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했기 때문에 그것만으로 주어지는 나에 대한 역할, 규제, 제약, 치고 들어올 수 있는 누군가의 권리 그것들 속에서 행복할 수 없었던 사람이었던 것 같아
- 칼럼니스트, 곽정은-
서른 즈음의 외로움과 불안에 무릎 꿇지 말라는 말, 그 말을 누군가 나에게 해주었더라면 나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내가 서른 즈음 "해야 한다"는 자연스럽게 습득된 관념 속에서 유학 대신 결혼을 선택했고, 그 결과 내 삶의 방향이 송두리째 바뀌었던 것처럼 어떤 선택을 하든 가보지 않은 선택에 대한 아쉬움과 환상은 쉽게 버려지지 않는다.
마흔이 된 지금도 그때 가보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으로 유학이란 단어를 떠올리며, 이제는 우리 아이들이 몇 살쯤 되면 함께 데려갈 수 있을까를 검색해보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면 쓴웃음이 난다.
내가 포기하지 않는 한 세상은 계속해서 기회를 주겠지만, 언제가 될지 모르는 막연함으로 늘 공허함이 함께하고 있어 썩 그 상상이 유쾌하지만은 않다.
이제는 혼자가 아니라서 나에 대한 뚜렷한 신념과 주관이 없으면 날마다 방황하다 시간을 흘려보내게 될 것만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회가 강요하던 삶을 살아야만 크게 행복한 줄 알고 먼저 살아본 어른들이 제시하는 그 방향대로 나아가야지만 불안하지 않으니까, 그래서 대학에 갔고 졸업해서 남들이 좋다는 직장에 취업했고 서른에 나이가 되어서 결혼을 했고 큰 아들을 남편으로 맞이하여 장손을 낳았고 완벽하게 그렇게 세상도 내가 정석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 듯하다.
개구리처럼 폴짝 뛰어서 그 틀을 뛰어나오고 싶은 충동이 들었던 건 회사에서도, 집안에서도 나를 잃어버린 것 같은 생각이 파도처럼 아니 쓰나미처럼 강하게 몰려들었던 그 날부터였다.
'날 좀 제발 내버려 둬'라는 외침을 미친 듯이 해댔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2년 전 인생 전선에서 stop을 외치고 '쉼'의 포인트를 가졌다.
내가 어떨 때 행복하고 어떨 때 즐거운지를 처음으로 탐색해보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렇게도 다양한 삶의 방식이 있는 줄 미처 몰랐다.
새로운 세상을 구경하고나니 알고 있던 틀을 깨부수는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누군가 서른 즈음 중요한 결정과 고민을 하는 데 있어, 판단의 기준을 바깥에 두지 않고 내공이 쌓여있던 내 안에 있었더라면 10년 전 그때의 나는 어떤 선택을 했었을까?
결혼을 그렇게 수면위로 올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진짜 스무 살로 시간을 되돌려 탐색하고 싶었지만,
진짜 스무 살로 돌아갈 수 없었던 이유 중에 하나는 내가 우선순위가 아닌 내가 소속된 가족 구성원과의 조화가 일순 뒤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내가 소속된 작지만 하나의 소중한 세상이 만들어져 있었다.
지금은 그 기준 안에서의 행복 요소들로 하나씩 채워나가지만, 쉼의 시간 이후로 내 마음을 읽어줄 수 있는 나 자신이 되어 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앞으로의 행복한 나날들이 보장된 것만 같은 기분을 느낀다.
'나를 영원히 믿고 지지해줄 사람은 단 한 사람 나뿐이다'
나를 포함해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현대인들이대부분이지만, 코로나로 세상이 멈추어버렸을 때 그 흐름을 타고 잠시 멈춤의 시간을 가지고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참 좋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