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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의 詩 / 에스프레소적 야구 경기

시 한 구절이 가을에게서 추출한 추억 한 잔

by The Answer

에스프레소적 야구 경기

황수아


공을 닮은 새가 장외로 날아가는 오후,

타석에 들어서듯 비장하게 그러나

익숙한 손놀림으로 커피머신의 전원을 올린다

1회 초 첫 타자의 첫 타구를 기다리는 동안 물이 끓고

1회 초 첫 타자의 첫 타구가 2루타로 뻗을 동안

커피는 너무 쉽게 완성된다


찻잔 속에는 쓴맛도 단맛도 아닌 마음이 있다

그 마음이 내 혀끝을 적시기 전에

경기장은 이미 승자와 패자가 갈린 듯 산만하다

뜨거운 찻잔에 손바닥을 대며 복잡한 커피의 맛을 떠올려 보지만

승리든 패배든, 장타든 단타든

1회 초 노아웃에 터지는 환호는

어딘가 어색하다는 걸 부정할 수 없다


커피 한 잔보다 가벼운 시간이 흘렀을 뿐인데

선발투수가 너무도 깊게 고개를 숙인다

결국 지는 쪽을 응원하게 되는 건

찻잔과 홀로 마주하는 습관처럼 쓸쓸하다


노아웃 투쓰리에 두 번째 커피

마운드는 너무 빨리 식었고

장난처럼 뜨거운 커피에 혀를 덴다




4월의 어느 날이었다. 가을은 이른 퇴근 후 재빨리 집으로 와 미리 준비한 응원장비와 유니폼을 챙겨서 아들에게로 향했다. 아들의 학원 마치는 시간에 맞추느라 허겁지겁 달려온 학원 상가 앞. 아들은 이미 들뜬 마음을 온몸으로 표현하며 가을을 기다리고 있었다. 가을은 빙그레하며 문학 경기장으로 차를 몰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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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9일 문학구장의 모습(왼쪽)과 아들과 파울을 잡기 위해 챙겨간 글러브(오른쪽). 아들이 가끔 경기 관람에서 지루함을 느낄 때면 밖으로 가서 캐치볼을 하곤 한다.


조금 늦게 도착한 야구장. 서둘러 주차한 후 매표소로 향했다. 순간! 큰 함성소리가 들렸다. 초행길이라서 길을 잘못 들은 외야에서. 필시 홈런인 게 분명해 보였다. 다만, 우리의 것인지가 관건이었던 것.

가을은 아들과 좌석으로 향하면서 누구의 홈런인 내기를 했다.

쓱인지, 삼성인지, 그리고 어느 선수인지.

서로 설렘 반, 걱정 반을 안고 겨우 올라간 그곳에서는 1회 말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랬다. 그 소리는 우선, 삼성 팬의 응원소리였다.

기쁜 마음을 안고 가을과 아들은 그들의 좌석을 찾아 앉았다. 나쁘지 않은 위치였다. 3루 정면으로 그라운드 전체를 조망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김상헌 응원단장의 모습도 잘 보였기 때문이었다.

다음, 가을은 누군가의 솔로 홈런인지 궁금했다. 좌우앞뒤를 두리번거렸다. 누군가에 얘기해주지 않을까 싶었던 것. 그의 내성적인 성향 탓에 선뜻 물어보지 못하고 있는 차에 옆 좌석에 앉은 분이 알려주셨다. 낯설지 않은 억양. 그는 분명 고향이 경상도. 대구인지 부산인지가 궁금했다. 아마 대구나 경북 분이었을 것이다. 부산 사람이 삼성을 응원할리 만무했기 때문.

여하튼, 홈런의 주인공은 바로 구자욱. 삼성의 캡틴이고 없어서는 안 될 존재, 프랜차이즈 선수. 가을은 삼성팬으로 이제 구자욱이 없는 삼성은 상상하지도 못하겠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가을은 구자욱을 과소평가하고 있었다. 그 오판의 역사는 코로나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때는 바야흐로 2019년 10월의 어느 날. 당시 가을은 육아와 일에 치여 야구를 열광적으로 보지 못했던 시절이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대구의 푸른 피가 흐른다는 점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었다.

가을은 모처럼 귀촌하신 부모님이 계신 경북 의성에 들렀다. 금요일 저녁 무렵에 도착한 가을은 어머니께서 준비한 음식에 소주 한 잔하며 그동안의 얘기를 풀었다. 시시콜콜한 얘기부터 사뭇 진지한 것까지. 아내한데 하지 못했던 얘기들까지도. 오랜만에 부모님과 오붓한 시간을 보냈다.


