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속싸개, 겉싸개에 꽁꽁 싸서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엄마가 되었다는 실감도 안 나고 겁먹고 떨렸던 그 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이젠 간호사도 없고 혼자 이 갓난쟁이를 봐야 한다...
으아... 진짜 긴장된다...
언제나 그렇듯 친구 같은 때론 대체 누구 편인지 모르겠는 정신적 지주였던 친정어머니가 우리 집에 먼저 도착해 미역국을 한솥 끓여 놓으신 덕에 남편까지 우리 세 식구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계셨기에, 그 사실만으로도 큰 위안이 되었었다.
아이와 보내던 첫날밤 어른 셋이 어쩔 줄을 몰라하며 목욕을 시키던 순간의 기억도 생생하다.
두 시간마다 깨어나서 우는 아이를 안고 밤을 지새우며 젖을 먹이고, 젖이 충분하지 않아 또 깨고 또 깨고, 왜 그리도 모유수유를 고집했던지, 첫째라서... 그냥 모유수유를 하지 않으면 마치 기본적인 모성애가 부족한 사람처럼 생각되어 모유수유에 혼신의 힘을 다 했던 듯하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분유 수유를 일찍! 진즉에 시작할 텐데 엄마도 아이도 고생스러운 모유수유는 강하게 비추다.
이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닌데 서론이 너무 길었다.
한마디로 아이가 50일 전후까지 밤새 푹 자는 날이 언제가 될지를 날마다 기다리며 피폐하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하필 아이들이 1월생인데 시어머니의 60세 환갑이 3월에예정되어 있었다.
웃지 못할 사연이지만 우리 동서도 우리 첫째와 이틀 차이로 첫 아이를 출산해 함께 정보를 나누며 육아전쟁을 외롭지 않게 치르며 아이를 키우는 게 아니라 키워내고 있었다.
동서와 머리를 맞댔다.
'가까운 식당을 예약해서 나눠 먹으면 가장 간편하고 좋을 것 같은데, 그렇지?'
언제나 그렇듯 우리의 의견은 의견일 뿐 어머님 생신이시다. 의견을 여쭙기로 했다.
'사람 모이는 거 좋아하는 시댁에서 환갑을 조용히 넘어갈 것 같지는 않았지만! 갓난쟁이 둘이나 데리고 거하게 한다는 거 자체가 크게 부담스러울 일이니... 특별한 경우니까'
역시!! 우리 자식들의 생각일 뿐이었다.
남편 입을 통해 "엄마 환갑은 어떻게 하는 게 좋겠어요? 아버지 환갑 때는 우리 집에서 거하게 하긴 했지만 애들도 어리고..."
"....."
(얼른 괜찮다고, 간결히 하자고, 침묵의 시간이 길었졌다...)
아버님이 입을 떼신다....
"너희 엄마 섭섭지 않게 해라!"
상황 종료.
동서 집에서 하기로 결정되었다.
대략 30인분 뷔페를 주문했다.
찰밥과 미역국 나물은 성의를 다하기 위해 며느리들 손으로 해냈다.
소파를 밀어내고 상을 차리고 주문한 음식을 세팅하고 젖먹이들 앵앵거릴 때마다 들어 업고, 안고, 눕혀도 봤다가 뭔가 환경이 바뀌니 , 많은 사람의 방문 기운이 느껴지니 두 녀석의 울음소리는 끊이질 않았다.
결국 아이들과 두 며느리는 방구석에 들어가 엄마 아니면 달래 지지도 않던 100일도 안된 아이들을 돌보느라 방 밖의 손님들 대접은 남편들 몫이긴 했지만 살림살이들이며 부엌을 들락거리다 뭐가 어딨는지 결국 한계에 다다르니 다른 어른들이 며느리들 좀 나와보라며 호통 소리도 들리고!
결국 우는 애들 울게 두고 손님맞이 하느라 전쟁통이 따로 없었다.
기쁘게 초대해서 기쁘게 보내드려야지 마음먹은 거 안드로메다로 날려 보낸 지 이미 오래이고 진심 울뻔했다.
특별히 원망할 대상도 없이 그냥 싫었다.
내 감정에 이름을 붙인다.
싫. 다.
이 감정이 왜 생겼는지 생각해본다.
배려받지 못한 며느리.
엄마로서의 역할만으로도 이미 일상이 버거운 두 사람이 며느리로서의 역할을 강요받은 느낌.
내 마음이 원하는 건 무엇이었을까.
환갑이 지나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아이들은 매일 같이 자란다.
입장 바꿔 생각하면 어머님에게 어머님 생신은 아주 특별했을지도 모르겠다.
서로 조금 양보해 가까운 친척들과 가족들끼리 식당을 예약해서 축하자리를 마련해도 되지 않았을까 생각이 된다.
물론 집에서 꼭 손수 음식을 해내라고 대놓고 요구하시지 않았다.
섭섭지 않게 해 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안 좋은 기억만 남았다.
내가 어떻게 행동하는 게 나를 위해 좋을까.
어느새 10년이 또 흘러 칠순을 일 년 앞두고 있는 시점이다.
이제는 음식을 해내는 것도, 집에 손님을 초대 하는 것도, 그 갓난쟁이는 9살이 되어서 이제는 그 어떤 상황이 와도 부담스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