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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자 글쓰기] 134. 쉐도잉 연주

by 이문연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동안만큼은 핸드폰을 하지 않기로 하면서 구경을 더 많이 하게 됐다. 창밖 구경, 사람 구경, 그냥 멍 때리기 등. 아침 출근 시간은 그 인파나 피곤함 때문인지 웃는 얼굴을 좀처럼 보기 힘들고(물론 디폴트 표정이 웃상인 경우가 드물지만) 활기보다는 삭막함, 급박함, 피곤함 등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장면 하나. 버스 정류장 의자에서 누가 연주를 한다. 악보를 무릎에 두고 투명 스틱을 잡은 두 손을 교차해가며 가볍게 북을 튕긴다. 드럼이다. 누가 봐도 드럼 연주를 하는 중이다. 작은 북 두 개와 심벌을 번갈아가면서 친다. 이제 막 드럼을 배우기 시작한 초보같다. 얼마나 재미있으면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버스 정류장에 앉아서 드럼 연습(정확히는 쉐도잉 연주)을 할까. 10차선 도로의 중심에서 그 누구도 신경쓰지 않고 자기만의 연주에 몰입한 사람. 신호에 걸려 버스가 정류장에 정차한 시간 동안 그 사람의 연주를 감상했다. 드럼의 북소리와 심벌의 챙소리가 들리는 듯한 경험. 여러 번의 교차된 손목 스냅 끝에 투명 스틱은 심벌을 강타했다. 연주가 끝났다. 버스가 출발하려고 하는데 그 사람의 연습이 다시 시작되었다. 활기 없는 도시의 버스 정류장에서 그 사람 주위만 리듬감으로 일렁였다. 분명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는데 드럼 연주를 들은 것 같은 기분. 열심히 연습해서 꼭 초보딱지를 떼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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