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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공리셋 May 24. 2021

가족간 사회적 거리두기

청개구리 며느리

나도 두 아이의 엄마이기에 엄마로서의 시어머님을 이해해보기로 했다.


우리 시어머니도 내 남편의 엄마였다는 것.

자식들에게 유난히도 의지하고 자식들 생각하며 힘든 고난을 겪어내었던 엄마였다는 것.

그래서 지금도 결혼해서 독립한 자식들을 쉽게 손안에서 내보내기 힘든 엄마라는 것.


난생처음으로 아니 결혼 후 처음으로 시어머님께 내가 먼저

"어머님, 애들이랑 가까운 곳으로 펜션 잡아 놀러 갈 건데 같이 가실래요?"

라고 여쭈었다.

"너희끼리 가라, 내까지 뭐하러"

"그냥 가까우니 기분전환도 할 겸 같이 가세요"

"... 그럴까..."

이런 아이디어가 떠올랐던 건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시어머님이란 존재가 나에게 상처만 주는 피하고 싶은 상대였는데!

한 명의 여자로서의 시어머니, 그리고 그 여자의 인생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다시 보게 되었던 이 사건!

시어머님이 동서와 큰며느리인 나사이에서 이간질로 크나큰 집안싸움이 될뻔했던 사건! 브런치에도 썼었다.

https://brunch.co.kr/@anshion/41

https://brunch.co.kr/@anshion/45



위 사건이 있은 후 9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어머님이 이전과 많이 달라지셨다는 게 느껴진다.

본인 스스로도 많은 생각의 변화가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자식들에게서 스스로 떨어지고자, 손에서 내려놓고자 노력하고 계신지도 모르겠다.


위의 사건 당시 두 아들은 지독히도 너무나도 객관적인 태도를 유지했었고, 사실 누가 봐도 시어머님이 사건의 시발점이었기에 마음으로는 시어머님이 잘못했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아들 둘 다 말을 아끼고 있었다.

당연히 어머님은 본인 편에서 이야기해줄 거라 믿었을 텐데 도련님도 남편도 어떠한 액션을 취하지 않고 연락도 않고 오히려 지마누라들 편에서 있다는 생각마저 들도록 행동하고 있었으니...

두 며느리들은 전화로 시어머니께 섭섭함만 토하고 있었으니...

시아버님은 처음부터 시어머님의 의지 대상이 아니었기에...

이미 어머님의 마음속에는 대지진이 일어난 격이었다.

처음으로 자식들에게서 큰 실망과 함께 상실감을 얻은 듯했다.


위의 사건이 시간이 흘러 일단락된 이후 이 예민한 며느리는 느낌으로 알아챘다.

시어머님이 이전과 많이 달라지셨다는 것을...

이전에는 바빠서 연락 못 드리고 아주 오랜만에 안부전화드리면 목소리부터 퉁명하시던 시어머님디가시 오히려 친철하다... 

머리 다 커버린 자식들 품안에서 내보내지 못해 늘 키느라 자식 말 잘 안들으시던 분이 우리말을 귀담아 듣 계시고...

어쨌든 많이 변하셨다.


어쩌면 집안 사건 코로나로 인한 식당 집합 금지가 자주 만나 밥을 먹어야 하는 우리 열 가족을 자연스럽게 떨어트려 놓았는지도 모르겠다.


너무 가까워서, 너무 애틋해서 특별한 가족애를 자랑하느라 많이 다쳤던 내 마음이 지금은 너무 편안해진 것을 보면 진즉에 필요했었다.

가족 간 사회적 거리두기가.

다른 가족 구성원들은 모르겠지만 자그마치 나는 그러했다.


시어머님을 대할 때 말의 내용과 상관없이 10년이 지나도록 변하지 않는 상처 주는 말투로 인한 감정 소모의 횟수가 줄어서 좋고, 가족의 경계가 모호하게도 열 가족에게 퍼져 있던 관심과 에너지가 네 가족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과 에너지로 집중되어서도 좋았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며느리로서 시어머님을 생각하고 걱정하는 마음이 진심으로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미운 감정 때문에 며느리로서의 의무감마저도 냅다 버리고 집 나가버리고 싶기가 다반사였는데, 지금은 '홀로서기(내 눈에 비치는 시어머님 상태)에 들어선듯한 시어머님 괜찮으신가?' '화장실을 너무 자주 신다는데, 장 건강에 비상신호가 켜진 거 아닌가?' '장 건강이 사람의 기분을 좌지우지한다는데 혹시 홀로서기 과정에 마음의 동요가 일어나고 있지는 않으실까?' 걱정하는 마음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쌓여온 미운 감정들이 흐르는 시간에 의해서 하나씩 잊혀가고, 코로나 거리두기를 통한 가족간의 물리적 거리두기 시간도 길어지면서 가져오는 감정들이 나는 청개구리 며느리가 되어가는 중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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