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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오는 길

야구는 집으로 돌아오는 여정을 그리는 서사

by The Answer


"야구는 집에서 출발해 집으로 돌아오는 스포츠예요."
- 영화 <미스터 고> 중에서
야구의 궁극적인 목표는 집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먼 길을 돌아, 집주인의 퉁명스럽고 의례적인 인사말이 있을지언정 반겨주는 단 한 사람이 있다면 기꺼이 집으로 돌아갑니다.
가는 길이 낯설고, 걸음이 가볍지만은 않지만 기어코 집으로 돌아가야만 합니다.
집으로 가는 길, 치열한 중위권 경쟁의 고비가 남아 있습니다.
누군가에겐 달콤한, 또 누군가에게는 편치만은 않은 야구는
집으로 돌아가야 마침내 그 의미를 갖습니다.
- KBS 권성욱 캐스터 오프닝 멘트 -




프롤로그


우리나라와 일본 등에서는 "들 야(野)""공 구(球)"를 써서 야구,

'넓은 들판에서 하는 공놀이'라고 부르고,

중국에서는 봉구(, Bàngqiú)라고 부르며

'방망이로 공을 치는 운동'이라는 의미를 지녔다.

이처럼 같은 문화권이지만

각 나라에서 야구의 어떤 특징에 초점을 두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야구 용어의 유래를 따지면 이견들이 있겠지만

"현대 야구의 중심"이면서

"Base-ball"란 명칭이 탄생시킨 미국을 기준으로 살펴보자.

Base-ball은 누(base)와 공(ball)의 합성어다.

우리나라, 일본, 중국에서 칭하는 것과 다름을 단박에 알 수 있다.

영어에서는 "Base"에 초점을 두고 있다.

ball은 공을 매개로 한다는 수단적 의미를 담고 있을 뿐이다.

"Basket"-ball,

"Volley"-ball,

"Foot"-ball,

"Hand"-ball

등처럼 ball이란 단어 앞 단어가 그 스포츠의 본질을 담고 있다.


우선, 농구(籠球, Basket-ball)"대바구니 롱(籠, 농)"자를 써서

영어의 의미가 큰 차이가 없다.

즉, "바구니에 공을 집어넣는 운동"이란 뜻으로 동일해서

농구의 핵심을 잘 짚어내고 있는 용어라고 할 수 있다.


다음, 배구(排球, Volley-ball)"밀칠 배(排)"를 쓰고 있는데,

농구와 달리 왜 배구로 번역되었는지는 여러 가지로 설로 나뉜다.

일단, 공을 밀어낸다는 뜻으로 배구의 기술인 토스를 기반으로 했다는 설,

배(排) 자에 손 수자가 들어가서 손을 이용하는 공놀이라는 뜻을 가진 설,

마지막으로 배구가 우리나라에 도입된 시기는 항일독립운동시기였으므로

일본어의 영향으로 영어의 volley를 발음 그대로 했다는 설도 있다고 전해진다.

여하튼,

Volleyball의 유래는 공이 바닥에 닿지 않은,

공중에 있는 상태에서 치는 기술인 테니스의 발리에서 영감을 받았다.

그래서 축구의 발리슛도 공중에 있는 공을 발로 차는 기술을 의미하는 것.

다음, 축구(蹴球, Foot-ball)"찰 축(蹴)"자를 쓰면서

말 그대로 "공을 발로 차는 운동"이란 의미가 있고

Football이란 용어는 미국을 제외한 전 세계적으로 축구를 뜻한다.

미국에서의 Football은 아메리칸 풋볼 즉, 미식축구를 의미하며,

그 나라에서는 축구를 "Soccer" 란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한편, Soccer란 association football

즉, 협회 규칙에 따라 축구를 하는 선수를 뜻한다.

현대 축구의 종주국인 영국에서는 지역별로

각기 다른 규칙이 적용되던 축구의 룰을 정비하고

이를 기반으로 실시한 것에서 유래하는 것.


끝으로, 핸드볼(Hand-ball)은 우리나라에서 현재는 원어 그대로 사용하고 있지만

1970년대까지는 송구(送球)란 명칭으로 사용했고

말 그대로 공을 골대를 향해 보낸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서두가 길어졌지만 야구는 그 원어인 "Base"를 칭하는

"누(루)"가 핵심이라는 점을 알려주고 싶었다.

