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퇴근시간은 5시 30분이다.
항상 오후 4시경이면 핸드폰이 울린다.
물론 매일은 아니고 2~3일에 한번.
우리 시어머님이시다.
"일 끝나고 약속 있니?"
"아니요"
"집에 와서 저녁 먹고 올라가"
시댁은 5분 거리. 같은 아파트 단지 내.
가끔 걸러 전화 주시는 센스는 있으시다. 남편과의 시간도 필요하다고 판단하신 거 같다.
결혼 전 어머님이 우리를 앉혀놓고 여쭤보셨다.
"너희 신혼집이랑 같은 아파트를 좀 알아볼까 하는데 너의 생각은 어떻니? 요즘 젊은 사람들 시댁이 가까이 있으면 싫어한다고 하던데..."
"그래요? 저는 상관없어요"호호호
나는 너무 순수하고 해맑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같은 아파트에 살자는 건 늘 자주 함께 하자는 의미인 줄 몰랐다.
몸만 따로이지 모든 걸 공유하는 가족처럼 지내자는 그런 말씀이 신줄 몰랐다.
나는 스무 살 대학생 신분이 되고부터 부모 곁을 떠나 직장생활까지 거의 10년을 혼자 생활했다.
신랑 또한 대학 졸업 후 부모 곁을 떠나 혼자 직장생활을 오래 해온 사람이라 우린 둘 다 혼자인 게 더 익숙한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우리 둘은 같은 공간에 살아도 서로의 영역을 지켜주며 가끔 친구처럼 넘나드는 그래서 너무도 잘 맞는 신혼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자꾸자꾸 시댁에서 같이 밥을 먹자 하셨다.
퇴근 후 혼자의 시간이 전혀 확보되지 않는 현실인 거다.
다 먹은 후 설거지를 집에서처럼 남편을 시킬 수도 없고, 설거지가 끝나면 앉아서 과일을 나눠 먹고 8시 30분 저녁 드라마가 끝나면 가방을 챙겨서 일어나야한다.
나의 퇴근시간은 9 시인 거다.
잦아지니 끼니를 챙겨주셔서 감사한 마음보다 슬슬 짜증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남편은 나의 감정을 받아만 줄뿐 그러한 상황들을 제재할 의사가 전혀 없다.
'그래 내가 해주는 밥보다 엄마 밥이 맛나긴 하겠지'
'이전 당신집이니 불편할 일이 없겠지'
직접 대면해서 시어머님께 구구절절 말씀드려볼까도 고민했다.
하지만 용기가 부족했다. 왜 용기가 필요 했던건지 잘 모르겠다.
늘상 나에게 스스로 희생을 강요해온 내 습관에서 비롯된 기전이었듯 하다.
내 기분보다 남의 기분을 살피는게 익숙했던 나였다.
나는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문제가 발생하면 어떻게든 풀어서 화해를 하려하거나 애초에 문제를 만들려고를 하지 않았다.
"오늘은 회식이 있어서요~"
"오늘은 회의가 있어서요~"
거짓말도 하루 이틀이지 포. 기. 가. 빠. 르. 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다.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었지만 결국 그 패턴에 적응해가기 시작했다.
거의 2년이 걸렸다.
맛난 음식을 나눠 먹을 수 있음에 감사하자.
'집에 진짜 먹을 게 없는데, 오늘은 왜 전화가 없으시지??' 가끔 전화를 기다리는 날도 생겼다.
나라는 사람 도대체 뭐지?간사함의 끝판왕이다.
내 나이 마흔, 결혼 10년 차에도 요리가 귀찮고 힘들다 느끼는 건 내 탓이 아닌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