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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문연 Feb 03. 2016

50가지 사소한 글쓰기 워크북(6) 알바

내가 그런 알바를 했었드랬지.

에피소드(6) 내 생애 극한 알바


고등학교 졸업 후 얼떨결에 아르바이트를 하게 됐다. 친구가 주유소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20대 로망 중 하나가 아르바이트였던 나는 덜컥 하겠다고 이야기했다. 수능이 끝난 직후 본격적인 추위가 시작된 12월의 어느날이었기에 엄마와 언니는 고생길로 다이빙하려는 나를 말리고 또 말렸다. 하지만 우리 집에서 황소고집을 담당하고 있던 나는 엄마와 언니의 말을 고이 접어 주머니에 넣고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아르바이트에 대한 로망도 있었지만 그 당시 주유소 아르바이트는 꽤 고수익을 보장했기 때문이다. 물론 극한 알바는 대개 돈을 많이 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추운데 어떻게 두 달이나 했는지 모르겠다. 아마 같이 일하는 친구들이 좋아서 그랬던 것 같다. 특별히 나랑 친했던 것도 아니고 내 친구랑 더 친했던 것 같은데 고등학교 졸업 후 사회에서 만난 첫 사람들이라 그런지 마냥 재미있고 신기하고 그랬다. 하지만 주유소 아르바이트가 마냥 즐거웠던 것만은 아닌데 이유는 내가 일을 참 못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실수는 들어보지 못했으므로 혼자만 기억하는 레전드급 실수를 몇 가지 이야기해보자면, 때는 바야흐로 16년 전의 일이다.


주유소 일은 주유 일과 세차장 일로 나뉜다. 시간에 따라 아르바이트 생이 돌아가면서 업무를 담당했는데 주유 업무는 손님이 '얼마치 넣어주세요~' 이러면 기계에 그 값을 입력한다. 그 값만큼만 주유가 되고 끊기는 자동화 시스템이었기에 그다지 어려운 건 없었다. 그 날도 주유를 하면서 먼 산을 보고 있었다. 날은 추웠고 기름 냄새는 좋았으며(읭?) 주유가 끊기는 소리가 들리기만을 기다렸다. 그런데 먼 산에서 폭포 소리가 들리는 것 아닌가. 아 폭포 소리...점점 커지는데? 누가 이름을 불러 정신을 차려보니 차에서 기름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주유기가 고장이 난 것이다. 난 내가 잘못한 건 줄알고 죄송하다고 했는데 차주인이 주유소 단골?이라 큰 소동없이 넘어갔다. 


세차장 일은 주유 일보다 더 힘들었다. 주유 일은 주유만 하면 되었지만 세차장 일은 세차가 되어 나온 차량을 수건으로 닦는 일이었기에 손이 마를 일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목장갑에 고무장갑만 껴도 되었을 건데 그 때는 왜 그냥 했는지 글을 쓰면서도 참 이해가 안 가는 아이였다.(아 목장갑은 꼈던 것 같다.) 두 명 정도 들어갈 정도의 천막 안에 작은 난로 하나 놓고 난로 위에 수건을 말리면서 일을 했는데 차를 열심히 닦고 들어왔더니 난로 위에서 수건이 타고 있었다. 손에 들고 있던 수건으로 불을 겨우 끄고 나니 이 엄청난 사태에 대한 안도감보다는 난로 값을 물어줘야 한다는 걱정이 먼저 들었다. 16년 전의 일이지만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주유소에서의 불이라니...


그렇게 아무도 모르게 난로의 불을 수습하고 나서 매니저 오빠(아저씨였지만 그 때는 다 오빠로 불렀다. 그래도 지금의 내 나이보단 젊었을 듯 ㅜㅜ)에게 난로 값에 대해 물으니 괜찮다고 그랬던 것 같다. 그렇게 다채로운 실수를 뒤로 하고 대학교에 입학하게 되면서 아르바이트를 그만두었다. 그 때 추위와 기름 때 등으로 인해 거무튀튀하게 변한 손이 원상태로 안 돌아올까봐 조마조마했는데 3개월쯤 지나니 다시 뽀송뽀송해졌다. 사실 아르바이트는 이거 말고도 했지만 주유소 아르바이트가 제일 기억에 많이 남는다. 제일 힘들었고, 제일 실수도 많았고 그러면서 일에 대한 책임감이나 집중력을 키웠던 것 같다. 차 지붕에 주유구 뚜껑을 얹고 가는 차를 세우기 위해 뛰어가던 장면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끔 피식피식 웃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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