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출간하기로 했다는 말에 다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긴 나도 ‘에세이 4기 책 출간’이라는 제안에 화들짝 놀라 심장이 심히 두근거렸으니까.
작년과 올해 삶에 새로운 2가지가 들어왔다. 손주와 글 쓰기였다. 딸이 가까운 곳으로 이사 오면서 손주 육아가 시작됐고 동네서점 글쓰기 모임에 합류하면서 글쓰기가 시작됐다. 이미 시작된 글쓰기 모임인데도 ‘청강이라도...’ 하며 부탁을 한 것은 지난해 내가 경험한 기사 쓰기 강의 때문이었다.
가톨릭 단체에서 기사를 써왔던 일이 인연이 되어 월보팀을 꾸리는 한 성당에서 기사 쓰기 지도 요청을 받은 일이 있었다. 기사 쓰기 지도 요청이었지만 결국 글쓰기 지도 요청이나 매한가지였다. 처음 기사를 쓸 때 수시로 글쓰기 책을 보고 여러 신문사에서 글쓰기 지도를 받아왔던 터라 열심히만 하면 기사 쓰기 강의가 되지 않겠는가 싶었다.
사실 글쓰기 지도는 글쓰기 실습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그런데 타의에 의해 모여진 사람들은 대부분 글쓰기 경험이 없었고 무엇보다 글쓰기 욕구가 없었다. 게다가 한 사람은 이미 문인으로 활동한다고도 했다. 사람들 간의 개인차가 컸을뿐더러 문인을 대상으로 비 문인이 지도하는 엉뚱한 상황이기도 했다. 어찌어찌 10시간 기사 쓰기 강의를 끝냈을 때 인사인지는 모르겠으나 다음번에도 기사 쓰기 강의부탁을 하겠다고 했다.
기사 쓰기 경험으로 알게 된 10가지 중 9가지를 탁탁 털어 전하는 것처럼 바닥을 드러내는 느낌이 들었다. 보람은 있었으나 제대로 했을까 하는 자격지심에 놓여있을 때 동네서점 에세이 모임 소식을 들었다. 글쓰기 의욕이 있는 사람들과 전문작가의 글쓰기 지도를 경험하고픈 욕구가 발동했다.
그렇게 합류하게 된 동네서점 글쓰기 모임에서 글 첨삭을 받는 과정은 재미있었다. 순도 90프로의 쓰는 즐거움과 10프로의 쓰는 괴로움에 다른 불순물이 끼어들어오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글쓰기에서 책 쓰기로 방향이 바뀌면서였다. 10년을 혼자 글을 쓰다 첫 책을 냈고 이미 여러 권의 책을 출간한 배지영 작가는 작가 지망생들이 책을 내는 과정을 단축하도록 돕고 싶다고 했다. 자연스럽게 에세이 3기에 이어 올 가을엔 에세이 4기도 책을 출간한다는 목표가 정해졌다. 글쓰기에서 책 쓰기로의 방향 전환이었다.곧 발등에 불이 떨어졌으니 책 주제, 곧 컨셉을 정하는 불이었다.
기사를 쓰는 건조함에서 벗어나 내 이야기를 쓰는 즐거움을 누리던 나는 방향 전환으로 글쓰기의 재미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쓰는 즐거움을 놓치지 않기 위한 글쓰기를 위해 그간의 글들을 살펴보았다. 새로 시작하게 된 육아 이야기, 신앙 이야기도 있었지만 글의 중심엔 늘 남편이 등장했다. 남편이 차지하는 삶의 크기를 확인했다.
남편과 나의 이야기, 동시에 남편 흉이라면 글로도 잘 풀 수 있을 것 같았다. 결혼생활 내내 밥 먹듯 해 왔던 일이니까. 흉보기 언어를 문자로 옮기면 되지 않겠는가 생각했다. 때마침 매스컴에서는 <우리 이혼했어요>라는 프로의 시청률이 높았다. 이혼 부부의 이야기를 드라마틱하게 다루는 것을 보며 평범한 결혼생활의 일상을 다루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대부분의 결혼생활이 그렇듯 별 볼일 없어 보이고 단순하게 느껴지는 결혼생활 안에서도 보석같이 반짝이는 순간들이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마침 남편의 환갑이 다가오고 있었고 나는 남편에게 환갑 선물로 직접 쓴 책을 선물하겠다고 공언하기에 이르렀다. 책 쓰기 목표는 더 단단해졌고 나에겐 멋진 아내가 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결혼생활 유쾌하게 바라보기’란 주제를 정하고 에세이 팀의 숙제인 2주에 한 꼭지 글쓰기 외에도 브런치에도 글을 써서 올렸다. 브런치 글은 가족들과의 합작으로 진행됐다. 남편과의 에피소드를 브런치 서재에 올리면 아들이 글에 맞는 이미지를 골라 주었다. 브런치에서 글을 발행하면 딸이 오타를 찾고 에피소드에 자신의 기억을 보태 주었다. 가족과 대화할 거리가 늘어났다. 평생 숙제를 존중했던 나는 2주에 한 꼭지 숙제 글을 모아 주제에 맞는 30꼭지 정도의 글을 정리했다.
이후의 책 작업은 ‘어디서 저런 보석을 만났니?’라는 가제와 ‘술이 맛있는 남자, 글이 맛있는 여자. 물과 기름 같은 부부가 유쾌하게 살아가는 이야기’란 부제를 달고 진행됐다.
