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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문연 Apr 03. 2024

호박붕붕이 잘가~

보호자도 취미가 있을까 말까인데 반려견이 아침저녁 취미생활하기 바쁘다. 베란다로 지나가는 친구들을 구경하는데 시도때도 없이 나가서 닫힌 창에 코를 박고 바깥을 본다. 마루와 베란다를 구분하는 투명 문은 꽤 묵직한데 어려서부터 왼쪽 앞발로 열어버릇해서 혼자서 잘 열고 열린채로 마루로 컴백한다. 날이 따뜻할 땐 상관없지만 추운 겨울엔 반려견 취미생활 지켜주다 수족냉증이 심해질 판이었다. 어제도 그렇게 코천이랑 밖을 보는데 갑자기 엄청나게 큰 오토바이 소리가 들려서 ’으아악‘ 소리치며 마루로 들어왔다. 코천이도 들아왔나 확인해보니 이 녀석은 벌써 멀찌감치 들어와서 견제 중이다. 이 정도 데시벨의 ’부아아앙‘이면 똥파리 아니면 말벌인데(말벌도 날개소리가 나나?) 둘 다 피해야 할 생명체긴 하다. 이대로 놔둘 수는 없고 생명체 확인 후 결단을 내려야 한다. 베란다 밖으로 날려보낼 결심! 도대체 뭘까 마루에 불을 켜고 어두운 베란다를 보니 엄지손가락 반만한 호박벌이 투명문에 머리를 박고 있었다. ’아이고, 아플텐데-‘ 호박벌은 귀엽지만(원래 동글동글하고 2등신에 가까울수록 귀여운 게 국룰) 독이 있다고 알고 있어(찾아보니 독성은 강하지 않지만 양이 많아 아프다고;; 하지만 수컷은 독이 없다고) 조심해야 한다. 마루와 베란다 사이의 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호박이 어딨니?‘ 마루 문 틈 사이에 껴있네. 얇은 부채로 쿡쿡 찔러 부채위로 옮겨왔다. 대체 베란다에는 언제 들어온거야. 모르긴 몰라도 아주 쌩쌩해 보이진(문에다 그렇게 몸을 박으면 나같아도 성치 않을 듯 ㅜㅜ) 않는데 바깥문을 열어 날려주었다. (사실 몇 번의 실패가 있었지만 다행히 성공) 휘유…한 마리의 생명체를 또 이렇게 방생하다니, 해마 속 좋은 일 리스트에 적어보자. 작년 봄에 부쩍 길에 죽어있는 호박벌을 자주 봤다. 코천이랑 산책하다보면 왕 커서 눈에 왕왕 잘 보이는 호박벌을 발견하는데 왕 뚱뚱해서 그런지 더 안쓰럽게 느껴진다. 올 봄에는 죽은 호박벌 좀 덜 보길! 날아간 호박붕붕이가 완생하고 죽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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