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문연 Jan 14. 2016

50가지 사소한 글쓰기 워크북(4) 술

혼자 술 푸고 싶은 날

에피소드(4-1) 난 회식이 좋았다.


1년 반의 백수생활을 거쳐 들어간 회사가 나는 너무 좋았다. 연봉도 많지 않고, 회사 규모도 크지 않았지만 업무는 재미있어 보였고 이 곳이라면 사회 생활을 시작하기에 괜찮아 보였다. 사장님 1명, 부장님 1명, 대리님 4명에 사원 나 이렇게 아담한 7명의 조직?이었고 대리님 중 홍일점이었던 여자 분의 후임으로 내가 들어간 것이었다. 특히나 여자 사수분은 회사 초창기 멤버로 막강 파워를 자랑했는데 6시 퇴근할 때면 늘 나를 챙겨 같이 퇴근해주시는 센스를 발휘해 주셨다. 그러면서 가끔 나에게 물어보는 것이 있었는데 회사 생활이 재밌냐는 것이었다. 1년 반 동안 고생 끝에 얻은 귀동이?였기에 매번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그렇다'고 대답했던 것 같다. 털털함의 끝을 보여주는 여자 대리님의 영향도 있었지만 여대에서는 느껴보지 못했던 남자 대리님들과의 대화는(비록 회사 이야기가 대부분이었지만) 신선하고 재미있었다. 사장님을 필두로 평균 주량이 소주 2병 이상이었기에 늘 2차까지의 코스가 정해져 있었는데 주량이 약한 나는 살아남기 위해 술 반, 물 반 이렇게 마시며(억지로 마신 건 아님) 어떤 이야기를 나누는지 귀를 쫑긋 세웠더랬다. 대리님들이 특별히 싫은 사람이 없었고 신입 사원이었기에 업무적으로 스트레스 받을 일이 많지 않았으므로 지금 생각해보면 참 나이브하게 다녔던 것 같다. 그러니 맛있는 것도 먹고 업무 때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도 나누는 회식이 어찌 싫을 수 있을까. 업무와 사람 두 가지가 모두 채워졌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어쩌면 이미 시간이 너무 많이 흘러 내가 좋은 기억만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에피소드(4-2) 내가 좋아하는 술집


난 동네 술집이 좋다. 아줌마 아저씨들이 자주 가는 그런 시끌벅적한 술집 말고. 아담하면서 저렴하기도 하고 그러면서 맛도 있는. 물론 나는 술을 잘 못하기 때문에 맥주 정도만 팔면 술이야 무엇을 팔든 아무 상관이 없다. 미금역에 살던 친구가 결혼하기 전까지 함께 자주 가던 술집이 있었다. 야OO이라는 오뎅바인데 직장 다닐 때 부터 다녔으니까 거의 10년 정도 된 것 같다. 물론 지금은 같이 갈 사람이 없어서 자주 못 간다. 건물 1층의 문을 열면 바로 테이블이 나오는데 ㄷ자 형태로 손님들이 빙~ 둘러 앉아 테이블을 따라 마련된 오뎅 통에서 꼬치 오뎅을 건져?먹는 형태의 술집이다. 음식을 하는 사장님 한 분과 서빙을 하는 아르바이트생 한 명이 있는 이 곳의 안주는 꽤 다양하다. (사실 술도 다양한데 일본 술은 잘 안 마시니) 가끔 맥주 한 잔이 땡길 때면 친구와 만나 맥주에 오뎅과 곤약(난 오뎅보다 곤약을 더 좋아한다. 오뎅바에 가면 오로지 곤약만 먹는다. 점점 곤약이 다이어트를 하는 것 같아 슬프다.) 그리고 오뎅 국물과 단무지, 할라피뇨로 배를 채우고 나면 몸과 마음이 그렇게 따땃해질 수가 없는 것이다. 가끔 거하게 먹고 싶은 날엔 새우 튀김을 시키는데 새우 튀김의 바삭함과 소스의 새콤 고소함의 조화가 맥주의 뒤를 따를 때의 행복감이란. 그런 다음 오뎅 국물을 쳐묵쳐묵. ㅋㅋㅋㅋㅋㅋㅋㅋㅋ 7시부터 문을 여는 이 집은 8시면 거의 만석이 된다. 만석이라 하더라도 꽉꽉 채워 16명이 될까 말까다. 여기서 잠깐 ㄷ자 테이블의 매력을 이야기해보면 마주 앉았을 때 보지 못했던 옆모습을 볼 수 있고, 어쩔 수 없이 더 밀착해서 앉게 된다. 이성이든 동성이든 서로의 이야기에 더욱 집중하게 된다. 게다 맞은 편과 대각선에 보이는 자기들 이야기에 심취한 사람들의 표정과 제스처를 감상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러면 뭐하나, 술집이 좋아도 같이 갈 사람이 없으면 무용지물인 것을. 같이 갈 사람이 생길 그 때까지 오래오래 그 자리에 있었으면 좋겠다.