책을 내는 과정을 돌이켜보면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100프로 들어맞는 경우였다. 경험이 전무한 상태이기에 용감을 발휘할 수 있었다.
독립출판은 편집도 디자인도 다 글쓴이의 몫이다. 경험 없이, 겁도 없이 독립출판의 길에 들어섰으니 아마 내 머릿속엔 학교 시절 만들었던 학급 문예지 정도의 아기자기한 생각이 출발점이 되었을 것이다. 그증거가 있다. 초등학교 이후 손도 대보지 않았던 그림실력으로 표지그림을 직접 그려 보고자 했던 것이다. 이보다 더 무식한 용기가 어디 있었겠는가? 그 무모함으로 남편과의 사진을 오일 크레용으로 옮겨 보았으니 당연히 결과는 마땅치 않음, 그 이상이었다. 마침 에세이 동기인 황승희(브런치 작가명 : 황부장) 작가가 컴퓨터로 표지그림을 작업해 주었다.
책 작업 중 가장 어려운 일은 표지 제목 폰트였다. 책 내용의 유괘함에 맞는 폰트를 고르면 매번 저작권 문제가 걸렸다. 나중에는 배달의 명수, 빙그레 등 무료로 폰트를 배부하는 기업의 서체까지 들어가 보았지만 표지에 적당치 않았다. 결국에는 지인에게서 켈리 글씨를 받았다.
평생 훌륭한 책만 보아왔던 나에게는 모든 것이 다 부족함 투성이었다. 본문은 볼 때마다 바꾸고 싶은 문장들이 끝도 없이 나왔고 바꾼 문장들도 다음에 보면 이전 문장이 더 나은 거 같기도 했다. 부탁하여 받은 캘리 글씨도 그림과의 균형이 맞지 않은듯 했다. 나는 길을 잃은 심정이 되었다. 나의 계속된 수정 요구에 소규모 출판사에서는 “대형 출판사를 찾아가야 한다.”는 말로 일의 한계를 분명히 했다. 그즈음부터 슬금슬금 ‘다음번으로 출판을 미룰까’하는 생각이 피어올랐다.
생각이 커져가자 화장은커녕 세수도 제대로 못한 모습으로 남 앞에 서는 것처럼 세상에 나가게 될 내 책에 대한 불안함이 밀려왔다. 만지고 만져서 자식처럼 느껴지는 책 시안은 부모의 기대에 전혀 부응하지 못하지만 끌어안을 수밖에 없는 그런 인격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다가 ‘세상이라야 몇몇 지인들 뿐일 텐데...’라는 위안이 찾아오기도 했다. “자꾸 이쁘다 이쁘다 해야 이뻐져요.”라는 에세이팀 동료들과 마음을 함께하며 불쑥불쑥 찾아오는 불안을 다독였다.
출간 준비가 어느 정도 마쳐가던 때, ‘편집장과 함께 글쓰기’란 강연이 진행됐다. 강의를 한 박은정 편집자는 첫 시간에 ‘왜 책을 내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출간하려는 이유가 명확해야 출간 이후의 활동에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잊고 있었던 글쓰기 모임으로의 첫걸음이 생각났다. “글쓰기 지도자로서의 자격을 갖추기 위해서 왔을까?”
기사 쓰기 강의를 맡기는 이의 신뢰에 대한 보답으로 자격을 갖추고 싶었던 글쓰기.
그리고 자연스럽게 연결된 책 쓰기, 그리고 출간.
책 출간은 처음 글쓰기의 시작을 명료하게 해 주었다. 박은정 편집자의 ‘왜 책을 내려고 하는가?’에 대한 답은 계속 찾게 될 것이다. 기사 쓰기 지도 제안이 온다면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응할 수 있을 것이다.
글쓰기가 나에게 준 선물이 있다. 묻혀 있었던 평범한 결혼생활 이야기들을 글로 쓰며 반짝거리는 우리 부부의 시간을 만났다. 지나간 시간들을 글로 쓰는 작업은 부부의 시간을 세공하여 보석으로 만드는 작업이기도 했다. 남편 흉을 조리 있게 보다 보니 어느덧 흉인지 칭찬 인지도 모호하게 됐다. 비로소 내 눈에 남편을 바라보는 새로운 빛이 들어왔음을 느낀다. 그 빛은 글쓰기가 내게 준 상이다.
책 쓰기선물도 있다. 에세이팀 동료들과의 연대의식이다. 책을 쓰며 서로에게 편집자가 되어 주었던 동료들은 문장 하나, 서체, 표지 디자인까지 의논 상대가 되어 주었다. 독립출판의 척박한 세계를 함께 경험하며 조심스러우면서 진지하게 격려하는 동료들이 없었다면 주춤거리는 마음을 다독이지 못했을 것이다.
2가지 선물만으로도 글쓰기와 책 쓰기는 나에게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다.
10월 9일 에세이 동료들과 출간 기념회를 갖는다. 출간을 마침점이 아닌 새로운 시작점으로 삼으려 한다. 꾸준히 쓰기로 결심하는 시작점이다. 그러기에 책 출간은 꾸준히 쓰기로 한 결심을 사람들 앞에 내보이는첫 걸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