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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치 앞을 모르는 인생

나다움 레터

by 안상현

장모님을 병원에 모셔다드리고 오는 길. 문득, 오래전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지금의 아내와 연애하던 시절, 처가에 인사를 드리기 위해 처음 내려갔던 날이었습니다. 당시는 동업 실패로 차도 없이, 고속버스를 타고 지방으로 내려갔죠.

"내가 찾아갈게. 주소만 보내줘."


하지만 아내는 굳이 직접 터미널까지 나오겠다고 했습니다. 이상하다고 느낄 새도 없이, 도착하자 아내가 조용히 말하더군요.

“우리 집에 지금 상황이 좀 그래.”


아내의 집은 딸만 여섯, 그중의 셋은 결혼했고 둘은 미혼이었어요. 그 미혼 둘이 “인사를 받을 수 없다”라며 집을 나간 상태였죠. 아내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습니다.

“괜찮겠어?”

나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내가 당신과 결혼하려고 온 거잖아. 허락받으러 온 게 아니라, 나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인사드리러 온 거야. 장모님 한 분만 있으셔도 충분해. 가자.”


그날의 첫인사는 그렇게 시작되었고, 이후 상견례 그리고 결혼식까지 이어졌어요. 벌써 11년이 지났네요. 그날 내 인사를 받지 않겠다던 처형은 방금 내 차를 타고 병원에 다녀오셨고, 가장 가까이 지내는 처제는 요즘 내게 마음 편한 가족입니다. 인생은 정말 한 치 앞도 알 수 없어요.


그래서 오늘 만나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는 게 중요합니다. 말 한마디, 표정 하나가 훗날 어떤 나비효과를 일으킬지 아무도 알 수 없으니까요. 그리고 선 넘는 말과 행동은 삼가는 게, 내 삶을 편안하게 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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