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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공리셋 Dec 14. 2020

나도 느림보 거북이였는데

빨리빨리

아이를 키우면서 나의 한계를 자주 경험한다.


"아이고, 새댁 힘들겠네... 근데! 아이를 키워봐야 어른이 되는 거야~"

임신한 몸으로 걸어 다니면 가까운 우리의 부모님도 물론이었지만, 생전 처음 보는 동네 할머니들도 이런 말씀을 건네곤 하셨다.

이전에는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아이로 인해서 또는 아이를 통해서 자꾸 나를 돌아보게 만든다.

외모는 누구를 닮았든 기질은 달라도 너무 다른 첫째와 둘째.

"너희는 누구를 닮아서 도대체..."

누구를 닮았다기보다 그냥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나의 모습일지도, 남편의 다른 모습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냥 아이들은 있는 모습 그대로 바라봐주면 되는 거였다.


코로나로 인한 집콕 생활을 벗어나 보고자

학교도 갈 수 없고, 유치원도 갈 수 없고, 첫째가 좋아하는 농구 학원도 갈 수가 없고, 둘째가 좋아하는 태권도 학원도 갈 수가 없어 아이들의 체력단련을 위해 주말을 이용해 엄마 아빠가 출동했다.


엄마 왈"얘들아~밖에 운동하러 나가자!"

아빠 왈 "준비해서 나와, 내려가서 차 좀 정리하고 있을게"

첫째 왈 "아~왜요~~"


이미 집콕 생활에 완벽하게 적응한 첫째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반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옷 갈아 입고 양말 신고 마스크까지 착용하고 신발장 앞에 서 있는 둘째 딸.

한결같았지만 나가면 누구보다 잘 뛰어노는 것도 한결같았기에 똑같이 반강제성을 더해 데리고 나가려 했다.

하지만 오늘은 조금 강하게 반항을 했다.

세월아~네월아~뒹굴뒹굴~내의에서 팔 한쪽 빼지 않고 누워있는 첫째는

"아~우~"(하기 싫을 때 내는 소리) 괴상한 소리만 지르며 바닥을 누비고 있다.

아빠는 주차장에 내려가 있는 상황! 데리고 내려가야 한다는 엄마의 의지는 꺾이지 않는다.


반협박, 30초 안에 옷 안 갈아입으면! 혼날 줄 알아!

"하나, 둘, 셋.... 열하나... 스물...."

"왜 점점 빨리 세요!"

"네가 열이든 스물이든 어차피 빨리 안 갈아입고 있으니까 그렇지"

.

.

.

내가 말하고도 무슨 논리인지 모르겠다.

그냥 화났다는 증거다.

열이든 스물이 됐든 느긋하게 움직이는 아들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스피드가 붙어 말이 빨라진거지만, 언제나 내면의 갈등이 있었다.

'느림을 인정하고 느긋하게 기다려줘야지'

'야, 좀 빨리빨리 해라'


30초도 내가 정한 시간이었고, 빨리 준비해야 할 이유도 없는 상황이긴 했다.

하지만 스무 살 성인이 되면서 내가 알고 지내던 울타리 밖의 사회는 느리게 움직이면 손해 보는 것 같고, 남들보다 뒤처지는 것 같고, 같은 시간에 더 많은걸 해내지 못하면 무능력해 보인다고 스스로를 압박했던 것 같다.


그렇게 경쟁사회의 구도 속에서 만들어진 지금 나의 모습이 엄마의 말씀을 빌어 돌이켜보면 태생의 기질은 아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나의 어릴 적 모습을 아이가 품고 있을 뿐, 오 시간을 통해 변해버린 나의 프레임이 당연한듯 아이에게 씌우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되돌아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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