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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공리셋 Nov 01. 2020

손주 좀 봐주시면 안 되나요?

내 새끼는 내가 책임지는 걸로

아이가 생기지 않을때는 그렇게도 아이만 생겨라 

'내 목숨 다바치어 너를 키워줄께'생각했건만 막상 태어나고나니 그 마음 어디가고,

'아가야, 엄마는 육아만 하면 너무 힘이들어. 일도 육아도 함께 해야 엄마가 행복할 것 같아'


첫아이가 태어나고 육아휴직 1년 후 복직 시점, 감사하게도 친정어머니께서 봐주시겠다고 하셨다.

두 돌 때쯤 되었을 때 친정어머니 허리가 고장이 나서 주말부부로 지내시던 친정어머니께서 아버지 곁으로 가실 수밖에 없는 상황이 와서 6개월만 누가 첫째를 보육해주면 되었다.

당시 6개월 후면 뱃속에 있던 둘째가 태어날 예정이라 육아휴직을 앞두고 있었던 터였다.     

백날 고민해도 6개월을 위해 다른 사람을 집에 들여서 두 돌짜리 아이와 적응시킨다는 게, 기왕 본거 좀 더 봐주지 친정어머니께 내 입으로 요구드린다는 게 힘든 현실이었다.

장염으로 하루에 7번씩 똥을 지린 아이의 똥꼬를 씻기시면서 허리를 붙잡고 누워 계시는 엄마가 눈에 보여 나는 이미 죄인이었고, 어차피 엄마는 시골에 계시는 아빠 옆으로 떠날 사람이니 시댁과 친하게 지내라며 둘째 태어나면 어른들도 더 아이들 이뻐하시고 좋아하게 될 거라며 친정엄마는 나름 큰 뜻을 품고 이제 둘째 육아휴직 들어오기 전 더 시어머님께 의지하라고 하셨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도 시어머님께 온전히 내 관심이 쏠려 있었다.     

당연히 흔쾌히 허락을 해주실 줄 알았던 나의 생각과는 반대로 단방에 거절을 당했다.

눈물이 울컥하고야 말았다

.

.

.

두 분이 계시는 자리에서 살짝 의견을 여쭈었을 때 아버님은 당연히 봐줘야지!라고 하셔서 어머님도 같은 생각을 하고 계실 거라 생각했던 건 큰 오판이었다.

해결책은 못 찾겠고... 제발 어머님이 그냥 허락해주시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아버님, 저녁에 함께 식사 한 끼 하시면 어떠세요?”

“그래! ”

“아버님이랑 저랑 둘이... 요...”

“어? 왜? 그래...뭐...그게 어렵지 않은데 왜? 무슨 일 있나? 왜?...”

“아, 진짜 아무 일 아니에요... 하하”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다.          

평소 나랑 말이 제일 잘 통한다고 생각했던 시아버님이라서 그냥 이 상황이 어떻게 되는 건지 어머님의 마음도 아버님의 마음도 진심을 알고 싶었기에 용기 내어 전화를 걸었고 대화가 통하는 아버님과 얘기하고 싶었다.

남편은 애초에 타인을 고용하자고 했으니 나랑 다른 의견을 배제시켰던 것 같다.

아니 지금 생각하니 집착이었다. 

'6개월이면 되는데, 왜 안된다고 하실까' 시어머니를 이해하려 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결혼하고 아버님과 단둘이 식사시간을 가진건 처음이었던지라 만나서 함께 식당 계단을 오르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무뚝뚝한 아버님의 근심과 걱정 그리고 궁금증 가득한 얼굴로 처음 대면했을 때의 모습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얘기를 풀기 시작하는 순간, 아버님이 정말 안도하셨다는 숨을 내쉬시며 술을 따라주셨다.    

"세상에 힘든 일이 얼마나 많을 건데 애하나 키워줄 사람 없을까 봐 그래 고민을 했나!"

엉엉 울었다.

 내 머릿속은 90프로가 그 고민이었는데, 세상 풍파 겪으며 사업을 일으키신 시아버님께는 그냥 스치는 일이셨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결국 어머님도 아버님의 설득이었던지 어머님이 마음을 바꾸셨던 건지 허락을 하시게 되었고, 과정이야 어찌 되었든 진심으로 너무 감사한 일이었다.


시어머니와 나 둘만 남게 된 타이밍.

"어머님, 우리 똘망이 봐주신다고 허락해 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너희 엄마가 안 본다 해서 그렇지 머"

.

.

.

그렇게 면전에서 뒤통수 맞는 기분은 처음이었다.     


워킹맘의 시간 동안 죄책감이 너무 컸다.

엄마가 케어해주지 못하는 거에 대해 아이에 대한 죄책감도 컸지만 , 부모님이 아파하면 그 또한 내 몫으로 다가와서 눈치투성이로 자존감이 늘 바닥이었다.


그렇게 경력 단절되지 않고 직장생활 잘 버텨냈지만, 그렇게 버텨낸 일자리를 AI가 뺐어가기도 했다.

그래서도 세상일은 아무도 모를 일이다.

너무 애쓰지 말자. 

내 마음이 원하는 데로 하면 되는 거다.

그토록 아이가 신경 쓰였다면 봐주실 분이 없었다면 아이를 키우며 내가 할 수 있는 다른 일을 찾았어야 했다.

일이 중요한게 아니라 나는 나를 위한 시간확보가 꼭 필요한 사람이었다.

육아만 하는게 아니라 내 시간도 꼭 가져야겠다는 나의 본모습을 알았더라면 다른 방책이 충분히 있었을텐데 일만 생각하고 한가지 결론밖에 도달하지 못했던 나는 상처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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