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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공리셋 Feb 16. 2020

결혼만 하면 다 되는 게 아니었나요?

나도 임산부이고 싶다

신혼생활 1년은 시댁 부모님과 퇴근 후 저녁을 나눠먹고, 가끔 그렇지 않은 날은 요리를 한다고 투닥거려보고, 퍼져서 영화도 한편 보고, 어떻게 지났는지도 모르게 시간이 훌쩍 흘렀다.

결혼과 동시에 아이가 생기는 건 줄 알았는데 어느새 1년이라는 시간이 흘러버린 것이다.


'하늘이 주시는 선물 이랬어'

'시간이 해결해 주는 거래'

'내가 노력해서 되는 영역이 아닌 거야"


본능적으로 임신과 출산에 대한 조급함이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양가 부모님의 푸시가 조금씩 밀려들기 시작했다.

엄마는 대놓고 푸시, 시부모님은 돌려서 푸시의 차이일 뿐.


오후 4시경 전화벨이 울렸다.

여느 때처럼 저녁을 함께하자는 시어머님의 연락인 줄 알았는데,

"오늘 퇴근하고 한의원 한번 가볼래?"

"한의원이요? 왜요?"

"진맥도 받아보고 많이 피곤할 때는 약한 재 해 먹는 것도 좋단다"

"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광고 문구가 떠오르네)

단지 내가 피곤할까 봐 그러시는 게 아니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시어머님 단골 한의원.

동네에 오래된 한의원이라 뭔가 장비가 낡아 보였다.

초음파로 내 뱃속을 들어다 본 것은 생의 처음이었던 것 같다.

자궁이 예쁘면 아이가 예쁘다는 말씀만 하시는데, 뭐 일단 문제가 없다는 말을 듣기 좋게 하신 듯했다.

초음파실을 나와서 진맥을 짚으시며 한마디 건네신다.


"스트레스가 좀 있네요? 퇴근하고 집에 오면 푹 쉬세요"

"아... 네..."


"우리가 옆에 살아서 얘가 신경 쓰여서 그런가...."

눈치 빠르신 시어머님이 한마디 거드신다.

"하하하. 뭐 며느리 입장에서 편하기야 하겠습니까? 하하하"

팩트 폭격 답변을 주셔서 다 필요 없고, 여기 오길 잘했다고 생각이 든 순간이었다.


'내가 편하지 않을 거라는 걸 여자인지라 직감적으로 아시는 거구나'

'마음이 편안해야 아이가 잘 생긴 다는 것도 여자인지라 시어머니도 직감적으로 잘 아시겠다'

.

.

.

한의원에 갔다 여느 때처럼 당연히 어른들과 다 같이 저녁을 나눠먹고, 집에 돌아와 씻고 누웠는데 조금씩 화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알 수 없는 눈물이 함께 차 올랐다.


누군가를 탓하고 싶었지만 내가 선택하고 내가 정한 시간을 지나오고 있었기 때문에 탓할 대상도 떠오르지 않았다.

이런 나를 동정하고 한편으로는 후회하고 탓하며 나를 지켜내지 못한 거에 대한 스스로에 대한 원망이 컸던 것 같다.

착한 심성이 장착되어 태어났고 참고 인내하는 게 미덕인 줄 알고 자랐고 희생과 배려의 아이콘으로 살아오길 잘했다고 믿고 있었던 나를 되돌아보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결심했다.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하겠어'

본능적으로 거부해왔던 임신과 출산에 대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돌아오는 주말 남편과 함께 산부인과를 방문해보기로 결심했다.


"아이고... 다낭성 난포 증후군이라고 들어보셨어요?"

" 아니요..."

"여기 포도송이처럼 옹기종기 붙어 있는 거 보이시죠?"

"네... 그게 뭔가요?"

"불임은 아니고 난임의 원인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의사의 설명만으로는 부족하다.

걱정을 한 아름 안고 집에 돌아와 맘 카페에 폭풍 검색을 시작한다.


'지금까지도 기다렸는데 더 기다려볼까? 약을 먹고 아이를 가져야 한다고? 그러다 좀 아픈 아이가 생기면 어떡해? 진짜 약을 먹고 아이를 가져도 상관이 없는지 현대의학을 어떻게 백 퍼센트 믿어?'


그 시간이 길어지니 이러다 병나겠다 싶었다.


임신이라는 키워드를 내 머릿속에서 내보내기 위해 부단히 도 애썼다.


그렇게 나는 임신과 출산이라는 관심사를 돌려 공부를 하기로 마음먹고 대학원에 진학했다.

결혼 2년 차에 주경야독 모드로 들어서게 된 이유였다.


"의학의 힘을 빌리 돼, 하늘의 뜻에 맡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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