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02. 26. 수
어둑한 골목에 불 켜진 작은 상가들이 분주히 하루의 일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만의 보금자리로 돌아가고 취한 사내들이 차가운 바닥에 그대로 쓰러집니다. 거리에는 생기 잃은 낡은 트럭들이 정거해 있고, 내 신발 밑창으로 여러번 불러낸 추억들이 밟힙니다. 그리고 이 주택가 어딘가에 작고 까만 눈을 깜빡이다 잠에 빠지는 아기도 상상해봅니다. 눈이 소복히 쌓인 이런 귀갓길을 언젠가 책에서 읽은 적이 있는 것도 같습니다.
“아직도 믿을 수 없어."
"나에게 그런 날이 왔다는 게, 콩콩 두드렸을 뿐인데 와장창 망가졌다는게."
취한 마음으로 뱉은 친구의 그 말에 내 이마엔 연민보다는 왠지 찌푸림이 먼저 자리합니다.
열 걸음 앞으로 갔다가 아홉 걸음 물러서면 결국 제자리구나 하며 실망하게 됩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한 걸음 나아간 겁니다. 더디지만 그렇게 한 걸음 나아간 거라는 생각입니다. 뭐든 한 번에 바꿀 수는 없다는 생각입니다.
한 때 죽고 못살 정도로 사랑했다가 진흙탕 싸움을 하면서 결국 틀어져버린 사랑도 사랑이라 부르는데, 녀석은 어째서 인생에서 한 번 넘어진 걸 실패라고 부를까요. 그건 자신의 인생이 아닌 걸까요. 잠시 쓴 마음을 달래는 푸념이라 생각하고 감정이 가라앉을 때까지 오래 기다리기로 합니다. 내 시시한 삶에도 쉼표는 필요하듯 그 친구의 삶에도 그 정도 쉼표는 필요하지 않을까합니다.
상처는 남아도 그건 남들과는 또 다른 자신만의 이야기가 될테니까.
저는 예비 소목수 입니다.
좋아하는 걸 좋아하기 위해서는 노력해야 합니다. 기술이 익히는 과정이 고될수록, 그 시간이 길어질수록, 지쳐 나가떨어지지 않고 스스로의 만족감으로 버티는 인고의 시간을 보내야 할 겁니다. 대부분의 일이 그러하겠지만 그렇게 부단하게 노력하고 견뎌 얻은 기술조차 그 직업이 가져야할 기본 소양일 뿐 자랑거리는 아니란 것을 받아들이기 위한 시간도 보내야 할 겁니다. 하루의 일상을 만들어 내기 위해 갖춰야 할 능력이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비 소목수로서의 고민이 깊어지면서 내면은 진작부터 기술과는 상관없는 다른 것과 사투하고 있습니다. 내 손으로 원하는 것을 사물로 만들 수 있다는 생각, 내 선택으로 포기하고 짊어져야할 스스로의 미래에 대한 불안들은 내가 좋아하는 글로 정리하고, 그림으로 내 세상을 재해석하고, 내가 만나고 있고 만나게 될 다양한 타인의 심정에 공감해보며 긍정적인 힘을 불어넣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나무에게 단단하지만 유연할 수도 있다는 것을 배웁니다. 나무는 그 수종에 따라 목질이 다양하고, 같은 수종이라도 버텨낸 시간만큼이나 다양한 개성있는 결을 가집니다. 나무는 옹이나 갈라짐, 할렬, 곰팡이, 벌레가 지나간 길, 수피 등 재료의 단점들도 수두룩하지만, 자신의 고집을 지키며 작업자에게 몸을 내어주는 포용력과 강인함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지금 하려는 일들은 앞으로 살아가려는 방향은 대부분 큰 돈은 되지 못하는 것들입니다. 운이 좋으면 성공하지만 그 운이 나에게 적중하리라는 과도한 믿음보다는 적당한 근심을 안고 성실하기를 택하는 편이 낫습니다. 그러니 하려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기야 말로 꾸준히 내 일을 좋아하는 최고의 방법입니다. 나는 오랜시간을. 내가 좋아하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지내며 버텨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