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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문연 Nov 21. 2017

50가지 사소한 글쓰기(31) 허세(신은 어디로 갔을까

폴리폴리 시계

퇴사 후 나를 알게 된 지인들에게 물어본다면, 나의 허세력은 높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경제력이 쪼그라들기(사실 그 전에도 부유하진 않았으나) 이전의 기억을 떠올려보면 과하게 돈을 썼던 기억이 있는데 그걸 나눠보고자 한다.


에피소드(1) 폴리폴리 시계


부모님께서 특별히 저축 교육을 시키지 않은 것도 있고, 개인적으로 타고나길 돈을 모아서 뭘 해야겠다는 개념이 없었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부모님의 부담(등록금은 부모님이 내주셨으니)을 덜어드러야겠다는 생각은 했어도 그 돈으로 뭘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으니 지금 생각해도 참 지극히 현재주의자였던 것 같다. 그런 내가 돈을 모으는 이유는 친구들과 노는 데 사용 50%와 갖고 싶은 것 사기 50%로 나뉘어져 있었다. 그래서 갖고 싶은 것이 있으면 돈을 모아서 꼭 샀고 그것이 나의 아이덴티티를 고급시럽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했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폴리폴리 시계다.(사실 명품은 아니다. 명품이 아니었음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갈색 가죽에 시계 테두리에는 큐빅이 무수히 박혀 있어 반짝거렸던 시계. 20대 시절 용돈은 스스로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늘 아르바이트를 하고 살았는데 주말 내내 일해서 통장에 찍혔던 수입이 30만원 안팎. 15년 전 그 시계의 가격이 22만원이었던 걸 생각하면 난 참 물질적 욕망에 충실한 사람이었다. 어떤 옷에도 잘 어울리고 특히나 그 때 유행했던 면바지와 체크 남방(자자~ 비슷한 연령대인 분들 2000년대로 뿅!)에 그 시계 하나만 차면 내가 뭐라도 된 것처럼 자신감이 차올랐다. 구매할 때 아마 가성비를 따지진 않았을 거다. 물론 오래오래 많이 차면 좋겠다는 생각은 하겠지만 그게 실현이 될 지 여부는 지나봐야 아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시계는 그 이후로 무려 10년 동안 내 곁을 지켰다.(지금도 가지고 있다.) 


어쩌면 오랜동안 빛을 발하는 '클래식한 멋'에 대한 나의 안목은 그런 흥청망청에서 온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나의 욕망을 채워주는 물건을 고르는 데는 한 껏 신중(고르는 것만 신중했지 결제하는 건 시원했다.)했기에 아닌 것을 감별해내는 능력이 키워진 것은 아닐까. 폴리폴리 시계는 내 손목에서 빛을 조금씩 잃어갔다. 가죽은 헤지고, 큐빅은 빠졌다. 그래서 A/S를 받아 큐빅은 새로 끼워넣고, 가죽 줄은 교체했는데 처음 샀을 때의 그 느낌은 많이 퇴색됐다. 오래 사용하고 낡은 것을 '헌 것'이라고 한다면 폴리폴리 시계는 나의 20대를 함께한 '추억'이라고 볼 수 있다. 사용되는 유형의 것들은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 낡는다. 사람도 낡는다. 폴리폴리 시계가 나에게 의미가 있는 것은 반짝반짝한 시계에서 추억이 담긴 물건으로 가치가 전환됐기 때문이다. 사람도 낡는 것으로만 끝나서는 안 된다. 낡는 것에 상응하는 가치 전환을 이룰 때 옆에 두고픈 사람이 될 수 있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간직하고 싶은 건 낡은 것과는 상관이 없다. 