지금부터는 가을*의 해석이라는 점을 감안하길 바란다.




신의 품인 홈(home)


야구는,

미국의 "국기"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인기 있는 스포츠다.

스포츠 그 자체뿐 아니라 문학적, 예술적, 문화적 차원에서도

미국인들의 삶 전반에 걸쳐 깊이 스며들어 있다.

특히 야구는 종교와도 큰 맥을 함께 한다.

종교의 자유를 위해 고향을 등질 수밖에 없었던 이들에게는

신앙은 살아가는 이유, 삶 그 자체이다.

어죽 하면 그들의 대통령 취임식 때 성경에 손을 얹는 의식을 행하겠는가.

한편, 최근 교황 레오 14세가 즉위하자

그가 평신도 시절부터 응원했던 미국 메이저리그 팀인

시카고 화이트 삭스 팀은

그들의 홈구장에 교황을 기념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그 자리는

교황이 20년 전인 2005년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월드시리즈 1차전 경기를 관람했던 자리였다.

그가 앉았던 자리는

140구역 19열 2번.

그 자리 근처 기둥에는 그를 기념하는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또, 팀은 그의 교황 즉위를 축하하기 위해

그들의 홈 유니폼에 그의 교황명과 14번을 새겨

전달했다.

그만큼 그들에게는 교황을 비롯하여

종교가 지닌 의미가 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야구를 보다 신앙적 의미로 해석하자면,

야구는 타자가 홈(home)을 둘러싼 타석에서 투수의 공을 받아친 후 홈을 떠난다.

그리고 다음 타자의 플레이나 자신의 능력에 따라 1루, 2루, 3루로 진루한 후

제자리인 홈(home)으로 돌아온다.

그래야만 득점으로 인정된다.

기독교에서는

인간은 하나님의 품인 에덴동산(home)을 떠나

세상의 모든 고통과 번뇌, 고난을 신앙의 힘으로 이겨내는 삶을 살아낸 후

결국 하나님의 품인 천국의 문(home)으로 향한다.

야구 규칙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이 같은 의미에서 미국인들은 야구 경기를 관람하는 자체가

신앙적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표현하는 셈이다.


*참고로 가을은 신자가 아닌지만 중고생 시절 미션스쿨을 다닌 바 있다.

그 학교에서는 종교 수업이 따로 배정되어 있어서 매주 1시간 성경 얘기를 듣고

매 학기마다 2박 3일 동안 대수양회에 참석해야만 했다.





모험담의 종착지 홈(home)


한편, 야구를 신앙적 의미 외 신화적으로 해석하는 이들도 있다.

작가 김영글님은 <아무튼, 야구>에서 고대 그리스 서사시 [오디세이아]의 주인공인

오디세우스를 예로 들고 있다.

작가는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 후 고향으로 향하는 여정을

야구에서의 홈으로 돌아오는 모험담으로 묘사했다.

오디세우스가 10여 년 간 겪은 에피소드들을 타자가 1, 2, 3루, 홈으로 돌아오는

규칙과 연결 지어 재미나게 풀었다.

혹자는 이 부분들이 다소 억지스럽다고 여길 수 있지만

이 찬양과도 같은 해석은

그만큼 야구가 인간의 문학적 상상력을 증폭시키는

매개임을 증명하고 있다.

원래 인간은 의미를 먹고사는 존재이지 않은가.

야구의 요점을 이해하고 나니 익숙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호메로스가 쓴 고대 그리스 서사시 『오디세이아』다. 트로이 전쟁이 끝난 뒤, 오디세우스는 고향 이타카섬으로 돌아가기 위해 바다로 나선다. 귀향길은 단순한 항해가 아니었다. 폭풍우와 해류, 유혹과 음모, 신들의 장난과 괴물들의 방해가 끝없이 이어졌다. 순풍이 불어 멀리 나아가는 날도 있었지만 온 힘을 다해 노를 저어도 제자리인 날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동료를 잃어도, 배가 부서져도, 지혜롭게 헤쳐나가 마침내 10년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야구도 그런 모험담이다. 전쟁이 아닌 귀환의 여정. 타석에 선 아홉 명의 타자는 저마다 한 명의 오디세우스다. 이들의 여정에는 세 번의 기회가 주어지고, 기회를 상실할 때마다 그것을 '아웃'이라 부른다. 그 안에 살아남아 홈으로 돌아오는 것이 목표다.
공을 방망이에 빗맞혀 파울이 나면 타석에서 스윙을 계속 반복해야 한다. 마치 바위를 산 정상까지 끊임없이 밀어 올리는 시시포스처럼. 또, 타격 후 다음 베이스를 향해 달릴 때는 절대 망설이거나 뒤돌아봐선 안 된다. 지하세계에서 죽은 아내 에우리디케를 데리고 올 때 절대 뒤돌아보지 말라는 경고를 들었던 오르페우스처럼. 그렇게 한 바퀴 돌아 무사히 홈을 밟으면 1점이다.
- <아무튼, 야구> 중에서




