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에 도착한 지 2주가 조금 넘었을 무렵. 오늘 식사도 맛있었지만 신선한 샐러드는 여전히 구경도 못했다. 시리얼에 빵과 버터, 몇 안 되는 과일. 그리고 소시지나 베이컨. 잘 먹긴 했는데 슬슬 고기도 그만 먹고 싶었다. 한국 음식이 그리웠다기보다는 신선한 채소가 그리웠다.
아일랜드까지 왔는데 아직도 제대로 된 피시 앤 칩스를 못 먹어봤다. 때마침 항구 마을에 왔으니 오늘 저녁은 피시 앤 칩스와 맥주 한잔이다. 그렇게 숙소 옆에 있는 펍 중에 한 곳을 대충 골라 들어갔다. 그런데 세상에! 이게 얼마 만에 보는 샐러드인가! 솔직히 노릇노릇하게 잘 튀긴 생선 튀김보다 한쪽 구석에 조그맣게 나온 그 샐러드가 너무 반가웠다. 소스도 안 뿌리고 그냥 아삭아삭 씹어먹었다.
아니 오이가 이렇게 맛있었나? 청량하고 차갑게 얼린 청포도를 먹는 기분이었다.
사실 난 생 오이를 안 좋아한다. 더운 여름날, 생 오이를 통으로 들고 수분 섭취를 하며 '아 시원하다' 하시는 어른들을 의아해했다. 그 맛을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겐 생오이의 향이 너무 강하게 느껴지는 탓이었다. 김밥이나 냉면처럼 어딘가에 섞여서 그 향이 좀 중화되면 그나마 먹긴 먹는데 그마저도 이질감을 무시하면서 그냥 목구멍으로 밀어 넣는 수준이었다. 오이가 맛있다고 느끼는 날이 올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그 날이 오더라도 중년의 나이쯤은 됐을 줄 알았다.
혹시 여행의 분위기에 취해서 그때만 맛있었던 거 아닐까. 술에 취했을 때 세상이 다 아름답게 보이는 것처럼. 하지만 한국에 돌아와서 먹는 오이도 여전히 맛있다. 어떤 오이든 모든 오이에 그때의 기분이 맛깔나게 묻어있다. 심지어 이제는 찾아 먹기도 한다. 추억이란 참 신비롭고 강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