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제일 서쪽 마을에 도착했다. 1차선에 가까운 좁고 구불구불한 해안도로를 달리다 보면 한 번씩 차를 대고 쉴 수 있는 조그마한 공터가 나온다. 공터라고 하기에도 아쉬운, 딱 차 한 두대 겨우 댈 수 있는 갓길이다.
눈이 시리도록 드넓은 초록 초원을 기대했건만 짙은 안개는 그를 허락하지 않았다. 강한 바다 바람이 안개를 날려 보내주길 기다렸다. 그러나 그는 또 다른 안개를 몰고 올 뿐이었다.
여행자에게는 그 아쉬움조차도 운치일 뿐이어서 잠시 차에서 내려 아무 바위 위에 앉았다. 비교적 따뜻한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비를 머금은 축축한 바람은 뼛속을 파고들었다.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모자를 손으로 꾹 누르는데 누군가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Super windy, huh?"
머리가 하얗게 변한 인상 좋은 할아버지는 이 곳에 살고 있다고 했다. 그렇게 잠깐 옆에 앉아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솔직히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과는 하는 이야기가 다 비슷비슷하다. 어느 나라 사람인지, 여행 코스가 어떻게 되는지, 총 여행 기간은 얼마나 되는지 등등. 하지만 같은 이야기도 매번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다 보면 늘 새롭다. 한 번도 먼 곳에 나가본 적 없다던 할아버지는 지구 반대편에서 온 나의 이야기에 눈을 반짝였다. 그리고 우리 마을이 얼마나 안전하고 평화로운 마을인지 자랑하기 시작했다. 내가 그분 집에 묵는 것도 아닌데 잘 왔다며 환영해주었다.
우리나라 남해랑 비슷한 풍경이었다
아일랜드 서쪽은 아직도 켈트 족의 문화가 많이 남아있다. 그래서 서쪽으로 갈수록 게일어로 쓰인 표지판이 많아진다. 사투리가 심해 같은 영어를 쓰는 사람들끼리도 여러 번 다시 묻는다.
딩글 반도의 친절한 주민은 혼자 여행을 떠나온 이방인에게 켈트족의 오래된 기도문이라면서 행운을 빌어주었다. 처음 만난 낯선 사람에게서 듣는 축복 기도는 남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이 고마움을 겨우 두 단어로 다해야 하나 아쉬워하고 있는데 더없이 따뜻한 눈빛을 하고선 '진심이야'라고 말해주어 순간 울컥하고 말았다.
나도 저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안개가 살짝 걷혔던 찰나의 순간
뜻은 통했지만 원어로는 기억이 안 나 인터넷으로 '켈트족 축복기도'를 검색했다. 의외로 아주 손쉽게 찾을 수 있었다. 알고 보니 방송에서도 여러 번 인용되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힘이 되어주었기 때문일까. 내가 들었던 문장은 아래 두 문장뿐이었지만 전문이 있어 출처를 밝히고 퍼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