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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문연 Jul 03. 2024

생존에 취약한 서타일

글쓰기 수업 주제로 '내가 생각하는 나라는 사람'에 대해 소개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다들 어렵다고 했는데 글쓰기 주제란, 쉬우면 쉬운대로 어려우면 어려운대로 쓰기 곤란한 것이라 특별히 괘념치는 않았다. 게다 일단 던진 주제를 다시 주워담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 그대로 수업을 진행했다. 수강생들은 나름대로 준비해온 에피소드를 잘 들려주었고 이제는 그걸 쓰는 일만 남았다. 모니터를 한참이나 째려봤지만 글감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서 나도 나에 대해 써보기로 했다. 나에 대해 할 말은 많지만 요즘 특히 나에 대해 강하게 드는 생각은 생존에 취약한 서타일이라는 것이다. 생존에 강하려면 두 가지가 되어야 한다. 혼자 잘 났거나, 타인에게 보호 본능을 일으키거나. 애석하게도 잘 난 것과는 거리가 멀고, 보호 본능을 일으키는 것과는 더 거리가 멀다. 고로 두 가지 중 한 가지를 택해 생존해 나가야 하는데 결국 혼자 잘 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잘 벌기 위해서는 또 두 가지가 필요하다. 돈이 되는 일을 잘 알거나, 돈 버는 일을 꾸준히 하거나. 이 역시 애석하게도 돈이 되는 일을 잘 알지 못하고 돈 버는 일도 꾸준히 하지 못했다. 좋아하는 일을 잘 하기 위해 돈을 벌지 못했고 좋아하는 일을 쫌 잘하게 되니 돈이 쪼금 벌리는데 그 동안 벌지 못한 소득의 블랙홀이 워낙 깊다 보니 이렇게 모아서 언제 독립하나 우울하기 그지 없다. 그럼에도 돈이 되는 일을 잘 아는 것보다 돈 버는 일을 꾸준히 하는 것이 기질상 더 맞아 보여 어찌 됐든 돈은 꾸준히 벌어야 할 것 같은데 자체 소득 70%, 외부 소득 30%가 목표이나 바위에 계란 던지기 같은 상황에 아주 머리가 아프다. 최근에 친구랑 이야기하면서 내린 결론 중 하나는 나같은 서타일은 결국 나 스스로 나를 알리기보다 내가 이룬 어떤 것으로 누군가가 나를 찾게끔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건 예전부터 생각하고 있던 건데 나는 나를 알리는 것을 잘 못하고 내가 어필하는 나는 내가 봐도 매력적이지가 않다. 그래서 결론은 꾸준히 무언가를 생산해내는 것이 1차적 과제이고 그걸 대중적인 아이템으로 다듬어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 쓰고 보니 또 암담하네. 하여간 발치에 누워 까만콩같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기만 해도 귀엽다는 마음이 뿜뿜하는 코천이를 보면서 상당히 부럽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렇게 생겨먹지 못해서 내 자신이 싫은 건 아니다. 이미 이렇게 태어난 걸 어쩌랴. 이런 나를 데리고 살아야 하는 나를 내가 좋아해야지(내 안의 기쁨이를 소환해보자) 암. 그래서 잘 나지도 않았고 보호 본능을 일으키는 것도 아니라 이러나저러나 혼자서 살아내야 하는 내가 아직 생존해 있는 건 80%는 부모님 덕이고 20%는 주어진 일은 하려는 책임감 때문일 것이다. 좋아서 시작한 일을 계속 좋아하려면 그 일이 내 삶에 꾸준히 발자국을 내주어야 한다. 어쩌면 그러지 못하고 있어서 나의 생존율은 점점 떨어지는 것일 수도 있다. 잃어버린 발자국을 찾는 것 역시 나의 몫이다. 생존에 취약한 서타일로 좀비처럼 살지 않으려면 발자국을 다시 찾아야 한다. 생존에 강하든, 취약하든 살아남으면 장땡이다. 살아남아서 발자국을 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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