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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공리셋 Oct 08. 2020

감정 조율 연습

실망스럽다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시어머님이 동서를 붙잡고

"걔가 친정을 좀 도와주고 사는 것 같아"

"아 그래요?"

-상황 종료-

동서는 본능적으로 어머님을 알기 때문에 그냥 어머님과 긴말이 섞이면 그 상황이 어떻게 얽히고설켜서 동서에게 부정적인 화살로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것을 경험으로 터득했던 터라 급마무리 지으려 했던 것 같았다.

진짜 그렇게 끝냈다고 했다.


동서랑 커피 한잔 하며 담소를 나누는 끝에 오래전 내뱉었던 그런 말을 동서도 별생각 없이, 별 의도 없이 내 앞에서 흘리게 되었던 건지도 모르겠는데, 도대체가 그 말의 내용이 이상하게 그냥 넘겨 지나쳐지지 않았다.

나를 욕하는 건 괜찮을지언정 화부터 났다.

우리 부부 근심 덜어주시겠다고, 아이들이 이쁘다고 옆에 전세 얻어 이사까지 오셔서 친정아버지와는 주말부부로 생활하시며 사는 우리 엄마의 모습이 누군가의 눈에는 불쌍하게 보였나? 뭔가 도움받으러 온 것처럼 보였나?

우리 엄마, 아빠의 안 보이는 희생이 누군가에게는 과하게 보였던 건가?

생각의 꼬리를 물고 순식간에 부정적인 감정으로 휩싸이게 되었다.


오래전 내뱉으신 말씀이라고 하니 지나버리면 그만일지도 모르는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불과 몇 개월 전...

전셋집을 청산하고 집을 사셔서 오래 우리 곁에 거처하기로 결정하신 우리 부모님을 생각하니 계속 억울하고 분하고 눈물 나고... 짚고 넘어가야지만 내 마음이 편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엄마 우리 옆에서 살면서 아이들 재롱도 보고 딸 좀 도와주고 붙어살자~여기 병원도 많고 걸어 다니기 좋고 살기 괜찮지 않아?!"

기분 좋게 설득하던 내 모습이 부끄러워지기까지 했다.

아버지도 나이가 드시니 조금씩 병원도 찾게 되고 이래저래 시골의 불편함을 아셔서 도시로 거쳐를 보시는 듯했기 때문에 설득과 친정부모님의 의지가 합쳐져 쉽게 결정한 터였기에 예상조차 못했던 시어머님의 생각.


에게는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친정부모님 말씀이 계속 걸렸다.

"어느 시부모님이건 친정부모가 딸 옆에 붙어 사는 거 좋아하시지 않아"

"아냐, 어차피 지금까지 우리 아이들 키워주시고 도와주신다고 매번 감사해하시는데 그런 오해는 하지 말어!"라고 단정 지어 말씀드렸었다.


진짜 그냥 하신 말씀일지언정 그런 순수한 내 마음과 다른 생각을 하실 수 있다 생각하니 그냥 넘기기에는 너무 찝찝했다.


"네, 좀 도와주고 삽니다, 너무 감사해서요"라고 쿨하게 넘겼으면 나도 참 성숙한 인간이었을 것을, 온갖 잡생각이 다 들면서... 아니 5분 거리에 사시면서 우리 아이들 못 봐주신다고 딱 잘라 거절하셨던 시어머님이 떠오르면서... 굳이 이사 와서 도와주신 친정엄마를 그런 눈으로 봤다고 생각하니 정말 폭발할 것만 같았다.


동서에게 양해를 구했다. 양해가 아닌 통보였을지도.

동서도 많이 당황한 듯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 여기는 듯했다.

어머님께 단도직입적으로 여쭈었다.

전화로 얘기하면 눈물 콧물 흘리며 똑바로 전달 못할 나라는 걸 너무 잘 알아서, 문자로 짧고 간결하게 물었다.

다음날 아침 전화벨이 울리는데 최대한 침착하게 받으려 애썼다.


아니라고 하셨다.

전혀 기억이 안 난다고 하셨다.

도리어 남의 말만 듣고 말도 안 되는 내용을 믿고서는 기분 나빠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별거 아닌 일에 혼자 날뛴 격이 되었다...


이 정도로 전혀 기억이 안 나시고 모르는 일이라면 '진짜 순간 스친 생각을 말로 뱉으셨던 거구나! ' 물론 이것도 기분 나쁠 일이지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고 내 마음 추스르고 끝내려 했다.


하지만 일은 그다음에 터졌다.

시아버님이 누가 그런 말을 옮긴 건지, 대체 어디서 들은 건지를 찾아 나선 것이다.

.

.

.

갑자기 모든 화살이 동서에게 향했다.

말을 한 사람이 무슨 말을 했든, 언제 했든, 왜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말을 옮긴 사람과 어른에게 확인을 나선 두 며느리가 죄인이 되고야 말았다.


내 감정에 이름을 붙인다.

화.난.다


이 감정이 왜 생겼지 생각해본다.

시아버님이 먼저 누구인지 알아내시겠다고 나서서 결국 가족 안의 일이 되어버렸고, 잘잘못의 포커스가 말을 옮긴 작은며느리 탓, 이래나 저래나 참지 않고 확인코자 했던 큰며느리의 잘못에 국한되어 앞으로 가족 모두 조심하고 잘하자고 결론 내어졌다.

그렇게 훈계하고 마무리해버린 어른들의 마음은 어떠신지 모르겠지만 일방적으로 받아들여야만 했던 내 마음에는 만 남게 되었다. 

남편과 도련님은 그렇게 정리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어릴 때부터 그렇게 길들여졌을 수도 있고, 내 부모라서  감정이 거기까지로 충분히 그냥 넘겨졌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30년을 다른 부모 아래서 자란 나로서는 "네, 앞으로 조심하겠습니다"라는 말 대신 분하고 억울한 감정만 남았기에 힘들었다.



내 마음이 원하는 건 무엇이었을까.

시부모님이 강조하시는 '가족'이라는 이름이 갑자기 권위적이고 독보적인 작은 사회로 비쳐졌다.

진실하고 솔직한 대화원했다.

이게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이었다.

그렇게 미운 정이 쌓여서 돈독한 가족애가 형성되었으면 했던 바램이었다.


내가 어떻게 행동하는 게 나를 위해 좋을까.

내가 마음이 원하는 건 말 그대로 내가 생각한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이었던 거다.

사람 개개인의 성향이 다르고 문제 해결 방식이 다르듯 우리 시부모님은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방식이 어색하고 싫었을지도 모른다.

실제는 알 수 없기에 그렇게 생각하는 게 나를 위해 좋겠다고 판단했다.

더 강하게 큰 소리 안치고 더 크게 혼내지 않으신 걸로 두 분 나름 잘 정리하고 넘어가셨다고 본인들은 여기실지도 모르겠다.


다른사람. 다른생각. 내마음지키기.

이것에만 포커싱하기로.


마음이 일부 평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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