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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창가 Jul 08. 2021

슬기로운 의사 같은 선박 기관사 생활



2020년 최고의 화제작이었던 tvN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 생활>. 소현은 외장하드로 배달된 이 드라마를 바다 한가운데서 시청했다. 남는 시간을 때우기 위해 아무 생각 없이 틀었는데 첫 회부터 알 수 없는 기시감이 들었다.



드라마를 보면서 고등학교 시절 꿈이 떠올랐다. 스물다섯이 된 지금은 오래된 일이라 잊고 지냈었던 꿈, 바로 의사였다. 십 대에 의학적인 사명감이 있었던 건 당연히 아니었고, 우등생이 대부분 그렇듯 공부 잘하면 무조건 의대 가는 게 정해진 코스였다. 비록 대입에서 고꾸라지면서 완전히 다른 길로 와 버렸지만 소현은 의사와 선박 기관사가 의외로 많이 닮은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의사가 환자를 다루듯 선박 기관사는 기계를 다룬다. 의사가 담당 환자의 병을 고쳐주기 위해 처방하고 치료법을 연구하듯 기관사 역시 담당 기계가 아프면 계속해서 손을 봐주고 고치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노력한다. 물론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사와 기계를 만지는 선박 기관사의 일은 분명히 그 무게감에서 비교할 수 없는 차이가 존재한다. 또한 선박 기관사가 되는 과정이 아무리 힘들고 고되다 한들 의사의 길을 가기 위해 치르는 노력과 희생과는 비교불가일 것이다.     



그러나 의사가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것처럼 선박 기관사는 배의 생명과도 같은 엔진을 담당하는 사람이다. 비록 직접적인 대상이 사람은 아니지만 엔진이 고장 나면 배는 망망대해에서 그대로 서 버리게 된다. 최악의 경우 배가 침몰하면 배에 탄 사람들도 운명을 같이하는 것이다. 그렇게 따지면 배의 엔진을 만지는 선박 기관사의 일이 사람의 생명과 직결되어 있지 않다고 할 수 없다. 실제로 뱃사람들끼리는 선박의 엔진을 ‘심장’이라고 부른다. 선박 기관사는 선박의 심장을 고동치게 하는 막중한 책임감을 지고 있는 자리다. 자연스레 담당한 기계의 상태가 좋지 않으면 잠도 못 잘 정도로 걱정하고 살핀다.     



모르는 사람들은 배를 탄다고 하면 무조건 다 선장으로 생각한다. 기관사라고 설명해도 그게 배를 운전하는 거 아닌가 라고 단순하게 생각하곤 한다. 그러나 배는 그렇게 단순하게 돌아가지 않는다. 인체와 흡사하다. 그래서 선박 기관사와 의사가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기관사는 매뉴얼대로 기기를 다루는 직업이지만 의외로 감각에 의지하는 부분도 많다. 기기가 뭔가 평소보다 뜨겁거나 진동이 심하면 문제를 의심해야 한다. 레이저 온도계가 있지만 늘 휴대하고 다닐 수는 없어서 오감으로 많은 걸 판단한다. 의사 역시 환자의 이마가 뜨겁거나 숨소리가 거칠면 추가로 검사를 하거나 다른 병을 의심하는 것과 똑같다. 실습 때 배운 것도 ‘손의 감각을 기억하라’였다. 정상 상태의 기기의 온도와 진동 정도를 잘 기억해 놓았다가 이것과 다른 느낌이 오면 이상을 의심하라는 것이다.     



겉모습도 비슷하다. 폐쇄적인 수술실에서 초록색 외과 수술복이 피투성이가 된 채 환자를 살리기 위해 비지땀을 흘리는 의사. 의학 드라마에서 자주 보는 장면이다. 선박 기관사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의사의 흰색 가운처럼 새하얀 작업복을 입고 바닷바람 한 점 들어오지 않는 기관실에 틀어박힌 채 구슬땀을 흘리며 일하다 보면 얼굴과 작업복은 온통 검댕 투성이가 된다. 그 상태로 한쪽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다른 한쪽은 기계를 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한 번은 이런 적이 있었다. 소현이 담당한 기계가 아무리 고쳐도 말을 듣지 않았다. 정말 울고 싶을 정도였다. 몇 달 동안 자식처럼 보살피던 기계였기 때문에 어떻게든 낫게 해주고 싶었다.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제발 뭐가 문제인지 말해줘널 꼭 고쳐주고 싶어.”     



소현은 식사도 거른 채 간절한 마음으로 기계를 살폈다퇴근 시간은 진작에 지났지만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면서 나을 방법을 고민했다상대가 사람이든 기계든 애정을 쏟는 만큼 돌아오게 돼 있다고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그 덕분인지는 몰라도 기계는 기적적으로 정상 컨디션을 회복했다. 



이제는 예전의 꿈을 잊었을 만큼 선박 기관사 생활에 만족한다. 그래도 의학 드라마를 보니 ‘의사가 됐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또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영원히 안고 가야 할, 못 가본 길에 대한 상념 같은 감정인 듯하다. 하지만 의사에 더 이상 미련은 없다. 이제 소현이 돌보고 고쳐줘야 할 것은 사람이 아니라 기계였다. 선박 기관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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