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떠나기 하루 전에 급하게 산 트래킹화는 애초에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별로 없었다.경량 방수 트래킹화. 그중에 가격 적당한 것. 사이즈 재고가 있는 것. 3가지 조건만 필요했을 뿐인데 마지막까지 남은 것은 단 하나뿐이었다. 그렇게 친해질 시간도 없이 함께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아일랜드는 자주 쏟아지는 비로 인해 매일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지면이 젖어있었다. 그리고 지형 특성상 지하로 물이 잘 빠지지도 않는다. 그러니 아스팔트 길을 조금만 벗어나면 그야말로 진흙탕이다.
난 여행자들이 진흙에 미끄러져 넘어지거나 물 웅덩이에 가로막혀 오도 가도 못하는 모습을 꽤나 많이 봤다. 나도 처음엔 망설였다. '이거 방수 제대로 되는 거 맞아? 진흙은 또 어떻게 닦아내지.' 그러다가, '에라 모르겠다 이러려고 산 건데!'그렇게 첫걸음!
내 트래킹화는단 한 방울의 물을 용납하지 않았으며 젖은 바위 위에서도 미끄러지지 않았다. 제일 마음에 든 점은 진흙이 마른 뒤 바닥에 툭툭 털면 금방 깨끗한 모습으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이미 지나간 부정적인 것에는 조금도 잡히지 않겠는다는 듯이. 그게 참 용기 있어 보여 점점 의지하게 되었다.
혼자 떠난 여행은 후련하기도 하고 자유로우면서 한편으로는 굉장히 무서웠다. 손 잡아 줄 사람 하나 없는 트래킹 코스 위에서는 더더욱 그랬다. 원래 물놀이를 할 때도 누군가 먼저 뛰어들어야 우르르 따라 들어가지 않던가.
낯선 땅을 밟게 하는 원동력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리고이것 또한 엄연히 그중에 하나였다. 사실 '이것'이라고 칭하기에는 보다 애틋한 마음이 들어 다른 호칭을 사용하고 싶은데 마땅치가 않다. 뭐라 하면 좋을까. (어쨌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