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봉투의 의미

처음부터 쓸 생각이 없었습니다

by 사공리셋

1월 1일 새벽 양수가 터졌음에도 뱃속의 아이가 결국 아래로 내려오지 않아 감염위험이 있어 산부인과 의사의 손에 의해 제왕절개를 하고 우리 아이는 세상 밖으로 나왔다.


자연분만에 대한 공포심이 있었는데, 한편으로는 어찌나 감사하던지.


무서운 수술대 위에서 하반신 마취하에 이뤄지는 수술 과정이 꽤나 공포스러웠지만 기대감과 설렘이 교차해 그 날이 어떻게 지났는지, 장면 장면만 떠오를 뿐이다.


1월 1일 양수가 터져 입원한 나 같은 산모도 있었겠지만, 12월생을 피하기 위해 처음부터 수술을 계획한 산모들로 인해 그 날 하루 산부인과는 아주 분주했던 듯했다.


당일날 수술한 산모만 9명.

최단시간 9분대에 수술을 끝냈다며 의료진들끼리 얘기하는 소리도 어렴풋이 들렸다.

큰 소리로 울지 않는 첫째를 쳐다보며 '순하겠네, 근데 좀 못생겼다' 뭐 이러한 생각을 하며 신기한 듯 바라본 후 그다음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시댁 식구 친정식구 주변 친인척들의 축하를 받으며 그렇게 병원생활과 이어서 조리원 생활까지 엄마로서의 밤낮 없는 생활을 해나가고 있었다.


조리원에 방문하셨던 시아버님의 손에 들린 돈봉투 사건이 떠오른다.

"며느라 고생했다"며 건네주신 시아버님의 돈봉투.

어쨌든 용돈은 좋다. 지금도 누가 용돈 주면 좋듯이. 어른이 되고 받아본 기억이 드물어서 그 기분을 쉽게 떠올릴 수는 없지만 그냥 좋았던 것 같다.

온전히 나만을 위해서 주시는 용돈 같았기에.


사건은 그다음이었다.

아버님이 잠시 병실 밖을 나가시고 남편과 나와 시어머님 셋만 남은 시점이었다.

"돈은 허투루 쓰지 말고 아기 이름으로 통장 하나 만들어서 넣어 놔라!"

아버님이 없는 시점에 꺼내신 시어머님 말씀, 그리고 아버님 말씀과 다른 돈봉투의 정체.


내 감정에 이름을 붙인다.

미. 워. 하. 다


이 감정이 왜 생겼는지 생각해본다.

기대했던 바가 아니었기에 뜻밖의 선물 같았다.

나름 힘들었던 시기의 나를 토닥여주시는 시부모님 나름의 표현방식이라 생각해서도 참 좋았다.

생각해주시는 그 마음에도 감사했다.

그런데 시어머님의 반전이 너무 컸다.


내 마음이 원하는 건 무엇이었을까.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주신 돈의 용도는 이미 받아 들 때부터 머릿속에 병원비 조리원비로 쓰면 되겠다고 생각했기에 애초에 나의 순전한 용돈으로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그런데 굳이 시어머님 입을 통해 나는 당연히 아니고 갓태어난 아이에게 주시는 용돈이었다니 내 손을 거쳐 아이에게 주실거였으면 차라리 남편한테 전달하시지.


내가 어떻게 행동하는 게 나를 위해 좋을까.

병원비와 조리원 비용으로 다 썼다.

아이 이름으로 통장을 만들지도 않았다.

내 마음은 상처를 받지만 하신 말씀의 뜻대로 받아들이고 받아들이지 않는 건 나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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