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예정되면 준비하는 과정이 그리고 짐 싸들고 공항을 향하는 딱 그 시간만큼이 여행이 주는 기쁨의 묘미에 80프로를 차지하지 않나라는 생각을 한다.
시아버님 회사 식구들을 비롯하여 대충 40여 명의 단체 여행이 예정되어 있었다.
당시 우리 첫째는 3살, 둘째는 8개월.
결코 쉽지 않은 여정이 될 거라 예상했지만 일상을 벗어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또 새로운 환경에 노출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분전환도 되고 기쁜 여행길이 될 거라 생각했다.
어쩌면 의무감으로 참석해야 하는 여행길이었기에 그렇게 나는 마인드셋 중이었다.
내가 여행을 정말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 그리고 우리의 현재를 위협하는 이 어두운 두 그림자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여행하는 동안 우리는 일종의 위기 상황에 처하게 된다.
낯선 곳에서 잘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먹을 것과 잘 곳을 확보하고 안전을 도모해야 한다.
- 김영하 <여행의 이유> -
현재의 순간에 완전히 몰입하게 된다는 의미 같았다.
아, 그래서 잡념 많은 내가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 한 단락 글귀가 너무도 마음에 와 닿았다.
몸은 고생일지언정 순간이 추억이 되고 기억으로 남을 만큼 몰입할 수 있으니까.
이번 여행은 결론부터 말하면 여행 나름!!!!이라고 외치고 싶었다.
사실은 이 글 한편에 나의 아픔을 담아 내려놓음으로써,
그 당시 둘째 아이를 아기띠에 앉고서 찍은 사진 속에 내 모습을 좋은 기억으로 남겨 놓고자 하는 바램과 아기띠 안의 아이는 너무 행복한 표정으로 손발 뻗고 환하게 웃고 있는 반면 반팔티에 흰색 손수건을 목에 두른 나의 무표정의 얼굴은 볼 때마다 그때의 감정이 기억되어 눈물이 울컥하고 차올라 이제는 그만 내려놓고자 이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여행지는 대만이었다.
단체이다 보니 가이드가 붙는 패키지여행이었다.
패키지여행상품 나름이겠지만, 우리의 여행 일정은 아주 빡빡했다.
떠나기 전 여행상품을 서면으로 보았을 때 "우리 지금이라도 안 간다고 하면 안 될까?"라고 남편 하게 진지하게 물었다.
그 빡빡한 일정을 소화해 내기에 어린 둘째의 엄마인 나의 힘든 고행이 상상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차라리 남편과 첫 애만 여행에 보내고 둘째 아이와 나는 단둘이 집에 남는 게 왠지 더 즐거운 시간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스쳐 제한해 보았으나 남편은 부정적이었다.
어쨌든 시아버님이 주체가 되는 회사의 단체행사의 일환이었기에 의무감을 장착했으면 하는 눈치였다.
햇빛 쨍쨍한 여름 날씨에 아기띠로 아이를 안고 단체 행렬에 따라 깃발을 따라 구경을 다니다 보니 땀이 흥건해질 즈음이면, 실내 에어컨이 빵빵한 곳으로 들어가 땀을 식히고 이틀 정도 이런 여정을 반복하다 보니 체력도 바닥나고 나는 결국 마지막 날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어차피 오늘만 지나면 집에 돌아가니까 견디자...
군대 가면 가장 힘들어한다는, 말로만 들어본 행군이란 게 이런 건가?
콧물이 줄줄 흘러 감기약을 먹었더니 어떤 정신력으로 여행지를 따라다녔는지 지금 생각해도 내가 참 대견한데, 그런데... 내려놓고자 하는 감정은 단 한 가지.
코를 하도 풀어서 코밑 뻘겋고, 더운데 흰색 목수건을 두르고 아이를 안고 있는 자체에서 '나 힘듦'이 강하게 뿜어져 나온 건지! 함께 동행했던 나이 드신 어머님 나이뻘의 어른들, 그리고 시고모님, 시이모님까지 함께 여정에 나선 분들이 오며 가며 마주할 때마다 내가 애를 좀 대신 안아줄까, 뭘 좀 도와줄까, 옆에 와서 부채질을 해주시고, 물병을 건네시며 안타까워하시던 그 마음들이 처음에는 감사했다.
그런데 나중에는 내자신이 너무 가엷다 여겨져 그 동정심마저 거부하고 싶었다.
처음부터 내 선택권 영역의 밖이라 생각했던 것.
진짜 내 선택권 밖이었을까...내가 이렇게 힘들껄 예상했는데...
나에게 너무 미안했다.
왜 강하게 내 의견을 어필하지 못하고 뒤에와서 이러고 있는지 답답하기까지 했다.
이런 자신이 미워서도 가여워서도... 눈물이 차올랐다.
여행지에 와있는 사람들과 마음의 온도가 극명하게 달라서
혹이나 눈물 보이면 이런 내가 더 안타까울것 같아서 동행한 사람들을 피해 우리둘째를 안고서 멀찌감치 떨어져 앉아 있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이 순간 드는 생각은 '그때 내가 그렇게까지 했어야 했나'싶을 정도로 애잔하게 느껴진다.
반면 나의 가족이었던 우리 시어머니.
여행 동행하면서 단 한 번도 옆에 오시지 않았다.
다른 분들이 동정심에라도 저렇게 관심 가져 주실 때도 애써 외면하고 계시듯 여행에 몰입하고 계셨다.
지나가다 우연히라도 마주치면 우리 둘째 얼굴 보고 웃어주고 가셨다.
내 감정에 이름을 붙인다.
배. 신. 감. 이. 들. 다
이 감정이 왜 생겼는지 생각해 본다.
너무 힘이 들어서 누군가에게 화살을 쏘고 싶었던 것 같다.
남편은 이미 활동 왕성한 3살 남자아이 우리 첫째를 쫓아다니느라 나보다 더 애쓰고 있었기에 대상에서 제외시켰다.
그 다음 대상은 가족이란 이름으로 마흔 여명의 동행객들중에유일하게 관심과 도움을 줄 수 있는 시어머님이었던 것 같다.
분명 손주들 엄청 이뻐하시는 시어머님이신데 여행 일정 중에는 왜 그렇게도 남같이 대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