다음날, 가을은 대구에 사는 동생을 만나기로 했다. 가을은 약속 시간보다 이른 시간에 집을 나섰다. 2016년 3월에 개장했던 라팍에 아직 직관도장을 찍지 못한 터라 아들과 함께 라팍 나들이를 계획했던 것이다.

가을은 곧장 대구 야구의 심장으로 향했다. 라팍은 조용했고, 가을은 아쉽게도 그 한산한 경기장을 어깨너머로 봐야만 했다.

포스트시즌 기간에 경기장이 여유로운 이유는 단 한 가지. 삼성의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2019년 당시에는 최종 순위는 롯데, 한화에 이은 8위, 승보다 패가 많은 승률 4할 초반의 초라한 성적이었다.

비록 이곳 주인장들의 성적표는 만족스럽지 않지만 그들의 집은 그렇지 않았다.

푸릇한 잔디와 황금빛 내야, 그리고 높은 가을 하늘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 부채꼴의 그라운드,
팔각의 푸른 다이아몬드가 마치 그라운드를 품고 있는 듯한,
금방이라도 품격 있는 오페라 공연이 시작될 것만 같은,

가을은 라팍에서 아늑하고 포근함, 그리고 웅장함이 느껴졌다. 가을은 3살 배기 아들을 안고 코지한 라팍의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언젠가는 꼭 직관할 것을 다짐하며(그 다짐은 2025년 6월 7일에서야 이루어졌다. 요즘의 티켓팅은 별따기가 더 쉬울 정도로 어렵다).


IMG_6295.HEIC 2019년 10월의 어느 날, 외야에서 바라본 라팍의 모습.




사실, 가을은 라팍보다는 대구 시민운동장 야구장을 친숙했다. 그의 추억을 품고 있는 곳이라 더더욱. 다소 많이 낡은 대구 시민야구장은 현재의 라팍과는 규모면이나 시설면에서 턱없이 부족했고 초라했다. 그래도 가을은 시민야구장에서 가족과 함께, 성당동 사자들과 함께 삼성을 응원했던 추억은 매우 소중했다. 특히, 친구들과의 야구장 추억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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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까지 삼성의 홈구장으로 사용했던 대구 시민야구장의 모습. 1996년, 2007년 각각 확장공사를 실시하여 인조잔디도 깔아서 그나마 선수들의 부상을 예방할 수 있었다.


어린 시절의 가을과 친구들은 처음부터 야구 경기를 볼 수가 없었다. 야구표를 구입하기엔 그들의 용돈은 넉넉하기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야구장 근처에서 캐치볼을 하며 시간을 보냈고 6회 말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야구장 안에서 가끔씩 관중들의 환호성이 들려올 때면 그 이유가 궁금해서 지나가는 아저씨나 매표소 직원께 물어보기도 했다. 아니면 친구들과 가위바위보를 해서 진사람이 입구를 뚫어보기도 했고(당연히 그 친구는 여차 없이 입구를 지키고 있는 아저씨한데 혼쭐이 났지만).

이렇게 가을과 그의 친구들이 야구장 밖에서 시간을 때우며 6회까지 기다리는 이유는 간단했다. 공짜로 야구장에 들어갈 수 있었기 때문. 그들은 그 시간대부터는 암묵적으로 입구가 열려 있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다. 주머니가 얇은 그들로서는 이 방법이 야구를 공짜로 직관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7회 초부터 야구 경기를 볼 수 있었고, 대체로 삼성의 관중들은 성이 나 있는 상태였다. 그들은 사람들이 왜 화가 났는지 파악하는데 오래 걸렸지만, 차츰 눈치가 빨라져서 저만치 떨어져서 야구경기를 봐야만 했다.

가을은 지금에서야 살펴보니 1991년, 1992년 당시 김성근 감독이 삼성의 지휘봉을 잡고 있었고 선수들과의 불화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리하여 타구장에 비해 유독 삼성 홈경기 관중이 감소하는 추세였고 빈 관중석을 메우고자 궁여지책으로 6회 말 이후 입구를 개방한 것으로 보인다. 가을은 이 같은 불황기의 특수(?)를 톡톡히 누린 자들이었고.

여하튼, 가을에게는 토큰(token) 두 개만 있으면 좋아하는 야구를 볼 수 있었던,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못 할, 돌이켜보면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가을은 그의 추억이 묻어 있는 옛날의 시민야구장이 현재 사회인 야구와 유소년 야구 경기를 위해 리모델링한 상태로 운영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자칫 그 자리엔 공원이 조성될 뻔했다는 소식도. 그는 자신의 추억 속 한 페이지가 사라지지 않았기에 언제든지 갈 수 있다는 생각에 안도했다. 마치 성당동 사자들의 홈구장이 아직 건재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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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사회인 야구장으로 리모델링해서 사용 중인 전 대구 시민야구장의 모습. 외야 산책로에는 이승엽 선수의 56호 기념물이 설치되어 있는데, 아마도 홈런볼이 떨어진 위치로 추정된다.


