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상궂은 얼굴, 살벌한 흉터, 거친 몸놀림, 현란한 칼솜씨, 허연 해골이 그려진 검은 깃발이 달린 해적선.
해적 하면 떠오르는 모습은 대개 무시무시하다. 책이나 영화 속의 해적은 바다의 무법자답게 거친 바다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약탈도 수준급이라서 그 어떤 배도 적수가 되지 못한다.
소현이 배를 탄다고 했을 때 부모님은 해적을 걱정하셨다. 다른 부모님은 딸이 밤늦은 퇴근길에 치한을 만나지 않을까 신경 쓰는데 소현의 부모님은 딸이 밤바다에서 해적을 만나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먼 바다로 나가니 왠지 해적의 소굴로 딸을 들여보내는 기분이셨던 것 같다. 다행히 소현이 탄 배의 항로는 해적이 자주 출몰하는 해적 구간을 지나가지 않는다는 걸 확인하고 한시름 놓으셨다.
하지만 바다에 울타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해적이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그래서 항해 중에는 갑판 위 라이트를 켜지 않는다. 해적의 표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입항 전 항구에 다다라서야 라이트를 켠다.
소현의 배는 다행히 이 정도만 신경 쓰면 대부분 안전하지만 해적 구간을 지나는 배는 위험할 수 있다. 밤에는 불빛이 절대 새어나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마치 나치를 피해 다락방에 숨은 안네의 가족처럼 숨죽인 채 조용히, 아무도 없는 것처럼 어둠 속에서 움직여야 한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용병을 태우는 경우도 있다. 해적선의 공격을 받았을 때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적 수당’을 따로 주는 배도 있다. 위험한 일을 하는 사람이 받는 생명 수당인 셈이다. 해적을 만날지도 모를 바다 위를 지나다니는 목숨 값이다.
그런데 이 해적의 면면을 알고 보면 생각이 많아진다. 일단 그들을 과연 해적이라도 불러도 될지가 의문이다.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의 조니 뎁처럼 무섭지만 멋질 거라는 상상은 말 그대로 환상에 불과하다. 주로 못 사는 나라 사람들이 한 푼이라도 뜯어내려고 덤비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 보니 그들의 장비가 시원찮다. 변변한 무기는커녕 타고 나온 배조차 저런 걸 위험해서 바다에 어떻게 타고 나왔나 싶을 정도로 폐선 일보 직전이다.
그 배를 타고 간신히 다니다가 여차 저차 해서 큰 상선을 발견했다 치자. 그들은 어서 빨리 노략질을 하고 싶겠으나 몸이, 아니 배가 따라주지 않는다. 어쩌다가 목표물을 발견해도 너무 느려서 따라잡질 못한다. 해적선으로 보이는 배를 실제로 봤다는 항해사들 말에 따르면 레이더망에 해적선이 잡혀도 당황하지 않는다고 한다. 어차피 배 엔진이 꺼져서 레이더망에서 알아서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웃기다 못해 불쌍할 지경이다. “해적이 나타났다!!!” 영화에선 이 한 마디면 바로 아수라장이 되지만 그건 그저 영화일 뿐, 현실에선 그저 선속을 조금 높여주기만 하면 문제가 해결된다. 해적들이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서 스스로 나가떨어지기 때문이다.
해적에게 피랍된 선원들을 구출한 '아덴만 여명작전'
몇 년에 한 번씩 잊을만하면 뉴스에 소말리아 해적에 인질이 잡혔다는 뉴스가 나와서 사람들을 식겁하게 만든다. 2011년 소말리아 해상에서 해적들에게 피랍된 삼호 주얼리호 선원들을 대한민국의 청해부대가 구출한 '아덴만 여명작전'은 악명 높은 해적의 민낯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건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짠내 나는 해적이 훨씬 많다. 소소하게 돈 뜯어내고 물건 훔쳐가고. 기름은 당연히 가져가고 얼마나 없이 사는지 소화전에 붙어 있는 연결 호스까지 떼어간다고 한다. 그들 나라에선 그것도 돈이 된다고.
그런 해적들이 나타난다고 해도 목숨에 위협이 될 일은 거의 없어 보인다. 오히려 쫓아오다가 엔진이 꺼져서 바다에 빠지는 건 아닌지 신경을 써줘야 하나 고민이 될 만큼 안쓰럽다. 그런 해적들을 상대로 해적 수당이라는 이름의 돈을 추가로 받는 게 미안할 정도로 무늬만 해적이지만, 그래도 언제 어떻게 돌변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세상에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자나 깨나 육지에선 밤길 조심, 바다에선 해적 조심.