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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 감정일기
10화
집을 비울 테니 밥을 차리거라
밥 차리는 사람
by
사공리셋
Apr 9. 2021
어머님께서 친구분들과 제주도를 가신다고 하
셨다.
친구들끼리 멀리 여행 가시는 일이 거의 없었기에 의아했지만 그냥 그러려니 했다
.
"어머니, 제주도 여행 가신다면서요? 언제 갔다 언제 오시는 거예요?"
"안올꺼다"
"네???"
"너희끼리 잘 살아라..."
"하하. 왜 그러세요..."
'그럼 그렇지...뭐가 있구나'생각은 했지만 그냥 자세히 여쭙지는 않았다.
여쭙는다고 미주알고주알 설명하실 성격도 아니
시
고, 전혀 예상
이 되지 않아
서
답답하긴 했지만 어머님 속마음 알 사람 아무도 없고, 나보다 조금 소식통이 빠른 동서에게서 연락이 왔다
"형님, 들으셨어요? 어머니 제주도 가신다는 거요"
"어! 왜 가시는 거야?"
"아버님이랑 뭐가 안 좋으신가 봐요"
"응? 아버님이 비행기표 알아봐 주신다던데?"(이건 남편에게 들었다)
"아, 그래요? 그럼 뭘까요..."
모두가 사실이었다.
아버님과 다투셨고, 어머님이 강하게 나오신
뜻이 제주도에 여행 가서 돌아오지 않겠다는 듯했고 아버님은 가겠다면 가라 절차를 도와주시는 듯 보였다.
"잘 다녀오세요" 웃으며 보내드리기도 뭣하고, 평소와 다른 강수를 두신 느낌이라 '진짜 언제 오실지 기약이 없으신 건가? 그럼 같이 가는 친구들은? 여행이겠지 뭐...'하고
혼자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주말이 다가와 자연스럽게 한자리에 모였다.
함께 여행에 동행하신다는 친구분 역시 윗 윗집에 사시는 오래된 이웃사촌 같은 친구
분도 와계셨다.
시
아버님 :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같이 잘 다녀오세요!"
이웃사촌분께 말씀하셨다
시
어머님 : "나는 언제 올지 모른다!"
시
아버님 : "또, 쓸데없는 소리 한다"
무슨 분위기...
혼자만
의 시간이 필요하신가 보다.
나도 여자라 그 마음 잘 알지...
어머님은 이제 자유의 몸이신데 뭐가 걱정이
야...
푹 쉬다 오세요...
이웃사촌분 : "우리가 데리고 올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언니야 없으면 아주버님 밥은 우짤껀데, 언니가 있어야지 괜히 그런다~"
시어머님 :
"밥은 뭐가 걱정이고, 여기 며느리가 둘씩이나 있는데
!"
농담 반 진담 반이라 해도 듣는 며느리 불편하다.
넋 놓고 있다 갑자기 머리 꽝!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집을 비우시는 건 기정사실이고 돌아올 기약 없는 여행길에 며느리는 남아계신 시아버님의 끼니를 아침저녁으로 신경 써드리라는 말씀
?
??!!!!
부부 싸움해
서 자리를 비우시는 것도 어쨌든 비우는 거니까 끼니를 챙겨드려야 한다?
?
?!!!!
그럼 좀 며느리들에게 미안 할
텐
데???!!!!
그럼 어디까지가 며느리에게 선택권과 자유권이 있는 거지?
동방예의지국에서 여자로 태어나 결혼을 하고 며느리가 되면 이런 건 스스로 선택하고 통제할 수 없는거였어?
우와...나 그럼 결혼 안했을껀데?!
정답은 모르겠어서 애매한 포지션에 서서 스스로를
현대판 조선시대 며느리라 일컫는다.
내 감정에 이름을 붙인다.
답
.
답. 하. 다
이 감정이 왜 생겼는지 생각해본다.
신혼초
시
어머님의
부재 때 시이모님께 혼나고 가르침을 받아봐서! 어머님이 따로 말씀 안 하셨어도 시아버님의 식사를 챙길 거였다.
나의 방식대로.
아침은 애들 챙겨 출근해야 하니 패스.
저녁은 마땅히 드실 게 없으시면 우리 집으로 오시라고도 했을 거고, 우리도 마땅히 없으면 함께 식당에 가시자고 했을 거였다.
며느리도 이미 일상이 바쁜 현대인이다.
그런 요소들을 요구해서도, 강요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시
어머님은 대놓고 요구를
하신
거였다.
내 마음이 원하는 건 무엇이었을까
아버님과 다툼이 있었고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씀해 주셨더라면.
오래 집을 비우고 싶
은데 솔직히 끼니가 걱정된다고
말씀해 주셨더라면.
동정심과 공감에
최선을 다하고 손잡아 드리며 보내드렸을지도...
내가 어떻게
행동하는 게 나를 위해 좋을까
시어머님은 표현이 서투른 사람이다.
오래 집을 비우려니 아버님께 미안한 마음도 조금
있으셨나 보다.
며느리가 밥하는 사람이라고
얘기한 거 아니다.
내 마음이 이끄는 대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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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
시어머니
결혼
Brunch Book
며느리 감정일기
06
돈봉투의 의미
07
시어머님의 환갑잔치
08
어머니, 우리가 남인가요?
09
아들, 나도 여기가 아프다
10
집을 비울 테니 밥을 차리거라
며느리 감정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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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차 보건의료정보사 퇴사. 보건의료직에서 AI에게 자리를 내어준 뒤, 삶이라는 데이터를 다시 읽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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