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 힘들어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일단 저자분과 출판사에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메일로 서평 신청을 받을 때는 말랑말랑한 제목과 표지에 끌려 덜컥 신청을 해버렸지만 막상 책을 받고보니 나같은 사람에게는 전혀 필요하지 않은 책이란 걸 프롤로그 제목을 읽자마자 느꼈기 때문이다.
난 고슴도치보다는 고양이에 가깝다.
짝꿍이 있다면 하루종일 붙어있지만 짝꿍이 없어도 외로워하지 않고 따로 또 같이 잘 노는 사람.
그래서 관계에 있어서 고민도 적지만 관계로 인한 고민이 생긴다면 책에 의지하기보다는 나와 그 사람의 성향 차이에서 오는 어떤 불협화음이 있는지 분석하고 거리를 잘 두는 편이다. 때로는 관계를 너무 잘 단절하는 인간이 나라고나 할까.
작년까지만해도 나 또한 관계에 있어서의 불편함을 잘 견디지 못하는 편이라 정면돌파 하지 않고 피하거나 외면하는 편이었다. 그걸 깨게 된 것은 여동생과의 싸움이었는데 관계에 있어서 싸움이 일어날 때는 그 상황적인 부분만 봐서는 해결이 되지 않는 것이 꽤 많다. 특히 가까울수록 그런데 그것은 기존에 형성되어 있는 복잡한 심리가 그 상황과 얽히고 설켜 제 3자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화학 작용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 싸움으로 인해 나는 나 스스로(그 때 동생에게 열등감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그것은 나 스스로 초래한 부분도 일정 있었다)를 돌아보게 되었고 그 당시의 동생의 상황과 맞물려 적절한 타이밍에 두 번의 대화를 통해 싸움을 잘 매조지할 수 있었다.
그 후로 나는 좋은 관계는 '매조지'에 있다는 생각을 한다. 아무리 크게 싸워도 매조지를 잘 한다면 오래 갈 수 있는 관계이며 자잘한 걸로 싸워도 매조지가 되지 않고 서로에게 작은 앙금이 쌓이다보면 좋은 관계를 지속할 수 없다고 말이다.
도서를 제공받아 하는 오랜만의 서평이라 다소 기대했었다. 예전에 청춘인문학(정지우 작가의 첫 책/책도 재미있었고 작가의 통찰력으로 좀 난 놈?(칭찬입니다)이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거물? 작가가 될 줄은 몰랐;;) 서평했던 걸 찾아보니 2012년(청춘인문학 베스트 리뷰로 띠지에 소개되다)이었으니까 거의 9년만인 것이다. 하지만 읽어보니 나에게 썩 필요한 책은 아니었고 나이 문제인지, 아니면 요즘의 책이 다 이런 건지 알 수 없는 가벼움에 서평을 하고 싶은 부분을 눈 씻고 찾아 발견한 것이 165페이지의 <"미안해"라는 말이 이렇게 힘들 줄이야> 라는 꼭지이다. 관계에 있어서의 사과의 중요성과 방법을 적어놓았는데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사과만 제 때 제대로 할 수 있어도 관계에 있어서의 고민은 확 줄어든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사과하는 방식을 잘 모르고 사는 것 같다.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고 누군가에게 사과를 제대로 받아본 적도 없다면 실제로 사과할 일이 일어났을 때 제대로 하기 어렵다. 그러니 '잘못된' 사과의 방식으로 사과를 하고 있는 다양한 개인과 매체가 잊을만하면 기사에 오르내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책 한권을 만드는 것이 저자의 노고와 출판사의 돈(+ 나무의 희생;;)이 많이 드는 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아쉬움이 크다. 이제 막 사회 생활을 시작하는 20대들(비하하는 건 아닙니다)이 읽으면 재미있을지 모르지만 고양이과에 가까운 40대가 읽으니 돈 주고 사보기는 아까운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잘못은 덜컥 서평을 신청해버린 제 불찰에 있으니 이 책이 관계에 상처를 많이 받는 고슴도치과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전파해주길 바라며 이만 서평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