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닝은 별 생각을 다하게 해준다(feat. 여자가 운동한다는 것은)
2020. 06. 27.(토) 22:00 경
야심한 밤에 달렸다.
점심 때 장모님께서 맛있는 밥을 사주셨고 처가집에서 '부캐들의 향연'을 본 후
수원 우리 집으로 향했다.
다행히 아들 놈은 곯아떨어져 조심조심 침대에 누였다.
그리고는 곧장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운동장으로 향했다.
선선했지만 습기를 머금은 바람이 불었다.
어제는 달리지 못해서 오늘은 몸이 무거울 줄 알았는데,
꽤나 괜찮았다.
그렇다고 완벽한 컨디션이 아니었기에 초반에 페이스를 올리지 않았다.
또 하나의 이유는 지난 번 계단 오르기의 후유증으로 종아리에 알이 배였다.
특히 오른쪽은 10년 전 끊어진 아킬레스건 때문에 더욱 신경쓰였다.
수술은 잘됐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매사 운동할 때 조심스럽다.
그래서인지 그 좋아하는 농구를 하지 않는다.
특성 상 순발력과 민첩성이 요구되는 스포츠인만큼 아킬레스건에 무리가 가기 때문이다.
아무리 컨디션이 좋은 날도 실은 100% 달리지 않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늦은 밤인지 사람이 드문드문하다.
그래서 축구골대 앞 아빠와 아들, 딸이 축구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달리면서 그들이 집에 갈 때까지 그 앞을 지날 때면 유심히 관찰했다.
우선, 아들이 축구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 아들을 위해 아빠가 나섰고 딸도 함께 하다가 딸도 축구를 좋아한 것 같았다.
따라서 셋 다 축구를 좋아하며 재밌게 놀고 있었다.
나는 딸의 모습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일단, 풋살화 느낌의 빨간색이여서 눈에 띄었다.
그리고 마지못해 따라오지 않았다는 것을 딸의 아쉬워하는 모습에서 알 수 있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여자가 축구를 한다거나 좋아하는 것이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다.
더욱이 중고등학생의 경우에는 희귀하다고 할 정도로 드물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여자는 축구를 비롯하여 운동 전반에서 흥미를 잃거나 하기 싫어한다.
이유야 여러가지일 수 있겠으나 적어도 내 경험과 생각에는 사회적 분위기가 가장 크다고 할 수 있겠다.
여성이 해야 할 행동에 대한 선입견이라고 해야할까?
뭐..그런 게 있는 것 같다.
학교 현장에 있으면 더욱 그 같은 모습이 두드러진다.
동료 선생님들께서 여학생이 운동을 좋아하거나 잘하면 의아하게 생각하고
살짝 편견을 가지는 것을 느꼈다.
무엇보다 여학생끼리 공을 가지고 놀면 구경거리가 된다.
같은 경우 남학생들의 모습은 일상이라 별 관심을 끌지 못하고.
그래서 나는 달리면서 그 딸에게 마음속으로 바랐다.
'제발 저 모습이 변하지 않길...'
이 같은 생각 자체가 선입견이자 편견일 수 있으나
적어도 내 경험적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언제든지 다른 이유를 찾는다면 바뀔 수도 있다.
달리면서 별 생각을 다한다 싶겠다.
근데, 직업병인지 그 생각부터 문득 떠오르는데
어쩌겠는가.
암튼, 오늘은 오랜만에 달린 거 치고는 페이스가 괜찮았다.
총 50분 러닝에 km당 5:43, 9km를 달렸고,
마지막 1km는 5:01초로 최고 페이스를 경신했다.
그 시점에 열심히 달려준 두 명의 여자분께 감사드린다.
나의 페이스메이커가 되어주셔서~
가벼운 마음으로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오늘의 한줄평
러닝은 별 생각을 다하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