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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문연 Mar 11. 2018

사소한 글쓰기(42) 싫어하는 것들에 대하여

혼자하는 글쓰기 5권

에피소드(1) 이기는 것보다 중요한 것


초등학생 때 저는 발야구 매니아였습니다. 피구보다는 덜 무섭고, 차는 힘만 있으면 팀에서 어느 정도의 에이스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때는 3학년 때의 체육시간이었습니다. 우리 팀이 공을 찼고 득점할 수 있는 상황에서 상대팀이 득점의 무효를 주장했습니다. 각 팀의 주장이 서로의 주장이 맞다고 나섰고, 저(공격 팀)는 그 가운데서 득점을 무효로 하고 경기를 시작하자고 이야기했다가 주장에게 제명당할 뻔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팀에서 에이스급이었기 때문에 쉽게 제명할 수는 없었죠. 그 때 어떤 결론이 났는지까지 기억이 나진 않지만 그런 경험에 비추어 보면 어렸을 때부터 확실히 '이기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그냥 발야구를 하는 게 재미있었고, 누가 이기고 지는 건 부수적인 일이라 생각했죠. 이런 성향은 어른이 된 지금도 크게 변하진 않은 것 같습니다.


레드오션에서는 경쟁해야 합니다. 내가 살기 위해서 남을 짓밟지는 않더라도 같은 파이를 두고 경쟁해야 되기 때문에 제로섬 게임의 참가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어쩌면 제 DNA는 기존의 세상에서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기는 것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맨 땅을 개척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합니다. 아무 것도 없는 땅을 일구고 좋은 토양을 만들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 지금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고 앞으로도 얼마간의 시간이 걸릴지 모르지만 제 땅을 오롯이 일구는 행위는 경쟁 비적합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세상의 경쟁 시스템에서 한 발짝 떨어져 이기지 않고도 살아남는 법을 습득해 나가는 중입니다. 최고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그저 나에게 주어진 땅 하나 잘 일구는 것으로 경쟁하지 않고 밥 걱정없이 사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소박하게 적었지만 이 문장처럼 많은 이들의 로망을 담고 있는 것도 없습니다) 발야구에서 진다고 발야구가 하기 싫었던 적은 없습니다. 세상사를 초딩의 발야구와 비교해서는 안 되겠지만 기다리다보면 제 순서는 돌아오더라고요. 그러면 저는 와다다 달려가서 공을 뻥 찹니다. 어느 만큼의 강도와 각도여야 하는지와 홈런이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말이죠.


에피소드(2) 개선의 여지는 없는가?


세상의 모든 것을 개선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내가 개선할 수 없는 것이라면 불평도 정도껏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가장 쓸모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내가 고칠 수 없는 것에 계속 '입을 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그런 비효율적 불평을 듣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네 저는 반복되는 불평이 불편합니다. 그래서 저에게 반복되는 불평을 쏟아내는 누군가와는 자연스레 거리를 두게 됩니다.


아나콘다라는 아나운서들이 진행하는 팟캐스트가 있습니다. 거기에는 '황비홍'이라는 닉네임의 아나운서가 있는데 어느 날 동료 아나운서가 자신의 연애 사정에 대해 황비홍에게 이야기를 했는데 황비홍이 '그런 이야기 불편해'라고 대답했답니다. 그런데 그 답변이 기분이 나쁘기보다는 굉장히 솔직한 느낌이고 이미 어느 정도의 신뢰가 쌓인 사이라 그런지 동료 아나운서 역시 황비홍을 배려해 그런 이야기를 자제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나라면 '나 그런 이야기 불편해'라고 과감?히 이야기할 수 있을까? 한 번도 생각해본 적도 없고, 실행해본 적도 없습니다. 하지만 나의 기분을, 나라는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상대방이라면 나의 의견도 존중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든 것을 개선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개선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개선할 수 없다고 단념해버리는 태도를 싫어합니다. 글을 쓰면서 떠올랐습니다. 제가 그들을 싫어하는 이유는 온갖 불평을 다 하는 것처럼 보여도 그들은 누구보다 '멀쩡히 지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멀쩡한' 것에는 만족하지 않습니다. 멀쩡한 것에 집중하고 감사하기보다는 자신의 삶에서 불평할 것들을 찾아내 불평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왜 그런 모습이 싫을까요? 어쩌면 제가 갖지 못한 것들에 대한 열등감이나 질투일 수도 있습니다. 타인의 삶을 내 기준에 맞춰 생각하는 좁디좁은 이해력을 인정하는 꼴일 수도 있습니다. 각자 자기만의 '아픈 손가락'이 있는데 그들의 아픈 손가락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개선의 여지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불평을 하며 살아갑니다. 그게 그들이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에피소드(3) 요란한 빈수레를 경계하다.


저는 말만 앞서는 타입의 사람들을 싫어합니다. 별 게 사기꾼이 아니라 행동이 말을 따라오지 않으면 사기꾼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사람을 보는 눈을 따로 익힌 적은 없지만 사람을 알아보는 저의 감각을 '이제는' 신뢰합니다. 누구나 아는 사항이지만 그 사람의 '말'에 집중하기보다 '행동'에 집중하면 웬만큼 어떤 사람일 거라는 가닥이 나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기준이 야박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말은 어떤 것도 책임져 주지 않습니다. 말을 신뢰할 수도 있지만 말보다 더 정확한 것은 행동이라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제가 끊임없이 기록하고 콘텐츠를 결과물로 남기는 이유도 비슷합니다. 세상에 내놓을만한 증거가 없는 이상 사람들은 그 어떤 것도 인정해주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결과물만 많다고 인정해주는 것도 아닙니다. 실체와 가치가 만나야 인정을 위한 최소한의 요건이 마련되는 것 뿐입니다. 그래서 내가 추구하는 가치를 실체화시키기 위한 노력이 결국은 알찬 수레가 되는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겉만 번지르르한 수레가 아닌 바퀴도 튼튼하고, 비나 눈에도 끄떡없는 수레에 '전자책', '스타일 코칭', '행복한 옷입기', '1인기업', '글쓰기' 등과 같은 저만의 콘텐츠를 하나씩 싣는 것으로 사람들의 관심과 인정을 받고 싶습니다. 


(1) 최근에 했던 경쟁은 무엇이 있는지 설명해보자.

(2) 내가 불편해하는 사람들의 유형을 정리해보자.

(3) 관심과 인정을 받고 싶어하는 분야가 있다면 적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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