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점의 확고함은 다음 스텝이 준비되어 있다는 것과 같다.
이번 장은 약속을 통해 그림을 바라볼 것이다.
나는 약속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긴다.
약속이 잘 이행되는 상대와는 더 많은 것들을 같이 하고, 시간을 보낸다.
약속이 잘 이행되지 않는 상대에겐 더 이상 관여하지 않는다.
약속을 잘 지킨다는 것은 신뢰성을 떠나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부분이 담겨 있다.
여러 가지 환경을 충분히 고려해 보고 약속을 정하는 과정에 답이 있다.
신중함, 계획성, 주관 등 자기 삶의 가치관들이 소량이라도 묻어나기 마련이다.
약속 하나에 너무 큰 의미 부여를 하는 속단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그 사소한 정보 한 가지에서 파생되는 나비효과들이 발생한다.
약속이 잘 이행되지 않는 대부분의 경우다.
시간이 흐르며 수많은 과정을 거친 결과들을 모아 보면, 나와는 결이 확연히 다르며 신뢰하기 힘듦으로 결론이 났다.
물론, 피치 못할 사정과 급하게 변하는 생활환경 등에서 완벽히 지켜내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도,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도 같은 입장일 것이다.
누구나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상황과 어려움이 있을 텐데, 그것을 끝까지 완수해 나가는 책임감과 실행력을 높이 여긴다.
약속을 한 가지라도 어기면 안 된다는 단순한 주제는 아니다.
나는 결과보다 과정을 항상 중시한다.
중요한 것은 지키려고 하는 마음이다.
약속을 중시하는 마음이 강하다면, 그 마음은 어떤 식으로든 상대방에게 전달된다.
약속을 어쩔 수 없이 어기게 되었을 때, 그 수습 과정의 대처가 가장 중요하다.
상대방과 조율하고 양해를 구해가는 과정에서 그 사람의 가치관이 보인다.
김앤트, 너만의 시간, 37.2x27.2cm, Oriental painting, 2018
약속을 파기할 때 가장 안 좋은 자세 세 가지다.
1. 잠수
2. 일방적 통보
3. 본인 입장만을 강조
세 가지의 유형에서는 이런 것들을 느낀다.
우선순위, 여유 부족, 짧은 생각과 판단, 이기심, 의도된 우발성 등
약속은 즉흥적인 생각과 감정의 판단이 아닌, 많은 것들을 고려해 보고 감당이 가능할 때 판단을 내려야 한다.
자신과의 약속도 마찬가지다.
스스로와의 약속이 안 지켜졌을 때의 페널티는 오로지 자신한테 온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부담과 눈치가 적어지고 더 안일한 생각과 낮은 행동력을 갖게 된다.
일상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스스로와의 약속.
하루 일과부터 새해 다짐들, 해야 할 것들, 절제해야 할 것들, 얼마큼 지켜가고 있을까?
타인과의 약속
자신과의 약속
모두 약속의 카테고리 안에 포함되어 있고 묶여있다.
그렇기에 약속을 잘 지키지 않는 습관은 평소 생활과 마인드의 거울일 확률이 굉장히 높다.
그 거울을 통해 개인의 성장단계까지 비춰 볼 수 있다.
칼같이 단정 짓는 것은 아니며 어느 정도의 범주를 이야기하고 있다.
약속을 지키는 습관이 모든 부분에 우월하게 적용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능력 성장 과정과는 분명한 연결점이 존재한다.
그림을 그린다 가정해 보자.
처음의 구상 콘셉트, 연출, 구성, 소재, 재료 등을 정한 후 표현의 단계로 넘어가게 된다.
표현의 단계의 첫 과정인 형태는, 대상의 외형만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의 계획들을 표시해 놓는 목적이다.
형태는 앞으로 어떻게 그릴지 정해놓는 평면에서의 약속이다.
약속을 잡을 때는 역시나,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주로 다음 과정이 수월하게 진행될 수 있게 길을 열어놓는다.
평소 막히는 부분들에 대한 안배들도 설정해야 한다.
물론, 완성해 본 경험이 적다면 다음 과정을 모르기 때문에 안배를 해 놓기 어렵다.
당장의 적용 여부보다, 약속에 대한 인식을 하고 연습을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인식하지 못하면 향상할 부분을 놓치며 연습하게 된다.
숙련되었을 때, 전체 흐름을 파악하여 상황마다 안배 타이밍에 맞춰서 그려낼 수 있게 된다.
형태 설정의 다음 단계 색과 명암의 설정을 진행할 때도, 이 약속들은 계속 유지되어야 한다.
'나는 앞으로 여기서 이렇게 그릴 거다.'
평면에 약속을 걸고 지키고, 걸고 지키고를 반복해 나간다.
이 과정을 지켜낸 경험이 많을수록 처음 계획이 유지된 그림들을 그려낼 수 있다.
약속을 기준으로 놓고 보면 그림이 잘 안 그려지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설정을 약속이라 인식하지 못했다.
처음부터 약속이 안 되어 있다.
잡아놓은 약속을 어기며 과정을 덮어썼다.
약속 없이 진행된 과정들이 쌓이자 점점 감당하기 어려워서 뒤엎었다.
나 역시 이 과정들을 겪으며 계속 다짐한 부분들이 있다.
그리기에만 집중하지 말고 전체 상황을 먼저 바라보고 임하자.
결정이 신중하지 못했으니 고려할 만한 상황들을 조금 더 찾아보자.
이행 과정에 어려움들이 있어도, 끝까지 지켜내 보자.
결국 그렇게 주도적인 그림들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경험으로 좋은 성과를 체감한 후, 설정한 약속을 꼭 지키기 위해 매번 다짐한다.
삶을 써내려 가는 흐름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아직도 이 생각이 옳다고 믿고 있다.
그러길 바라고 있다.
예전에는 옳고 바른 사람만 그림을 대성할 수 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꼭 그렇진 않더라.
사실상 별개였다.
정확히 말하면 애초에 기준점 자체가 다른 것이었다.
바라는 것은 정말 동화 같은 얘기고 이상적인 얘기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동화를 아직도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