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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공리셋 Feb 27. 2020

집착은 덤이었다

나는 불임 전문의

2011년 3월 몸과 마음이 분주해졌다.

신입생의 신분으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그렇게 일주일에 세 번 캠퍼스로 향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교실에 앉아 강의를 듣고 공부를 하는 시간들이 즐거웠다.

저녁시간 시댁에서 밥 먹고 설거지하는 시간이 임신이라는 키워드랑 연결된 이후로 불편해지면서 그 시간을 피해 갈 핑곗거리가 필요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오롯이 나를 위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 순간이 즐거웠고 새로운 지식을 쌓아가며 또 다른 미래를 꿈꾸는 시간이 행복했다.


혼자가 아니었기에 퇴근 후 남편과 즐거운 시간을 가지지 못하는 사실에 미안했지만,

'어차피 가까이 계시는 시어머니께서 불러다 맛있는 저녁을 먹이시겠지' 반반이었다.

내 마음 같지 않은 착한 아들이기에 반, 나에게 착한 남편이었기에 반 그렇게 나는 남편에 대한 미안함과 걱정은 내려둔 채 '아주 바쁨' 모드로 몰아넣었다.


엄청 바쁘면 관심이 줄어들 줄 알았는데 내 머릿속에는 '임신'이라는 키워드의 공간이 이미 반이었던 것 같다.


회사 점심시간을 이용해 가까운 산부인과 병원에 가서 약을 처방받고,

약을 아침저녁 같은 시간으로 잘 챙겨 먹은 며칠 뒤,

약이 잘 반응 중인지 병원 가서 초음파로 들여다보고,

잘 반응 중이면 또 며칠 뒤 난포를 터트리는 주사를 맞으러 가고,

이 모든 과정이 순탄하게 이뤄지면 19금 날짜와 시간까지 정해주신다.


약이 잘 반응을 안 할 때도 있고, 잘 반응해서 난포 주사를 맞으러 갔는데 그 난포가 사라져 버릴 때고 있다고 들어서 갈 때마다 긴장모드였다.

다행히 나는 그런적은 없었다.

그것만으로도 감사히 여기고 있었다.


날짜와 시간까지 정해주시고 보니 2주면 임신테스트기가 반응한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날짜만 기다리고 또 기다리며 달력만 바라본다.


아주 초기부터 잘 반응한다는 임신테스트기 동*제약 꺼로 시도하면 연한두줄이... 우와...

엄청 매정하다는 일*제약회사 꺼로 시도하면 진한 한 줄... 뭐야...

제약회사별로 테스트기도 골라서 산다.


이미 차고 넘치는 정보 섭렵으로 나는 이미 반전문가가 되어 있었다.

뭐가 진짜일까?

동*제약 임신테스트기가 제발 진짜이기를 바라며 며칠 더 기다려보기로 한다.

매정하다는 일*제약 테스트기가 반응할 때까지.

.

.

.

하지만 연한 두줄을 보였던 희망은 늘 '자연유산'이라는 단어로 나에게 돌아왔다.

자연유산만 4번.

다섯 번째 시도를 위해 찾아간 진료실에서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신다.

'자연유산은 모르고 지나는 임산부들이 더 많아요. 환자분은 날짜를 알아서 매번 체크해서 알게 되는 거지...

너무 실망하지 말아요. 이번에 시도해서 안되면 우리 좀 쉬었다 다시 시작합시다!'


진료실을 나와서 눈물이 또르르... 흘렀다...

쉬자는 말이 더 어려운 상황들이 기다리고 있을거라는 예고 멘트처럼 들렸기 때문이었다.


" 집에 와서 따뜻하게 쉬어야 아기가 생기지, 일하고 피곤한 몸으로 공부한다고 앉아 있으면 아기가 잘도 들어서겠다!"

자연유산을 경험할 때마다 늘 전화로 푸념하면 따뜻하게 받아 주셨던 엄마가 하시는 말씀이었기에 별로 속상하지도 않았다.


'나 진짜 잘못하고 있는 건가? 그냥 이쯤에서 휴학하고 쉬어야 하는 게 정답일까? 그렇게해서 아기가 안 생기면 더 억울할 텐데? 지금보다 몇 배로 더 집착하다 병 생길 것 같은데? 엄청 미친 여자 될 것 같은데?...'


집착하지 않기 위해 택했던 주경야독에 집착은 덤으로 얹히는 거였다.


또다시 이성적인 나다움으로 돌아온다.

'아직 엄마가 될 준비가 안된 거야. 나는 어릴 때부터 복이 많다고 했어. 다 잘될 거야'

긍정적인 말로 나를 토닥이며 '다섯 번째도 안되면 그래 좀 쉬면 되지'

오히려 그렇게 마음먹으니 편했다.


하지만 약 먹으면서 해왔던 루트를 나는 조금 더 신경 써서 노력하고 있었다.

땀이 삐질 나도록 빠른 걸음으로 걷기, 푹 쉬기, 잘 챙겨 먹기.

걷기 귀찮다고 퍼져 있던 주말도 일어나서 산을 오르거나 빠르게 걷거나 그렇게 나는 마치 다섯 번째 시도가 마지막인 것처럼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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