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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 감정일기
05화
지난연말 모임이가져온 결말
세상에 나온 우리 첫째
by
사공리셋
Mar 29. 2021
1월 1일 새벽 1시 날짜와 시간도 잊을 수가 없다.
양수가 터져 택시 타고 응급실을 향했던 그 날.
2012년 12월 31일 산부인과 진료를 보러 갔다.
뱃속의 복덩이 예정일이 10일 정도 남은 시점 무탈하게 잘 있는지 마지막 정기검진을 하는 날이었
다.
"아이가 너무 커버렸으니 이제는 운동 많이 하고
빨리 출산합시다"
"네.
.."
무섭다는 생각 대신 '너무 힘드니 빨리 나와라!'진짜
그 생각이었다.
조금만 먹어도 트림에 위산 역류에다,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차오르니 그럴 수밖에...
이렇게 내 몸 하나, 아니 뱃속에 아이까지 둘 건사하기도 힘든데!!!
바로 그 날! 12월 31일!! 우리 시댁에서는 연말 모임 행사가 예고되어 있었다!!
사람 좋아하는 시아버님은 연말이니
한잔 해야 한다 하시며 가까이 사시는
동네 지인이며 친인척들을 집으로 불러 모으셨다.
만삭인 며느리 나, 뜻 밖에 임신도 같은 비슷한 시기에 되어 예정일 두어 달 남긴 동서까지 배부른 두 임산부 며느리와 시어머니는 음식 준비에 한창이다.
임산부는 앉아만 있으라 하시지만...
의. 미. 없. 다.
오지 말라고 했으면 몰라도...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하니 보시는 분들마다 두 며느리는 다른 데 가서 앉아 있으라고들 똑같이 한 마디씩 거든다.
의. 미. 없. 다.
임산부 유세라는 말 듣기 싫고, 잘해야 본전이지만, 이미 펼쳐진 일이다.
30년 넘게 사업을 일궈오신 시아버님 의견에 집안이 군대라 생각하면 큰 풍파가 없다.
사실 두 며느리 배가 이렇고 보니, 실질적인 수고로움의 크기는 시어머니가 가장 크기에 시어머님이 입 다물고 계시면
두 며느리는 묵묵히 따라가는 게 최선이다.
이 집안 분위기 알고 결혼한 거 아니고 이미 결혼했기에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
그냥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서른 명 가까이 모인 집안에서 분위기가 무르익으니 내 걱정하던 남편은 이미 먼 나라로 떠났고 또래 사촌들까지 오랜만에 만나 신이 난 눈치다.
양주까지 들이키
고
계시니 '그래, 자기라도 즐거워라!'
나는 그저 눕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모두들 맛있는 음식을 나눠먹고, 얼큰히 취해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시부모님께서 마무리는 우리가 할 테니 얼른들 챙겨 올라가라고 하신다.
넙쭉 인사하고 나왔다.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했던 듯하다.
터벅터벅 걸어 무사히 집에는 도착했는데 남편은 보란 듯이 거실에
기절하신다. 휴...
나 또한 몸은 피곤하지만 정신은 멀쩡했기에 깨끗이 씻고 잠옷까지 갈아입고 거실 바닥에 뻗어있는 남
편
을 뒤로하고 침대로 혼자 들어가
누워버렸
다.
기절한듯한데 또 방광에 신호가 온다.
여느 때처럼 게슴츠레 눈을 비비며 일어나 화장실을 향해 걸어가는데 따뜻한 물줄기가 주르르 다리를 타고 흘렀다.
순간' 나, 소변도 못 참은 거니?'정신이 번쩍 들었는데, 아차! 낮에 진료볼 때 간호사가 챙겨준 양수 테스트기가 생각났다.
심장이 쿵쾅쿵쾅! 손이 벌벌.
'설마.... 으악
, 양수다!!'
"오빠야....(흔들어도 미동도 없다)"
"오빠야, 양수 터진 것 같아"
"뭐?!"
벌떡 눈을 뜨고 일어난다.
'정신 차려야 할 때가 언제인지는 아는구나... 다행이네'
남편 혼자 난리법석이다.
난 이미 옷도 갈아입었고
싸 둔 출산 가방도 있고 소파에 앉아 남편 준비 끝나기만 기다리고 앉아 있다.
씻지도 않고 잠들었는데, 술도 덜 깼으니 정신없겠지...
사르르... 배가 주기적으로 아프기 시작한
다...
"얼른
가자! 배 아프다"
"어어... 그래그래...
"
차키를 찾는다
"당신 운전 못하잖아...."
"아.... 맞다... 택시가
있을까?(시계는 새벽 1시를 가리키고 있다)"
그걸 나한테 묻냐, 내가 어떻게 아냐, 누가 그렇게 술을 거하게 드시라고 했냐, 그래 오늘 터질 줄 너도 몰랐겠지, 오늘내일하는 하는 며느리를 두고 술자리가 웬 말이냐...
생각이 거슬러 올라가며
짜증이 폭풍처럼 밀려들기 시작한다.
그런데
짜증과 동시에 진통이 느껴지니
딱히 감정 소모할 새
도 없
었
다.
콜택시와 함께
우리의 구세주, 택시 아저씨가 나타났다.
"oo산부인과에 가주세요"
"아고, 애기 나올라하는가 보네요! 고놈 참 부지런하네! 이 시간에 잠도 안 자고"
"아... 하하하... 네..."
"첫쨉니까? 축하드립니다"
"아... 하하하... 네..."
웃음이 나오냐, 차가 덜컥거릴 때마다 아프다... 그리고 무섭다!!!
내 감정에 이름을 붙인다
한. 맺
. 히. 다
이 감정이 왜 생겼는지 생각해 본다.
여자라서, 그리고 결혼을 하고 한 가정을 이루는 데 있어 '엄마'라는 이름표를 달아주는 시간.
출산을 열흘 앞둔 며느리에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꽤나 예민하고 긴장되고 설레는 시간들이 혼재되어 그리고 그럴 때이면 혼자 조용한 시간으로 에너지를 채우는 며느리에게 있어 이런 이벤트는 크나큰 외부적 충격과 같았다.
내 마음이 원하는 건 무엇이었을까.
연말 파티
안 해도 별일 없다.
가족애를 중히 여기시는 시부모님 기준에 가족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배려를 받고 싶었다.
내가 어떻게 행동하는 게 나를 위해 좋을까.
좋은 택시 아저씨를 만나 무사히 병원에 도착했고, 아이도 건강하게 태어났다.
지
난 시간은 변하지
않
는다.
시부모님도 변하시지 않고 나도 변하지 않는다.
솔직하게 표현하자.
나를 지켜줄 수 있는 건 나 자신뿐이다.
"저는 집에서 쉬고, 남편만 보내겠습니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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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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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결혼 후 처음맞은 시어머님 수술 날
04
시어머님의대커님들
05
지난연말 모임이가져온 결말
06
돈봉투의 의미
07
시어머님의 환갑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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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차 보건의료정보사 퇴사. 보건의료직에서 AI에게 자리를 내어준 뒤, 삶이라는 데이터를 다시 읽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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