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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창가 Jul 16. 2021

자본주의로 극복한 고소공포증



아까부터 망설였다. 아니, 어젯밤부터 잠을 못 잤다. 오늘 있을 라이트 수리 작업 때문이었다. 갑판 위 높은 곳의 라이트 관리는 3기사가 담당하는 작업 중 하나다. 입항 전 라이트 수리는 매 항차 필수적인 루틴 작업이다.     



문제는 소현에게 고소공포증이 있다는 것이었다. 소현은 놀이공원 가면 혼자 짐을 보며 기다리는 쪽이었다. 또래 친구들이 다들 신나게 즐기는 롤러코스터나 바이킹을 잘못 탔다가 죽음의 공포를 느낀 이후 다시는 쳐다도 보지 않는다. 놀이기구뿐이 아니다. 케이블카는 더 심각했다. 얇은 줄 하나에 매달려 공중을 떠가는 이동수단은 보는 것만으로도 현기증이 났다. 속도가 매우 느리고 올라가면 뷰가 좋다는 친구의 말에 속아 잘못 탔다가 중간에 내리지도 못하고 공황 장애처럼 안에서 숨도 제대로 못 쉬었다. 자신의 그런 성향을 안 이후 소현은 경치는 포기했다. 보통 좋은 뷰라는 것은 높은 곳에서만 감상할 수 있는 것인데 몸이 따라주질 않으니 어쩔 수 없었다.     



그런 소현에게 라이트 작업은 어쩌면 선박 기관사가 된 이후 다른 어떤 일보다 큰 도전이었다. Deck(갑판) 상의 라이트들은 굉장히 높은 곳에 위치해 있고 라이트 사이즈 자체도 매우 크다. 가장 높은 곳의 라이트는 아파트 3층 정도 높이다.  처음에 라이트 수리 작업이 주어졌을 땐 ‘저기에 사람이 올라간다고?’라고 생각할 정도로 까마득했다.  동생에게 라이트 작업 사진을 보내주자 동생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언니, 스파이더맨이야?”     





맞다. 정말 스파이더맨을 방불케 하는 안전장비를 입고 맨몸으로 올라가서 하는 작업이다. 고소공포증이 심한 소현에게는 가장 피하고 싶은 업무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무섭다고 안 할 수는 없는 노릇. 소현은 조심스럽게 계단 위에 한 발을 올려놓았다. 철제 계단 특유의 텅, 하는 소리가 심장까지 울렸다. ‘나는 할 수 있다’를 주문처럼 외우며 천천히 한 발씩 내디뎠다. 두세 계단 올라가자 팔다리가 의지와 상관없이 마구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차가운 난간은 금방이라도 옆으로 쓰러질 것처럼 위태했다. 큰 맘먹고 바다 쪽으로 눈을 돌려봤다. 검푸른 바다가 소현을 잡아 삼킬 듯 요동치는 것처럼 느껴졌다. 실제로는 바람 한 점 없는 아주 잔잔한 바다였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     



다시 내려가려고 했지만 돌아서는 것도 쉽지 않았다. 목숨 걸고(?) 올라온 그 몇 계단이 너무 아까웠다. 게다가 엄연한 소현의 업무였다. 3기사로 승선해 놓고 라이트 작업을 무서워서 못하겠다고 말하는 건 소현의 자존심상 허락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물론 고소공포증 때문에 못하겠다고 말하면 누군가가 대신하겠지만 월급 받고 하는 ‘내 일’을 미루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같이 일하는 동료에게 그런 피해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


     

눈 딱 감고 올라가자.     



소현은 정말로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 상태로 절대 눈을 뜨지 않은 채 한 발 한 발 올라갔다. 아까와 비교도 되지 않게 빠른 속도였다. 해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함이 소현의 등을 떠밀었다.     



텅텅텅텅텅텅텅 후다닥.     



드디어 마지막 계단에 발을 디딘 소현은 한쪽씩 차이를 두고 눈을 떴다. 그 순간, 소현은 헉 하고 숨을 들이마셨다. 환상적인 바다가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선배들이 강조하던 ‘꼭대기에서 보는 바다’가 바로 이런 것이었구나. 환상적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아주 잠깐. 눈을 계속 뜨고 있을 수가 없었다. 몸이 사시나무 떨 듯 떨렸다. 그 상태에서 어떻게 작업을 마쳤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올라올 때처럼 두 눈 꼭 감고 내려온 소현의 등은 식은땀으로 펑 젖어 있었다.     



라이트 꼭대기에서 내려다 본 갑판



그 이후로도 한동안 소현은 라이트 작업이 있을 때마다 맨 첫 계단에서 주저하고 망설였다. 고개를 젖히고 까마득하게 높은 작업대를 올려다보면 파블로프의 개처럼 자동반사적으로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럴 때마다 책임감과 오기가 소현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두 눈을 꼭 감고 후다닥 올라가서 후다닥 고치고 두 눈을 꼭 감고 다시 내려오는 일을 반복했다.     



역시 돈의 힘은 위대했다. 이것도 여러 번 하자 고질병이었던 고소공포증이 서서히 자취를 감췄다. 답답한 실내 기관실에서 일하다 보면 그 꼭대기가 기다려지기도 한다. 6개월쯤 지나자 라이트를 수리하다가 바다를 감상하는 여유까지 생겼다. 꼭 그곳에서만 볼 수 있는 바다는 정말 말도 안 되게,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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