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엄마랑 유럽으로 한 달 장기 여행을 떠났을 때 피부가 예민한 엄마는 석회수를 걱정하셨다. '피부가 엄청 푸석푸석해지고 트러블도 잘 난대!' 그래서 난 면세점에서 다양한 마스크 팩을 묶음으로 대량 구매했다. 꽤 부피도 크고 무거웠지만 둘이서 매일 쓰면 금방 없어질 것도 같았다.
그러나 이 마스크 팩은 이내 곧 유용한 선물이 되었다. 유럽에선 의외로 선크림이나 보습 팩처럼 피부를 보호하는 제품이 흔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가이드나 집주인처럼 인연이 닿는 분들께 몇 장씩 선물로 드렸더니 이게 바로 코리아 마스크 팩이냐면서 꼭 써보고 싶었다고 너무 좋아하시는 것이었다.
그때 그 환한 웃음들이 기억에 오래 남아 이번에도 선물을 준비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번 여행은 정작 내 화장품도 선크림 한통, 로션 한통이 전부인 혼자만의 여행이라 마스크팩 몇십 장을 들고 다니기에는 부담스러웠다. 그렇게 결정한 선물은 즉석 사진! 넉넉하게 필름을 준비해서 여행을 떠났다.
아일랜드에서는 꼭 B&B라고 불리는 민박집에 묵어보고 싶었다. B&B란 Bed & Breakfast의 줄임말로 집 전체를 빌릴 수 있는 에어비앤비와는 약간 다르게 주인이 살고 있는 집에서 방 하나를 얻는 형태이다. 대부분 개인 화장실이 방에 딸려 있기 때문에 독립적인 개인 공간 안에서 일반 가정집의 향취를 느껴볼 수 있다.
나의 첫 B&B는 교회 건물을 개조해서 만든 낭만적인 2층 집이었다. 중년의 사모님이 혼자 운영하고 계셨는데 얼마나 친절한지 나를 마치 손녀처럼 대해주셨다. 아픈 덴 없는지 식사는 괜찮은지 춥진 않은지 하나부터 열까지 신경 써주시는 모습과 로맨틱한 분위기에 반해 하루 더 묵을 정도였다. 내가 얼마나 그곳이 마음에 들었냐면 집에 어울리는 꽃을 사서 매일이라도 선물로 드리고 싶을 정도.
그렇게 본의 아니게 이틀을 묵고 나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사모님께 같이 사진 찍기를 권했다. (낯선 사람에게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하는 일은 생각보다 쑥스러웠다) '우리 같이 사진 찍어요!' 그리고 사진을 뽑아 뒷면에 간단하게 감사했다는 메모와 날짜, 내 이름을 적어 선물이라며 드렸다. 내가 여길 기억하고 싶은 만큼 이분도 나를 기억하셨으면 했다. '좋아하실까?'라는 괜한 걱정을 하며 사진을 건넨 후에 봤던 그때 그 표정이란.
이 간단한 사진 한 장이 뭐라고 하염없이 바라보며 눈물까지 글썽이셨다. 손님에게 이런 선물을 처음 받아본다며 'Lovely girl! Lovely picture!'를 반복하시는 모습에 오히려 당황한 건 나였다. 정말 이게 뭐라고.
아일랜드의 모든 숙소 주인 분들이 다 친절하셨지만 유난히 이 곳이 기억에 남는 것은 낯선 곳에 도착하자마자 겪은 첫 친절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덜덜 떨며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밤 길을 운전해서 도착한 나의 첫 숙소. 외출할 때마다 매번 간식까지 챙겨주시던 그 따뜻함에 비하면 내 선물은 너무나 작디작았다.
PS. 사실 그 후로 즉석 사진을 찍을 일은 많이 없었다. 의외로 타이밍 맞추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첫 사진 한 장만으로도 카메라를 가져간 보람은 차고 넘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