에피소드(4-3) 혼자 술 푸고 싶은 날


가끔 그럴 때가 있다. 집에는 가기 싫고(혼자 있고 싶은데 집에 가면 혼자 있을 수가 없다. 독립하지 못한 처자의 설움이다.) 혼자 술 한 잔 하고 싶은 때. 그 날도 그런 날이었다. [분당 혼자 술 마시기 좋은 술집]을 검색했는데 와인바 같은 곳만 나오고 편하게 맥주 한 잔 할 만한 곳은 없었다. 혼밥(혼자 먹는 밥)도 점점 증가하는 추세인데 왜 혼술은 없는 걸까 아쉬워하며 후보 군을 검색했다. 첫 번째는 250ml 맥주를 파는 라면집. 밥과 함께 맥주를 마실 수 있기에 혼자 가도 전혀 뻘쭘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당도했을 때는 저녁시간이었기 때문에 직장인이 바글바글했다. 그 사이에 껴서 맥주를 마실 용기가 없었기에 발걸음을 돌렸다. 두 번째는 ㄷ자 단체 테이블만 있는 오뎅바. 친구랑 갔을 때 혼자서 온 듯한 분들을 본 적이 있기에 나도 한 번 시도해볼까 유리문 너머로 빈 자리를 확인했지만 실패였다. 난 사실 혼자 술을 마시기에는 두번째 집 보다는 첫번째 집 같은 곳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일본 만화 [심야 식당 - 아베 야로 저]에서도 밤 늦게 밥을 먹거나 술 한 잔을 하고 싶은 사람들이 찾는 심야 식당이란 곳이 있다. 우리 나라에도 이런 식당이 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을(물론 나는 주인에게 나의 스토리를 이야기하지 않고 밥만 먹을테지만) 해 보았다. 혼자 술 푸고 싶은 날 밥과 함께 맥주 한 잔 할 수 있다면 집에 가는 길이 참 든든할 것 같은데 말이지. 그런 일이 있고 난 후 블로그에 [혼자 술 마시고 싶은 날]이라는 글을 올렸는데 공감한다는 내용과 함께 댓글이 평균치보다 더 많이 달렸다. 처량한 이미지가 아니라 '삶에 대한 깊은 고민과 함께 하는 한 잔의 술' 이런 느낌으로다가 언젠가는 시도해봐야지. 참, 부산에는 [심야 식당]이란 이름의 가게가 오픈 했다고 한다. 


==============================================================================


이 글은 머리가 어지럽고 마음은 답답한 제가 뭐라도 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시작하는 소소한 에세이입니다. 글을 통해 '자기 이해'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같은 주제를 통해 글을 써 보는 것으로 '자기 이해'를 해보고 싶은 분이라면 매주 주어지는 주제로 글을 써보고 댓글에 링크를 달아주시면 글에 대한 감상(비평을 하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ㅡㅡ)도 공유하고 토닥토닥 & 으쌰으쌰 하는 것으로 멘탈을 단련시켜보고자 합니다. 이건 정말 무지개빛 시나리오지만 그렇게 모인 글들을 한 데 엮어 책으로 내보낸다면 그것만큼 므흣한 일도 없겠습니다. 매주 일상 속 아주 사소한 주제로 찾아갑니다. 서른 다섯, 자기 이해를 위한 사소한 에세이 시작합니다. 프롤로그 끝

작가의 이전글 1인기업 생존웹툰 #12 슬럼프 극복방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