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원가에서 듣는 고향의 소리는 감동이다
허니크루
삼성의 승리를 위하여
외쳐라 최강 삼성
언제나 우리 함께 하리
우리는 삼성 라이온즈
들리는가 우리의 목소리
보이는가 우리의 모습
대구의 자랑!
대구의 자존심!
언제나 함께 하리라
함! 께! 가! 자! 라! 이! 온! 즈!
삼성의 승리를 위하여
외쳐라 최강 삼성
언제나 우리 함께 하리
우리는 삼성 라이온즈
언제나 우리 함께 하리
우리는 삼성 라이온즈
가을은 고향 대구를 떠나온 지 25년.
대구에서 살았던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타지에서 보냈다.
집을 떠나온 것을 치자면, 3년이 더 플러스.
합산 28년의 세월을
그는 집을 떠나,
고향을 떠나
외지인으로 살고 있다.
그 당시 가을은 마냥 좋았다.
부모님의 곁을 떠나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다는 것이.
대학 시절,
늦은 귀가로 엄마에게 혼날 걱정은 애초에 없었기에
게임에 빠져서 몇 달을 PC방에 살았던 것이
허구한 날 동기들과 술독에 빠져봤던 것이.
지금 생각해 보는
철이 없는 행동이지만
해볼 것은 어느 정도 다 해본 그였다.
직장 생활,
친척도 없고 친구도 없는,
수도권 어느 마을에 터를 잡아
본격적으로 사회생활을 하던 당시,
그는 자기 멋대로 자유로운 생활을 누렸다.
누구의 눈치 볼 것도 없었고
시험 준비하느라
절제했던 수많은 욕구들을 분출하며
하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경험했다.
그렇게
가을은
혼자서 타지살이를 하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웠고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란
크게 느끼지 않았다.
하지만
.
.
.
어느 순간,
문득,
고향 대구가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가을은 삼성이 수도권에서 경기가 있을 때면 종종 찾아갔다.
가을의 어린 시절의 영웅이자 추억 그 자체인
그들의 푸른 유니폼을 보노라면
자연스레 고향 대구가 떠올랐기 때문.
그렇게
가을의 마음속엔
차츰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었다.
최근 가을은 아들과
부지런히 경기장을 찾는다.
그곳에서
가을은 목청껏 응원하는 것을 좋아한다.
아들도 처음엔 쑥스러운지 앉아만 있다가
이젠 아들이 먼저 일어나
김지찬, 김성윤, 구자욱,
디아즈, 김영웅, 박병호,
이재현, 강민호, 류지혁 등
여러 선수들의 등장곡과 응원가를 율동과 함께 외친다.
가을도 처음엔 옆사람들을 따라 흥얼거리고 동작을 취하며 응원에 참여했는데,
더욱 신나게 응원하려면 응원가의 종류와 가사들을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품, 귀품을 팔아가며 삼성의 응원가를 듣고 가사를 숙지했다.
가을의 플리엔 삼성 응원가로 가득 차고 있었다.
그는 주로 출퇴근 시간에 응원가를 들었다.
그 시간의 가을의 차 안은 이미 삼성의 경기가 한창일 정도로
열창도 그런 열창이 없을 정도였다.
승리의 라이온즈까지,
직장까지
그리고
집까지
가을의 차는 거침없는 응원의 질주
그 자체였다.
직관하던 어느 날,
가을은 아들과 함께 응원가를 따라 부르는데,
"00의 00! 00의 000!"
이라는 노래가 듣게 되었다.
처음엔
'저 노래는 뭐지?'
라며 그냥 흘려 들었다.
다음 직관에도 같은 멜로디가 들렸다.
"00의 자랑! 00의 자존심!"
'삼성의 자랑이라고 하는 건가?'
이제 이 노래의 정체가 점점 궁금해졌다.
그다음 직관에서 가을은 온몸에서 전율을 느꼈다.
"삼성"이라고 여겼던 그 박자에
대구
라는 단어가 들어 있었던 것.
그는 매우 기분 좋은 느낌을 받았고,
본인은 현재 수원이지만
마치 고향에 온듯한 기분이었다.
