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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공리셋 Oct 07. 2020

마흔에 사춘기가 왔다

질풍노도의 시기

질풍노도의 시기란 '거친 바람과 화난 파도'라는 의미로, 질풍노도의 시기는 일반적으로 청소년기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사용된다.


지금 나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고 있다.

이미 일은 벌어졌고 수습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릴 듯하다.

서로에게 주고받은 상처가 쉽게 아물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혼 10년 차에 뒤돌아보니 나의 결혼 생활에서 유난히도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계셨던 시부모님.

자식들을 사랑해서 아직도 손에서 놓지 못해서 시집온 며느리도 마치 내가 낳은 자식처럼 품고 싶으셨던 시부모님.

그런 두 분의 마음과 달리 며느리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이지만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엄청난 노력을 했어야 했던 지난 시간 하나씩 되짚으며 부정적 감정을 내려놓고자 한다.


"우리의 뇌는 부정적 감정을 1.4배 강하게 흡수하고 긍정적 기억보다 부정적인 기억을 3배 오래 지속합니다. 따라서 감정과 기억의 중추를 으로 세뇌시키지 않으면 부정적 기억만 오래 남아요"


지난 시간은 지나면 그만인 게 아니라 머릿속 깊이 박혀, 시부모님께 작은 상처를 입을 때마다 과거 오래전 일까지 하나씩 끄집어 올리는 나를 보면서 내가 성질이 더럽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문구를 보면서 당연하다고 생각하니 조금 위로가 되었다.

하나씩 내려놓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판단되었다.


결혼할 당시 우연히 읽게 된 책 속의 한 문장.

'시부모님을 직장상사라고 생각하 결혼생활이 힘들지 않을 것이다 '

직장에서 상사에게 왜?라고 반박하는 순간 일단 찍히고 시작하듯, 시댁에서도 왜?라고 하는 순간 일단 버릇없는 며느리로 찍히고 시작하게 된다.

난 직장상사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책을 통해서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마음이 가지 않으면 행동으로 움직여지지 않는 사람인지라 직장상사를 대하는 처세술 같은 건 나에게 필요 없었다.

고로 시부모님을 대할 때도 마찬지였다.


그런데 직관적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읽어내는 기술이 뛰어나 어떻게 하면 시부모님이 기뻐하실 거라는 것은 너무도 잘 알았다.

새로운 가족과 친해지기 위해서도 그리고... 우리 부모님의 무서운 세뇌

 "시부모님께 잘해라. 그게 다 니 복으로 돌아온다"라는 말씀.

그래서 노력했다.

굳이 밖으로 말로 표현해내지 않은 것까지 내가 미리 알아채고 챙겨드리고, 맞춰드리며 새로운 가족 구성원으로 내 의무를 다했다.

그 결과 두 분이 기뻐하시면 그걸로 되었다.


나 스스로에게는 힘든 과정이었으리라...


'나로 살겠어'를 외치며 마흔 이후의 삶에 대해 준비하는 과정에서

 "싫어요! 안돼요!"를 외치지 못하고 있는 나에 대해, 내 삶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계시는 두 분으로부터의 독립이 필요하다 느끼게 되었다.



'지고지순, 시키는 대로, 당연하게 받아들인 것들이 당연한 게 어딨어?'라고 갑자기 생각이 든 것도 웃기지만

아이들이 크면서 조언이 간섭으로 들리고, 하시는 말씀이 잔소리로 들리면서 청소년기 자아를 찾아가는 바와 다를 것이 없는 내 결혼생활, 그리고 우리 네 가족의 독립된 형태를 갖춰가기 위해 나는 사춘기라고 선언하게 된 것이다.

잔잔한 물결 위에 돌멩이를 던지면 물방울이 사방으로 튀고 그 여파가 잠잠해질 때까지는 시간이 필요하고 잘 견뎌내야만 다시 잔잔한 물결을 만날 수 있듯이, 조금 더 나은 삶을 위해 우리도 부모님도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었다.


끊임없이 "왜?"라고 외치는 중이다.

그래서 스스로를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정의 내려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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