인생도, 여행도 결국 홈(home)


야구는 알다시피 투수가 던진 공을 타자가 친 후 1, 2, 3루를 거쳐

최종 홈으로 돌아오면 1점을 획득하는 경기다.

이 과정을 방송인 김제동은

"인간이 들어와야만 득점하는 전 세계 거의 유일한,
매우 인간적이고 노동의 가치를 잘 표현하는 스포츠"

라면서 집 나가면 고생이라는 말과 연결 지으며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인간은 흙에서 나고 흙으로 돌아간다는 옛말처럼

야구는 홈에서 출발해서 다시 홈, 즉 집으로 돌아와야만 하는 경기.

Base는 어쩌면 인간이 인생을 겪으며 거치는

제1의, 제2의, 제3의 도착지이자 터닝포인트,

최종 홈(home),

즉 가족의 품,

어쩌면 신의 곁으로 돌아와야만 한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여행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물론 평생 여행하며 집으로 영영 돌아오지 않는 이들도 있지만

대체로 가을을 비롯하여 우리들은 가고 싶은 여행지들을 거치면서

다시 집으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그리고 또다시 여행을 꿈꾸는 듯.

야구도 홈-인(home-in)했지만

자신의 타순이 오면 다시 집을 나서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돌고 돌아 결국 홈(home)


최근 왕년의 삼성 왕조 4번 타자 최형우가

삼성으로 컴백한다는 소식이 자자하다.

아니 거의 확실시되고 있는 모양새다.

그의 입장에서는 프로 데뷔 팀이자 커리어 하이를

달성했던 고향으로의 귀환이다.

비록 실제 고향은 현재 KIA에 가깝지만

프로선수로서의 고향은 단연 대구 삼성.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이왕 프로 데뷔 고향팀으로 왔다면

이곳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길 바란다.

결국 최형우도 홈을 떠나 1루, 2루, 3루를 지나

다시 홈으로 돌아오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장엄하고 웅장한

서사의 시작이면서

마무리.

그의 등번호가

그가 존경하는 선배 오승환 선수

옆에 나란히 새겨지길 바란다.


한편, 스포츠에서는 원클럽맨이란 용어가 있다.

프로 데뷔 후 단 한 번도 팀을 옮기지 않고

은퇴할 때까지 같은 팀에서 활동한

선수를 말한다.

현재 FA 제도 안에서는 자신의 존재 가치를 돈으로 입증되기에

자본주의의 끝판왕인 스포츠계에서는

더 많은 액수를 제시한 팀의 러브콜을 거부하기엔

"단호한 결의"가 필요하다.

그래서

팬들은 그들을 "레전드"라고 칭송한다.

그만큼 고향, 홈(home)을 지키고 있다는 것이

참 어려운 상황이라는 점이다.




Way back home


가을은 대학 시절부터 고향 집 대구를 떠나

서울의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 결혼 후 새로운 가족과 함께 집에 정착했다.

이젠 집(home) 밖에서 보낸 세월이 집(home) 안에서 지냈던 시간을 추월해서

되레 집 밖이 편할 법도 할 터인데,

가을은 집(home)이 그립다.

가을은 어쩌면 다시 집(home)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한 베이스, 또 한 베이스씩 진루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얼마 전, 25화 "고향의 향기 들으면서"

편에서 가을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얘기한 바 있다.

삼성 라이온즈가 그의 고향을 의미하는 바,

그러기에

더욱 삼성 야구가

즐겁고,

고향 생각을 떠오르게 한다.




[가을의 한 줄 정리]


즐거운 나의 집(Home! Sweet H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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