타지에서
대구
많은 사람들에 의해
우렁차게 외쳐지는 공간
그 한가운데 고향 출신인 자신이 있다는 사실이
그에게는
큰 감동과
울림이었다.
사실,
고향이나 그 근처에 터를 잡은 사람들은
가을의 이 마음이 쉽게 이해할 수 없을지도.
타지살이의 경험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고향의 그리움이 찾아오는 때가 있는 법.
가을은 20, 30대까진 이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가지 못하는 곳이 아니었기에
언제든지 갈 수 있다는 생각에
그리움이 만연하지 않았던 것.
하지만
40대 중반이고
하늘의 뜻을 알게 되는 때가 가까울수록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찾아오고 있었다.
고향 생각이 문득 떠오르는 날이 많아졌던
2024년 겨울,
본인보다 더 많은 세월을 타지에서 지내는
선배가 부른 어떤 노래를 듣고
고향에 대한 깊은 그리움을 느꼈다.
조용필
화려한 도시를 그리며 찾아왔네
그곳은 춥고도 험한 곳
여기저기 헤매다 초라한 문턱에서
뜨거운 눈물을 먹는다
머나먼 길을 찾아 여기에 꿈을 찾아 여기에
괴롭고도 험한 이 길을 왔는데
이 세상 어디가 숲인지 어디가 늪인지
그 누구도 말을 않네
사람들은 저마다 고향을 찾아가네
나는 지금 홀로 남아서
빌딩 속을 헤매다 초라한 골목에서
뜨거운 눈물을 먹는다
저기 저 별은 나의 마음을 알까 나의 꿈을 알까
괴로울 땐 슬픈 노래를 부른다
슬퍼질 땐 차라리 나 홀로 눈을 감고 싶어
고향의 향기 들으면서
저기 저 별은 나의 마음 알까 나의 꿈을 알까
괴로울 땐 슬픈 노래를 부른다
이 세상 어디가 숲인지 어디가 늪인지
그 누구도 말을 않네
슬퍼질 땐 차라리 나 홀로 눈을 감고 싶어
고향의 향기 들으면서
고향의 향기 들으면서
선배는 가을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 역시
종종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칠 때가
있노라 고백하기도 했으니.
그럴 때면
이 노래를 불렀노라
잠시라도 그 감정을 풀 수 있었노라
고해성사하듯
가을에게 읊조렸다.
선배는
그곳에서 터를 잡고 싶어도
혼자가 아니기에
그럴 수 없음을
뭇매 아쉬워했다.
가을은 사람들에게 고향을 말할 때면
항상 듣는 레퍼토리가 있다.
그들은 대체로 대구를 이렇게 묘사하고 있었다.
더워도 너무 더운 대프리카
사고란 사고는 다 났던 지하철 참사의 현장
사과 말고는 맵고 짠 음식들이 즐비한 맛없는 고장
볼거리란 단 1도 없는 재미없는 곳
지금에 와서야
대구가
치맥 페스티벌, 막창과 곱창, 닭똥집, 떡볶이 등등
먹거리로 유명해졌고
삼성 라이온즈로 대구란 고장이 잘 알려지고 있지만
이 같은 긍정적인 이미지가 퍼지기 시작한 지가 그리
오래되진 않았다.
그래서인지
가을도 한동안 고향 대구에 대한 애정이
크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 가을에게
고향 대구는
이것저것 따지지 않는,
고향 자체로,
삼성 라이온즈의 애정만큼이나
자랑스럽고 그리운 곳이
되었다.
앞으로도.
얼마 전,
가을은 학교 급식에서 또 다른 고향을 만났다.
가을의 중고등학교 시절
배고픔을 달래준 대구 서문시장에서
먹었던 납작 만두.
튀기듯 구워서 간장양념만
훅, 뿌려서 먹는 그 간편한 음식.
가을과 친구들이
쉬는 시간 몰래 학교를 빠져나와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먹어치웠던
추억의 음식.
비록 간장 대신
채소무침이었지만 좋았다.
그렇게
가을은 고향 대구를 한없이 음미했다.
대구는 가을의 자랑! 가을의 자존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