한편, 가을은 라팍에 방문한 김에 3살 배기 아들에게 유니폼 한 벌을 선물해주고 싶었다. 그 자신은 '삼성 왕조' 시절인 2012년에 구입한 것을 입고 있지만 아들에게는 2019년 신상을 입히고 싶었던 것. 색상은 뭐니 해도 푸른색. 가을의 유니폼 색상과 아내의 그것과도 깔맞춤 하기로 했다.

다음 스텝은 마킹. 누구의 이름과 등번호를 새길 것인지 유심히 살펴본 결과, 구자욱이 눈에 들어왔다. 2015년 신인왕, 신인 시절부터 올스타 선발, 각종 수상한 좋은 선수라는 걸 귀동냥으로 알고 있었던 터. 하지만 가을의 눈에는 그가 과연 삼성의 주축으로 성장할 수 있을지, 삼성의 레전드가 될 것인지 의문스러웠다.

가을은 아들에게 그저 유명한 선수보다 본받을만한 선수를 선물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은 바로 이승엽.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커리어와 그의 인성 때문이었다. 이 같은 생각은 비단 가을만은 아니었다. 구단측에서는 크보 최초로 전구장 은퇴투어를 기획했고 타구단에서도 흔쾌히 수락해 주었다. 또한, 삼성 구단은 그의 선수 시절 업적과 더불어 삼성팬, 나아가 전 국민의 지지를 받는 그의 명성에 걸맞은 대우하기 위해 그의 등번호 36번을 구단의 세 번째 영구결번으로 지정하였다. 첫 번째 영구결번은 22번 이만수. 가을의 어린 시절 영웅이 1997년 원클럽맨으로 은퇴 후 팬들의 요청에 따라 2003년에 지정되었고, 두 번째는 2010년 은퇴한 10번 양준혁, 네 번째는 2025년 9월의 마지막 날 은퇴한 21번 오승환이다. 현재 라팍에 방문하게 되면 3루 쪽 스카이 좌석 부근에 22번, 10번, 36번, 21번이 나란히 붙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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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스토어에 방문하여 유니폼과 이승엽 선수의 등번호와 이름을 마킹한 모습. 당시 3살이었던 아들은 이제 9살이 되었다.


가을은 아들에게 이승엽 선수의 인성을 본받게 하고 싶은 마음에 그의 이름과 백넘버를 마킹하기로 했다. 하지만 가을은 지금에서야 그 당시 구자욱의 실력과 인기, 그리고 근성과 인성, 발전 가능성을 제대로 알지 못했던 것을 인정한다. 그래서 가을은 오늘날 2019년 당시 아들에게 구자욱의 등번호 65번을 달아주지 못해 아쉬워했다. 구자욱이 65번을 달고 경기에 출전한 것은 그해가 마지막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2020년 시즌부터 등번호를 5번으로 변경했다. 원래의 번호를 달고서 본인이 평가하기에 큰 활약을 하지 못하고 팀에 기여한 바도 크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잦은 부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김한수 전 감독의 승낙을 받고서야 김 감독이 선수시절 달았던 5번이 이젠 구자욱의 백넘버가 되었다. 참고로 김한수 전 감독은 2002년 삼성이 처음 우승하던 시절의 주장이었고, 2000년 시드니 올림픽과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서도 국가대표로도 활약한 뛰어난 선수였다. 또한, 삼성라이온즈의 등번호 5번 계보는 아래와 같다.


김성철(1982) → 김성래(1984~1996)

→ 김한수(1997~2008) → 조동차(2009~2018)

→ 구자욱(2020~현재)




황수아* 시인은 1회 초 원정팀의 장타로 홈팀의 경기 초반 침울한 분위기를 커피에 비유하였다. 그 시구 덕분에 문득 떠오른 구자욱의 홈런을 시작으로 라팍의 첫 느낌과 시민운동장의 추억, 삼성의 영구결번, 아들의 유니폼 마킹 사연과 구자욱의 등번호 서사까지.

가을은 시 한 수에서 시작한 본인 의식의 흐름을 쫓아가는 것이 좋았다.

생각의 물꼬는 예상한 지점에서 트이지 않고,

추억 소환은 예상치 못한 시구에서 떠오를 수 있다는 점을,

새삼 느꼈다.


이번 이닝에서 못한 얘기는 다음 이닝에서 계속됩니다.



*황수아

1980년 서울 출생

중앙대 문예창작과 박사과정

2008년 <문학수첩>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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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목,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