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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자 글쓰기] 156. 건전한 부채의식

by 이문연


나는 공짜는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누군가가 나에게 선의를 베풀면 (내가 줄 수 있는 상황이라면) 꼭 보답하려는 마음음 갖고 있다. 하지만 그러면서 한 편으로는 보답을 바라지 않고 행하는 활동이 이 사회를 좀 더 나은 곳으로 발전시킨다는 믿음도 갖고 있다. 다소 이중적인 마음인 건데 책 <우리는 왜 선물을 줄 때 기쁨을 느끼는가>에서도 그런 이야기가 나온다. 증여는 서로 주는 것이 아니라 서로 받는 것이라고. 증여를 하는 사람이 받는 사람에게 무언가를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주는 것(증여)'은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내포하기에 우리는 증여를 통해 받는다는 것이다. 참 공감이 되었다. 왜냐하면 손해 보지 않으려는 마음은 누군가에 주지도 않고, 내가 주었다고 생각하면 꼭 받아내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킨다. 그럴려면 언제 받아낼 수 있는지 촉각을 곤두세워야 하고, 저 사람이 나에게서 무엇을 가져가는 건 아닌지 예민하게 된다. 기브앤테이크를 칼같이 따지지 않는 사람들은 자유롭다. 주고 싶은 것, 줄 수 있는 것을 주고 그것에 대해 받지 않아도 상관없다. (책 '무기력해서 쓰기 시작했습니다'에는 등 밀어주는 아주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것은 옛 사람들의 '증여'이기도 해서 나같은 사람에게 '건전한 부채의식'을 안겨준다. - 난 그렇게 해석했다) 얼마 전 더운 날에 지하철에서 에스컬레이터를 수리중인 기사님 두 분을 보았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지만, 용기를 내어 편의점에서 1+1 음료수를 사서 드렸다. 보답을 원하는 일은 아니지만 (책에서 말하는) 증여를 하는 것으로 나는 마음의 뿌듯함(세상의 온도를 0.01도 올렸다는)을 느꼈다. 그러니 증여는 증여이면서 증여가 아닌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이들도 기브앤테이크를 면밀하고 세세하게 따지지 않는 이들이다.(그렇다고 무시하는 이들을 좋아하는 건 아니다) 기브앤테이크라는 숨겨진 약속을 믿지만 5:5가 아닌,(5:5인 기브앤테이크가 있을 수 있을까?) 3:7일수도 8:2일수도 때로는 0:10(증여는 주는 이에게 어떤 마음을 일으키므로 이 역시 있을 수 없는 비율일지도)일수도 있는 그런 기브앤테이크를 믿는다.


+ 덧, 아래 오지랖이 서툰 사회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등가 교환'으로 보기 때문에 부탁을 쉽게 못한다고 한다. 굶어죽는 이웃이 생기는 것, 결혼 사회에서 조건을 칼같이 따지는 것 등 무엇이 이득이고 무엇이 손해인지 생각하게 하는 마음은 '등가 교환'에서 나왔다는 생각이 든다. 부모가 자식에게 '내가 너한테 해준 게 얼마인데!'와 자식이 부모한테 '나한테 뭘 해줬는데!' 역시 관계에서의 등가교환을 하나의 종교처럼 믿는데서 오는 현상이 아닐까, 그러한 자본주의 사회에 잠식되지 않기 위해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인드는 A에게 받은 걸 A에게 주지 않아도, 언젠가 B에게 주는 것으로 보답을 했다는, 건전한 부채의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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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환을 '등가'로 하면 안 되는 것이다. '부등가'한 교환이기 때문에 더 많은 것을 받았다고 느끼는 쪽(양쪽 모두 그렇게 느끼는 경우도 분명히 있다)이 그 부채의식을 해소하기 위해 다음 번 '주는' 행위에 대한 동기를 품는다. (...) 이처럼 손님이 카페에 품는 '건전한 부채의식'의 축적이야말로 재무제표에 담기지 않는 '간판'의 가치가 된다.

- 우리는 왜 선물을 줄 때 기쁨을 느끼는가 '지카우치 유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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