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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문연 Jun 02. 2016

스타일 코치 칼럼 #5 건강한 욕망을 욕망할 권리

나의 욕망은 진짜 나를 위한 것일까

10개월째 수영을 다니고 있다. 처음에는 건강한 몸(운동)을 만들기 위해 시작했으나 날씬한 몸(다이어트)에 대한 기대를 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더라. 그런데 웬걸. 10개월째 체중은 그대로다. 대신 라인이 조금 슬림해진 정도니 '먹고 싶은 걸 먹기 위해 운동한다'는 모토를 내세우는 사람에겐 과한? 성과일 수도 있겠다. 스타일 코칭을 하면서 생각보다 많은 여성들이 외적으로 스스로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을 보았다. 누구나 예쁘고 날씬한 것을 좋아한다. 그것이 본능(생존을 위한 강력한 요소라는 점에서 동의한다.)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과열된 미의 경쟁에 그냥 따라야 하는 것인지 우리는 퀘스천 마크를 떠올려봐야 하는 것 아닐까? 그렇다면 어디까지가 과열된 것이고, 어디까지가 자연스러운 흐름인지 나는 판단할 수 있을까?


여성인 지인분과 올리브 영을 방문한 적이 있다. 여성들(요즘은 그루밍에 신경쓰는 남성들까지 포함)의 놀이터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뷰티산업의 현황?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둘 다 화장에는 잘 신경 안 쓰는 타입인지라 돌아다니면서 우리 같은 사람만 있으면 올리브 영 망하겠다며 우스개소리를 했었는데 기억을 더듬어보면 20대 때도 그렇게 화장에는 신경 안 썼던 것 같다. 지금도 자기 전에 스킨, 로션 바르고 가끔 수분크림 바르는 정도?만 하고 있는데 이건 어쩌면 개인의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의 차이도 있겠지만,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을 어떻게 잡고 있느냐에 따른 차이도 있어보인다. 아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을 어떻게 잡고 있느냐에 따라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의 차이가 생겨난다고 볼 수 있겠다.


10대와 20대는 다르다. 20대와 30대도 다르다. 당연히 30대와 40대도 다를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20대의 피부를 유지하는 것이 가능하고 또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식의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그래서 30대도, 40대도, 50대도 20대의 정체성을 유지하고자 노력하며 젊음이라는 욕망을 쫓는 동기가 된다. 늙음은 죽음과 연결되어 있다. 나이들 수록 우리는 죽음에 가까워짐을 느끼게 된다. 그러고보니 젊음을 유지하려는 노력은 어떻게보면 늙음 곧 죽음과 멀어지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라는 생각도(글을 쓰다보니) 든다. 젊음과 늙음은 흰색과 검은색 처럼 나뉘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젊음과 늙음 두 가지로 규정하기보다는 곡선 형태의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보는 것이 맞다. 몇 살까지가 젊음이고, 몇살 부터가 늙음이란 말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늙음을 강조해야 젊음이 부각될 수 있으므로 대중 매체에서는 연예인의 방부제 미모를 계속 보여줌으로써 일반인들의 나이듦이 오히려 관리태만한 일이라는 것을 계속 강조한다. 당신도 드라큘라처럼 늙지않고 살 수 있다구!


20대와 30대가 생존 능력(진화론적 관점에서의 DNA보존을 위한 번식) 차원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한다면, 40대 이후에는 죽음과 멀어지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젊음을 추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우리는 늙어서 죽지 않더라도 죽을 수 있는 다양한 환경에 노출되어 있다. 단지 죽음을 피하기 위해 젊음을 추구한다는 건 '현재의 삶'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기보다는 '미래의 죽음'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느낌이다. 그러니 아무리 20대의 정체성을 쫓아 다양한 노력을 한들 20대가 가진 진정한 '삶의 생기'가 피부로 드러날리 없다. 20대의 피부는 단지 뷰티 제품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삶에 대한 호기심, 다양한 경험, 내가 가진 잠재력을 찾고자 하는 노력 등이 모여 꿈틀거리는 세포를 만들어내며 그 세포가 드러나는 것이 20대의 젊음이다. 30대 이후에도 20대의 정체성을 갖고자 한다면 그건 젊음 자체가 아닌 젊음의 생동감이자 생기여야 할 것이다.


나의 정체성은 애시당초 아름다움의 비율이 많지 않았다. 울지 마라. 희한?하게 나는 나의 ME모에 만족하며 살았으니(그냥 포기한 걸지도). 그래서 그런지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이 크지 않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인 것 같다. 내 주변의 여성 지인들 역시 평균적인 욕망과 비교해 보자면 그 욕망이 크지는 않은 것 같다. 자신을 규정하는 다양한 정체성과 추구하는 아름다움이 균형을 이루어서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늙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아름다움을 지향하거나 젊음을 쫓는 일이 잘못된 것이라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나 또한 아이크림은 바르지 않으면서 한 순간에 폭삭 늙는 나를 떠올리면 두렵긴 하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글을 쓰는 건 내가 추구하는 젊음과 아름다움이 건강한 욕망인지, 주입된 강박인지는 점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건강한 욕망은 사람들에게 건강한 성장과 변화를 가져다 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주입된 강박이라면 내가 원하는 '이상향'에 부합할 때까지 스스로를 몰아세우며 건강한 자아까지도 파괴할 것이다.


우리는 강박 사회에서 살고 있다. 예뻐야 돼! 날씬해야 돼! 나이보다 어려보여야 돼! 잡티없는 피부를 유지해야 돼! 그런 강박은 그런 기준에서 벗어나는 즉시 하자 있는 사람으로 내몰며 사람들의 결핍(실제 결핍인지는 중요하지 않다.)을 만들어낸다. 당신의 욕망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하지만 당신을 강박적으로 만드는 사회라면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것이다. 그거 아는가? 드라큐라는 방부제 미모와 천년만년 죽지 않는 젊음을 가졌지만 행복하지 않았다는 것을.   


* 두번째 책을 위한 글입니다. 일단 생각나는 주제를 수요일에 하나씩 업로드 후 5꼭지 정도 모이면 출판사에 컨택해볼 생각입니다. 제목은 미정이며 생각나는 제목있으면 댓글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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