떨어져도 까르르 웃는 사춘기 소녀들처럼 여친 어르신들의 얼굴엔 미소가 사르르 번진다.
주일마다 차 문을 열어 부축해 드리는 K어르신이 주셨다는 캔 커피는 어찌나 귀하게 여기는지 한 모금 먹어 보자는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했다. ‘마음이 너무 고맙다’며 연신 감동 중이다. E어르신이 주신 오이지는 아껴가며 야금야금 먹고 있다. 소화기가 좋지 않은 아내와 살았던 경험으로 여친 어르신들께 양배추즙을 선물하며 우정을 돈독히 하고 있다.
이제 캐나다 여친 김애경은 물 건너갔다. 애초에 물 건너에 있긴 했다. 가까운 곳에 살며 자주 바라보고 깔깔 웃는 사이쯤 돼야 진정한 여친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 여친 어르신들과 식사하러 나서는 남편에게 나는 한 마디 했다. “여친 어르신들 밥값은 꼭 당신이 내요. 밥 잘 사 주는 남동생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