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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쎄미 Apr 15. 2020

수영복 변천사

2018년, 사계절 내내 더운 나라로 여행을 가게 되었다.


친구와 나는 호텔 수영장을 이용할 생각에 부풀어 신나게 수영복 쇼핑을 하기 시작했다. 둘 다 성인이 되고 나서 처음 사는 수영복이라 조금 쑥스러웠다. 그렇다면 최대한 부끄럽지 않을 디자인을 골라보자. 고심 고심해서 고른 우리 수영복은 몸매가 거의 드러나지 않는 미니 원피스 형태였다.


얌전한 걸 고르는 와중에도 그래도 해외니까 약간은 과감하고 싶은 마음에 선택한 홀터넥 디자인은 큰 단점이 있었다. 목 뒤로 묶는 얇은 끈은 자꾸 살을 파고들어 아팠고 그 끈에 머리카락이 자주 엉켰다. 저렴한 원단은 강한 소독물에 의해 단 한 번만에 변색되었다.

나름 컬러까지 맞춘 우리의 첫 수영복


물놀이의 재미를 알게 된 이후로 내게 여행지에서의 수영은 한동안 필수조건에 가까웠다.


두 번째 수영복의 개시는 어느 휴양지에서였다. 이때도 무난함은 포기할 수가 없어서 어깨끈이 넓어 조금 더 편안한 착용감을 갖춘 민소매 원피스 형태의 수영복을 샀다. 훌렁훌렁 옷을 벗고 속옷만 입은 상태로 바다에 뛰어드는 현지인들과 달리 여전히 부끄러움이 많은 나는 그 정도 수영복이 최대 자신감이었고 엄마는 심지어 그 뜨거운 태양 아래서도 굳이 굳이 어깨 위에 카디건을 걸쳐 주었다.


그런데 또 다른 단점이 발견되었다. 물에 푹 젖은 치맛자락은 아무리 쥐어짜도 물이 뚝뚝 흘렀고 무겁기는 또 엄청 무거웠다. 축축한 상태로 기분 나쁘게 허벅지에 휘감기기까지 했다. 가슴에 빵빵하게 들어간 와이어는 한 번만 탈수해도 울룩불룩하게 변형되어 도저히 또 입을 수가 없었다. 난 이때 깨달았다.


아 비키니가 최고겠네.


굳이 굳이 어깨 위에 걸쳐준 카디건.

하지만 발이 닿는 곳까지만 들어갈 수 있던 나와 달리 작은 점으로 보일 정도로 깊은 곳에 들어가 노는 사람들이 마냥 부러웠던 나는 한국에 와서 바로 수영장에 등록했다. 그렇게 비키니보다 실내 수영복을 먼저 개시하게 된다. 실용성의 중요함에 대해 깨달은 뒤에도 나의 무난함 사랑은 계속되어서 검은색에 허벅지 라인도 살짝 내려오는 수영복을 샀다. 그리고 너무 타이트하게 붙지 않는 사이즈로.


약 2달 정도 배운 후에 선수급 실력을 자랑하는 친구와 주말 자유 수영을 하러 갔다. 그런데 친구가 하는 말이 또 신선한 충격이었다.


"너 수영복 너무 큰데? 그렇게 여유가 있으면 몸과 수영복 사이에 물이 들어가서 저항이 커져."

"진짜? 이게 큰 거야? 난 지금도 엄청 딱 붙는 거 같은데."  


친구의 수영복은 허벅지 라인도 아주 깊게 올라가 있고 아주 타이트했고 심지어 가슴 패드도 없었다. 갑자기 그녀의 수영복이 멋있어 보였다. 실력자의 자신감 같기도 했다.


와. 나 영법 다 배우면 나도 그런 거 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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