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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과 이를 대변하는 역사 속에서

아이리시맨

by 이동기

배우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영화들이 꼭 한 편씩은 있다. 그게 바로 그 배우가 가진 이미지이다.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신예 배우에게는 이미지 메이킹이 한 편의 족쇄와도 같지만,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기성 배우에게는 반대로 최고의 찬사가 될 수도 있다. 하나의 역할에 있어 나를 대체할 누군가를 떠올리기 힘들다는 건 그야말로 안성맞춤의 연기력을 갖고 있다는 거다. 이 작품은 그런 이미지가 덧씌워진 배우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1984)의 ‘로버트 드니로’, <칼리토>(1993)의 ‘알 파치노’, <나홀로 집에>(1990)의 ‘조 페시’, <U-571>(2000)의 ‘하비 케이틀’이 바로 그들이다. 여기에 갱스터 무비의 거장인 마틴 스콜세지가 함께 했다면 이 작품이 가지는 색깔은 더욱 뚜렷해진다. 영화 <아이리시맨>(2019)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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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나이를 먹어 몸을 채 지탱하지 못하는 노령의 프랭크(로버트 드니로 분)가 휠체어에 앉아 과거를 회고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어릴 적 페인트공이 집을 칠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고 말하는 그에 대한 클로즈 샷은 어느 새 그와 러셀(조 페시 분) 부부가 함께 차를 몰고 러셀의 사촌 딸 결혼식장으로 떠나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물론 이후부터 모든 화면은 프랭크의 과거에 대한 회고 장면이다. 영화는 프랭크를 중심으로 그의 인생을 다양한 각도에서 비추는데 각 시점마다 벌어지는 주요 사건들을 현실적으로 담아내고자 노력했다. 쉽게 말해 그가 주변 인물들과 어떻게 얽히고설키며 현재에 이르렀는지에 대한 스토리를 단순히 전달하는 것을 넘어 그를 둘러싼 배경과 역사까지도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해 전체를 대변하고자 노력했다는 사실이다. 여기에 이 영화가 가고자 하는 자전적 서사의 방향이 쉽게 드러난다.