에피소드(2) 셀린느 가방


1년 반 여년동안의 취업 준비생 시절을 거쳐 취업했을 때 세상의 모든 어둠이 한 큐에 걷히는 듯 했다. 대학생 때 공부를 안 해 자업자득인 경향이 없지 않지만 집안 분위기상 응원보다는 싸늘함이 팽배했기에 심리적 가혹함을 견디기 힘들었다. 내 생애 그 때만큼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본 시기도 없었던 것 같다. 어렵게 취직한 곳이었지만 나름 까다롭게(내 성향과 기질, 업무 소화 능력, 연봉 및 복지, 출퇴근 거리 등등) 골랐기 때문에 굉장히 만족스럽게 다녔는데 사수는 늘 그걸 신기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회사 다니는 거 재밌어요?'라는 그녀의 질문에 늘 신기하게 '네 재밌어요'라고 대답했다. 


언제 명품백을 샀는지, 왜 명품백을 샀는지 잘 기억 나지는 않는다. 그냥 내 눈에 예뻐 보였던 가방이 셀린느였다. 사실 더 비싼 명품도 많지만 내가 마음에 들었던 셀린느 가방이 내가 소화할 수 있는 가격대였던 것도 마음에 들었다. 명품이 중요하기보다는 그 '디자인'이 마음에 들었던 거였지만 실제 그 가방의 아이덴티티에는 명품이라 불리는 것도 있었으니 무엇이 진짜 마음이었는지 알 길은 없다. 단순하다. 생각이 없다.를 좋게 말하면 아마 '쿨하다'가 아닐까 한다. 갖고 싶은 게 있는데 굳이 면세점에 갈 누군가의 해외 출국 일정까지 기다려 그 가방을 구입하기엔 나의 '갖고 싶다 병'이 너무 중했다. 그래서 그냥 근처 백화점에서 샀다. 쿨하게! 


셀린느의 대표 문양이 갈색 가죽위에 파도처럼 넘실대고 손잡이 부분에 상아색 가죽으로 덧 대어 있는 어깨 끈만 없었으면 할머니들이 들기 딱 좋은 디자인이었다.(실제로 할머니가 든 것도 한 번 봤다.) 하지만 나는 세상의 기준보다 나의 욕망에 충실한 세대초월주의자이므로 그 셀린느 가방을 늘 캐주얼에 크로스로 매고 다녔다. 사실 이 때부터 가성비를 중요하게 여겼던 것을 알 수 있는 것이 이 셀린느 가방 역시 어깨 끈을 떼면 토트백(두 손으로 들 수 있는 형태)으로, 어깨끈을 하면 여성스럽고 세련된 숄더백(한 쪽 어깨에 걸치는 형태)으로, 어깨끈을 크로스로 매면 캐주얼하고 발랄한 크로스백(어깨부터 엉덩이로 내려오는 대각선 형태)으로 맬 수 있으니 이 가방 하나로 모든 스타일을 섭렵할 수 있었다. (그래서 지금도 의뢰인에게 가격대비 성능이 충실한 가방을 추천한다. 디자인도 당연히 예쁜!) 


2년 8개월 여만의 직장 생활 동안 셀린느 가방은 나를 잘 보좌해주었다. 결혼식에 갈 때나, 친구들을 만날 때나, 출장을 갈 때나 어떤 상황에서도 적절한 코디 매치로 나를 만족스럽게 한 짝꿍이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셀린느 가방을 맬 일은 없다. 내가 더 이상 '셀린느'라는 명품 로고가 박힌 제품에 매력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어쩌면 로고가 너무 많이 박혀서인지도) 20대 시절은 나의 아이덴티티를 정립해가는 시기이다. 내가 원하는 나, 원하는 삶에 대해 고민하고 시도해가면서 좌충우돌하는 시기이다. 나는 폴리폴리 시계와 셀린느 가방이 그 좌충우돌의 산물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돌아 나는 지금의 나가 되었고, 지금도 비싸고 예쁜 것을 볼 줄 아는 안목은 있지만 저렴해도 나에게 편한 물건을 고를 수 있다. 지금의 나에게 만족스럽기 때문에 비싼 시계나 명품 가방은 필요없지만 또 언젠가 그러한 것들이 필요하거나 사고 싶을 때는 시원하게 지를 수 있을 것이다. 내 삶에서 허세력은 사라졌지만, 그 공간을 가치력으로 채워가는 중이다.  


* 근데 왜 나는 루이비통 로고만 보면 자일리톨이 생각나는 걸까.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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