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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창가 Jul 10. 2021

한강 수영장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수도권 거리두기가 최고 수준인 4단계로 격상됐다. 학교 문은 또다시 닫혔고 저녁 6시 이후로는 그 누구도 셋 이상 모이지 말란다. 누가 봐도 코로나 발생 이후 가장 심각한 상태다. 이로 인해 사회 곳곳에 어떤 문제들이 생길지 지금으로선 짐작조차 할 수 없다. 내 입장에선 작년부터 품어 왔던 꿈이 산산조각 났다.



올해 들어 확진자 수가 300~400명 대로 꾸준히 유지되고 백신 접종도 진행되면서 소박한 희망을 품었었다, 한강 수영장에 마음껏 놀러갈 수 있을 거라는 꿈. 아이가 수영장에 못 간지 2년째다. 한창 물놀이의 재미에 코가 빠질 나이에 좁은 욕조에서 아쉬움을 달래는 아이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짠해진다. 네 살때까지 물이 얼굴에 한 방울만 튀어도 사방이 떠나가라 울어대는 통에 수영장 근처에도 못 갔었다. 얘는 물을 싫어하나 보다라고 결론을 지을 무렵 우연히 데려간 물놀이장에서 180도 달라진 아이의 모습을 목격했다. 물을 얼굴에 뒤집어쓰고  깔깔 웃어대는 낯선 모습. 아이는 크면서 하루에 열두 번도 더 바뀐다지만 이렇게 아예 다른 사람인 것처럼 변할 수도 있는 건지는 몰랐다.



그때부터 하루가 멀다 하고 한강 수영장에 갔다. 한강 수영장은 성인 한 명이 5천원만 내면 종일 놀 수 있다. 음식과 음료수를 준비해 가면 추가로 돈 쓸 일이 아예 없다. 게다가 어린아이가 놀 수 있는 넓은 풀이 따로 있고 파라솔도 공짜다. 갈 때마다 오히려 돈을 버는 기분이 들 만큼 저 세상 가성비의 수영장이다. 아이가 너무 좋아해서 내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와야지 했던 게 2019년 여름이었다.



그리고 2019년 겨울, 지구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등장했다.





마지막으로 한강 수영장을 방문했던 하루가 생생하게 기억난다. 2019년 8월 첫째주 주말이었다. 무척 더운데 또 하늘엔 먹구름이 껴 있었다. 곧 비가 올 것 같은 날씨였다. 수영장에선 비가 와도 재미있다. 어차피 물에 들어가서 노는 거라서 비를 맞으면서 물장구를 치면 똑같은 수영장인데 다른 곳으로 장소를 옮겨 다시 시작하는 기분이 든다. 우리는 비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날은 파라솔 대신 가져간 텐트를 치고 그 안에서 먹고 쉬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오후 3시가 넘어가자 갑자기 하늘이 컴컴해지더니 비가 쏴아아 쏟아지기 시작했다. 텐트 안에 있던 우리는 이때다 하고 수영장에 뛰어들었다. 그냥 지나가는 비가 아니었다. 말 그대로 억수 같이 쏟아 부었다. 아이는 너무 신나서 깔깔 웃으며 첨벙거렸다.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는 빗물을 양손으로 연신 닦아가며 비치볼 던지기 놀이를 했다. 비가 금방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사람들이 하나둘 텐트를 걷고 정리하기 시작했다. 빗속에서 30분 가량 놀고 나니 주변이 텅 비어 있었다.



"더 놀자!! 더!! 더!!"



우리는 수영장을 통째로 전세 낸 것처럼 마음껏 놀았다. 빗물을 너무 먹은 텐트 앞 부분이 무너져 내려서 어쩔 수 없이 철수할 때까지 놀이는 계속 됐다.






그날 너무 재미있게 놀아서인가. 8월이 한참 남아 있었지만 그날을 끝으로 한강 수영장에 가지 않았다. 언제든지 갈 수 있다는 생각이 저변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강 수영장은 이제는 갈 수 없는 곳이 됐다. 지금은 그게 못내 후회된다.  2019년 8월에 그냥 매일 갈걸. 바쁜 일 뒤로 하고 즐길 수 있을 때 신나게 놀걸. 그날 젖은 텐트는 펴서 말렸는데도 완전히 마르지 않았는지 결국은 녹이 슬고 군데군데 썩었다. 텐트를 버렸는데 그날의 추억까지 같이 휘발되는 것 같아서 한동안 마음이 좋지 않았다.



올해 여름엔 한강 수영장에 갈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는데 한강사업본부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2021년 한강공원 야외수영장 운영여부를 코로나 19 상황 등을 고려하여 검토 중입니다. 추후 운영여부를 한강사업본부 홈페이지에 7월 중순 경 공지하도록 하겠습니다"라는 안내문이 올라와 있다. 그런데 이 안내문은 지금 수도권 거리두기 4단계로 격상되지 전인 7월 2일에 수정된 것이다. 상황이 급변한 지금, 운영을 할지도 모른다는 희망은 품지 않는 게 맞지 않을까 싶다. 희망 고문이 될 뿐이다.



한강 수영장은 내가 어릴 적 엄마가 날 데리고 갔었던 추억의 장소다. 언제든 갈 수 있다고 생각해서 소중함을 몰랐었던 한강 수영장에 언젠가 갈 수 있는 날이 오기는 할까. 수영장 물을 코로 입으로 마셔가며 텐트가 무너질 때까지 놀았던 그해 여름의 추억을 아이의 기억 속에 다시 심어줄 수 있는 날이 과연 올까. 온다면, 그게 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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