이 영화 <아이리시맨>은 1950~60년대 미국에서 자리를 잡고 성행했던 아일랜드계 마피아의 일대기를 다뤘다. 당시의 미국은 2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으로서 그 자리를 확고히 다지고 있었으며 이를 통해 미국으로 건너와 성공을 꿈꾸는 일명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코자 하는 이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이러한 성향은 당시의 미국 곳곳에서 나타난 이주 갱스터들의 출현과도 이어져 있다. 이런 시각에서 본다면 이 영화는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2002년 작, <갱스 오브 뉴욕>(2002)과 닮은 구석이 많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아일랜드 이주민들로 가득 찬 뉴욕을 배경으로 원주민들과 아일랜드 이주민들 사이의 갈등, 그리고 피와 폭력으로 얼룩 진 그들의 전쟁 서사를 제대로 그려낸 점이 바로 그렇다. 역사적 해석에 한 인물의 사랑과 복수를 적절히 섞었다는 점도 마틴 스콜세지 감독 특유의 서정적 폭력의 서사를 화면에 제대로 담아냈다고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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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은 자신의 영화 <갱스 오브 뉴욕>에 한 개인의 일인칭 관점을 덧대어 역사를 재구성함으로써 이 영화 <아이리시맨>을 완성시켰다. 평범한 트럭 운전수로 살아가던 프랭크는 우연히 러셀을 만나 고장 난 트럭의 수리를 도움 받는다. 그리고 두 사람은 또 한 번 우연히 마주치게 되면서 극도로 가까워진다. 아일랜드인이 이탈리아어를 어떻게 배울 수 있었냐고 묻는 러셀에게 프랭크는 이탈리아 전장에 참여한 적이 있다고 답하고, 죽는 게 두렵지 않았냐는 질문에 죽는 건 늘 두렵다며 두렵지 않다면 그건 허풍일거라고 담담하게 얘기한다. 이 장면에서 프랭크가 보여주는 미소는 겉으로는 밝지만 그 내면에는 아픈 과거를 통해 성찰한 깊이를 드러내고 있었다. 거기서 살아남으면 절대 죄를 짓지 않겠다고 빌었다는 건 제대로 된 반어적 표현이다. 필라델피아 마피아의 새 보스가 된 안젤라(하비 케이틀 분)와의 만남이 결코 순탄한 방향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임을 누구보다 그 자신이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처럼 조금씩 그리고 천천히 마피아의 세계에 젖어들고자 애쓰는 프랭크의 인생을 다각도로 그려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조직에 완벽히 녹아들지 못하고 주변을 맴도는 주변적 인물로 표현된다. 그는 애초부터 회고를 통해 페인트공에 대해 언급했지만 실제로 그는 스스로의 결정에 따라 타인의 피로 벽을 물들이는 킬러가 되지는 못했다. 오히려 윗선의 지시를 전달하는 배달부 혹은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는 수동적 킬러라고 보는 게 옳다. 어쩌면 자신은 스스로를 페인트공이라고 칭하고 싶었을지 몰라도 지나온 그의 흔적이 그렇지 못했음을 누구보다 스스로가 더 잘 알고 있었을 거다. 이런 측면에서 그를 비춰본다면 윤종빈 감독의 영화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2012)에서 비슷한 주변적 인물을 찾아볼 수 있다. 조직에 포함되지 못하고 주변을 맴돌며 권력에 기생하고 살아가는 최익현(최민식 분)이 바로 그이다. 두 인물은 모두 완벽한 조직원으로서의 인생을 살아가지 못한 채 주변을 맴돌며 스스로의 행위를 위안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비슷한 성격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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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그들이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내뱉는 변명으로 ‘가족’을 내세운다는 점도 비슷하다. 최익현이 자신의 범법행위를 기반으로 훗날 자식들을 성공적으로 키워낸 것처럼 프랭크 또한 가족을 위해 그러한 삶을 살아왔다고 스스로에게 변명을 한다. 하지만 두 인물 모두 그 이유는 그들만의 핑계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이 택했던 삶과 행동은 모두 단 한 번의 망설임 없이 그들 스스로가 선택한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최익현이 세관직 공무원으로서의 영위를 벗어던지고 또 다른 기생적 삶의 세계에 발을 들인 것도, 그리고 프랭크가 전쟁 속에서 붙잡은 포로를 향해 주저 없이 방아쇠를 당겼던 것과 자신과 공생관계에 놓여 있었던 지미 호파(알 파치노 분)를 거칠게 대했던 것도 모두 그들이 가진 후치무안(後置無顔)의 성격을 드러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 영화 <아이리시맨>은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명확하게 드러난 작품이다. 하나의 캐릭터를 통해 우리가 거쳐 온 어두운 시대를 얘기하고자 한 것이 바로 그 것이다. 그 속에 개인의 삶을 욱여넣어 시대가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 또 어떤 과정을 거쳐 현재에 이르게 됐는지를 관객들에게 현실감 있게 설명하고자 애를 쓴다. 물론 갱스터 무비가 갖춘 액션과 스릴, 긴장감을 원했다면 이 영화가 가져오는 실망감은 이루 말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 만큼 이 작품은 입체적인 부분에서 관객들의 기대치를 맞춰줄 정도의 재미를 전달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개인의 삶을 따라가면서 시대를 함께 읽을 수 있다는 장점과 서정적 폭력의 서사를 충분히 느낄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본다면 이 만큼의 재미를 주는 작품도 없을 듯하다. 언뜻 보면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러닝 타임이지만 시대를 따라가는 재미를 좇다보면 오히려 모자라게 느껴질 수도 있는 시간이라는 점에서 이 영화만이 주는 독특한 재미가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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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결말은 결국 프랭크의 노년으로 회귀된다. 어찌 되었건 프랭크는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고 가족들은 그런 그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분명 그는 가족들을 위한 인생을 살았지만 가족들로부터 철저히 외면 받은 그의 인생은 또 다른 시선으로 지나온 과거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영화의 초반, 러셀이 프랭크의 둘째 딸 페기에게 건넸던 ‘하늘이 높은 이유는 작은 새가 날면서 부딪히지 말라는 것.’이라는 문장은 관객들에게 전달되는 의미가 남다르다. 결국 애초부터 프랭크의 선택과 그로 인한 삶은 그와 어울리지 않았다는 얘기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주요 인물들의 다양한 삶과 그 속에 놓여있는 그들의 선택이 우리가 거쳐 온 지나간 역사를 대변한다는 점에서 이 영화가 가진 가치는 남다르게 다가올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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